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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하면 살 빠질 줄 알았지. 2

기능을 멈친 자궁에게.

by 뮤뮤

(1화에 이어서)


운동을 가끔 하는 것도 아니었다. 거의 매일 갔지만 몸은 날마다 커졌다. 회원들 중에 자꾸 커지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어느 날, 유난히 까다로운 동작을 의외로 잘 해냈고 그 순간, 선생님의 얼굴에 살짝 놀란 표정이 스쳤다.

“뮤뮤님, 진짜 많이 탄탄해졌어요.”

선생님의 칭찬에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살은 안 빠지네요.”

내 그늘진 표정을 잠시 바라보던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 조용히 나를 불렀다.
“뮤뮤님, 유산소 운동하세요? 유산소 안 하면 살 빼기 힘들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지으며 대답했다.
“아는데… 숨찬 걸 싫어해서요.”




아프기 전엔 유산소 운동이란 걸 아예 하지 않고 살았다. 요가나 걷기는 꾸준히 했지만, 그건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목디스크 때문이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어깨가 아프고, 손끝이 저려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병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운동다운 운동을 시작했다. 왜 우리는 꼭 끝까지 밀려봐야 겨우 한 발을 떼는 걸까. 몸이 먼저 절벽에 닿고 나서야, 마음이 뒤늦게 허둥지둥 따라 움직인다.


유산소도 평생 하겠다는 결심으로 한 달 정도 러닝을 했다. 그리고 그제야 확실히 알게 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을 나는 몹시 싫어한다는 걸.


어이없는 내 고백에도 선생님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조곤조곤, 조언이 이어졌다.

“공복 시간을 확실히 두어보세요. 저녁에는 최소 12시간, 점심과 저녁 사이에도 4시간. 그 사이엔 아무것도 드시면 안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저녁 공복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낮에도 공복이라니.

“그럼 선생님은 간식 전혀 안 드세요?”

“안 먹어요.”

“비스킷 한 조각도요?”

“전혀요.”

내 표정이 서서히 절망으로 물들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한 듯 덧붙였다.

“이렇게 하면 살이 금방 빠져요.”


오후 3시쯤 되면 초콜릿과 빵이 생각나는 사람한테 그건 고문이나 마찬가지이다. 폴리페놀이 72% 함유된 초콜릿이긴 하다. 빵도 나름 잡곡빵이다. 간식에 최소한의 양심은 담는다. 그런데 그 간식마저 빼야한다면 나는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간식을 도저히 못 끊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다이어트 과자를 추천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됐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 과자들, 먹어봤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다. 간식은 기쁨인데, 기쁨이 빠지면 그건 그냥 죄책감이다.

차라리 살찌는 걸 감수하고, 제대로 된 걸 한 조각 먹고 말지.


흥. 하고 센터를 나왔지만 선생님의 조언은 귓가를 맴돌았다. 필라테스는 매일 해도 재밌는데 유산소는 왜 그렇게 하기 싫을까. 간식?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끊기 힘든 건지.


49세, 갱년기 아줌마는 문득 옛날이 그립다. 매일 마시고, 그득그득 먹어도 늘 날씬했던 시절. 조금만 신경 써도 2~3킬로는 우습게 빠지던 그때.

옛 영광을 떠올리며 여자는 슬픈 눈으로 유튜브를 뒤진다. 갱년기 다이어트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문득 한 의사의 강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갱년기에는 자궁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예전만큼 칼로리를 소모하지 않아요. 식사량은 ‘절반’으로 줄이셔야 해요. 배고픔과는 상관없고요. 잘 먹어야 건강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말은 내 과거를 통째로 흔들었다. 항암 치료 직후, 체중이 49킬로까지 빠졌던 그 시기. 나는 ‘잘 먹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나물 5종에 고기반찬, 700ml의 야채주스. 온몸이 영양소로 가득 차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회복 후 식사량은 줄였지만, 위는 이미 늘어나 있었다. 적게 먹으면 간에 기별도 안 갔다. 더 큰 문제는 장이다. 장을 상당 부분 절제했기 때문에 너무 적게 먹으면 극심한 변비에 시달렸다. 종합하자면 적게 먹는 삶은 내게 쉬운 해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내 안에 무언가가 쌓이고 있다는 걸 안다. 계산해보니 의사가 제시한 적정량보다 나는 두세 배의 양을 먹고 있었다(ex: 의사 제안 사과1/4 & 나는 한 개). 간식만이 아니라, 모든 양을 줄여야 하는 시기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갱년기의 모든 시작은 ‘이제는 기능하지 않는 자궁’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건 변화이지 병이 아닌데.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에 갱년기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한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갱년기는 불필요해진 호르몬이 내 몸에서 줄어드는 동안, 그에 맞춰 몸이 적응해 가는 시간입니다. 모든 변화와 적응에는 고통이 따르죠. 갱년기 증상은 그만큼 몸이 열심히 적응 중이라는 신호입니다.”<갱년기 직접 겪어봤어?, 이현숙>


그러니까, 이건 내 몸이 부서지고 있는 게 아니라 다시 조정되고 있는 거다. 전반전이 끝났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간. 저자 이현숙 의사는 덧붙였다. 100세 시대,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이 갱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후반전은 완전히 달라진다고.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는 나에게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묻는 시간’이다. 나는 내 전반전을 잘 마무리하고 있는 걸까. 어느 날부터 갑작스러운 열감과 식은땀, 자다가 벌떡 깨는 밤들이 시작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쿵 내려앉는 기분. 울컥, 벅차오르다 이내 맥없이 가라앉는 감정들. 그 모든 변화가 한꺼번에 밀려왔고,

나는 매번 낯선 몸과 마음을 조율해야 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갱년기는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몸 전체가 다시 조정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고민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곳에 닿게 된다.

내 몸, 내 생애, 그리고 지금은 기능을 멈춘 자궁에 대한 이야기.




방사선 치료 때문에 나의 자궁은 평균나이 보다 이르게 멈췄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자궁과 제대로 된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자궁 입장에서도 참 억울했을 거다. 느닷없이 방사선을 맞고 제 기능을 잃었으니. 이제라도 조용히, 내 자궁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것이 내 전반전을 잘 마무리하는 작업의 첫 순서일 것 같다.


"그날, 너의 시간이 멈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깐 멈칫했지만 슬퍼할 틈은 없었어. 살아야 한다는 말 앞에서 나는 모든 감각을 접고 그저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했으니까.

그런데 요즘이야, 문득문득 생각나. 네가 내 몸속에서 얼마나 조용히, 얼마나 묵묵히, 얼마나 성실하게 나를 지탱해왔는지를.

가장 고마운 건 네가 나에게 두 생명을 안겨주었다는 거야. 서른 일곱에 딸을, 마흔 하나에 아들을. 늦은 나이였는데도 너는 그 아이들을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오게 해줬지.


매달 한 번, 너의 고요한 노동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시간을 귀찮음이라 불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사랑의 시간이었어. 30년 동안 무려 350번이 넘는 달을 건넌 시간들. 비록 너의 레이스는 완주가 아니었지만, 삶이란 게 원래 뜻하지 않게 흐르는 거더라.

함께한 시간은 멈췄지만 나는 그 기억 위에 하루하루를 다시 쌓아갈게.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세월을 지나 그냥 나로, 그저 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다해 살아보려 해.

고마웠어. 그 모든 시간. 그 모든 달.

내 안의 너를, 나는 잊지 않을 거야."


너 덕분에 낳은 우리 애들이야. 지금은 키가 훌쩍 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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