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에요!”
선생님은 그렇게 외쳤고, 나는 그 말에 답하지 못했다. 이건 인사도, 계절의 감상도 아니다. 필라테스 수업에서 ‘여름’은 곧 ‘고강도 지옥행’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떨어지면, 수업의 난이도는 세 칸쯤 뛰어오른다.
체어 위에 엎드려 다리를 들고, 그 상태로 팔을 들고, 복부에 힘을 준 채 정지. 정말 정지. 움직이면 지는 게임처럼, 멈춘 채로 숨쉬기.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회원들의 얼굴이 하나둘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숨이 말을 삼키는 와중에도 유독, 묵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흐으읍… 아아아… 후읍… 흐흡…”
그녀는 온몸으로 존재감을 남긴다. 마치 호흡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인 것처럼.
필라테스는 요가보다 호흡을 더 깊고 세게 한다. 들이마실 때 폐에 가득 공기를 넣어주고, 잠시 참았다가, 배가 쏙 들어갈 때까지 입으로 내쉬어준다. "후우~" 그런데 그녀의 호흡은 유난한 데가 있었다. 정확히는 신음 40%, 숨 60%. "후우" 하며 숨을 내뱉을 때 신음이 묘하게 섞여 나온다. 나는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적잖이 놀랐다. 아니, 숨소리를 이렇게 관능적으로 낼 수 있는 거였나?
슬쩍 고개를 돌려 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등산복을 입은, 어딘지 중성적인 분위기의 그녀. 겉모습은 담백했지만, 그 호흡은 묘하게 끈적였다. 그 불일치가 당황스럽고, 솔직히 좀 재밌었다. 나는 그녀 옆에서 동작을 이어가며 그 호흡을 나름대로 분석했고, 분석 끝에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이건 이분만의 호흡이다. 확고한 자기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식이 내 중심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자, 오늘 복부 좀 태워볼까요!"
선생님이 응원하는 의미로 박수를 몇 번 치고, 수업은 점점 고점을 향해 치닫는다. 다리를 더 높이 올리고, 복부를 조이고, 타오르는 눈빛으로 천장을 노려본다. 노출의 계절과 딱히 상관없는 49살 중년은 이 고된 동작이 조금 억울하다. 비키니를 입을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하…아…앗…”
동작이 힘들어지자 그녀의 호흡 강도도 비례한다. 기구 위에서 중심을 잡고 균형을 유지하는 동안, 내 귀엔 오로지 그녀의 숨소리만 들린다. 그 소리는 천천히, 정확히 내 고막을 두드린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끝이다. 웃음이 터지면 복근이 무너지고, 중심축이 흔들리고, 나는 기구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들 참고 있다.
웃음도, 소리도, 눈빛도.
복부보다 입꼬리 근육이 먼저 아프기 시작했다. 옆자리 회원도 미세하게 어깨를 떤다. 우리는 같은 소리에 흔들리고 있는 거다. 그녀의 소리는 점점 커지고, 나는 점점 작아진다. 팔이 떨리고, 허리가 말리며, 땀이 뺨을 타고 떨어진다. 그 순간,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죽겠네, 진짜!'
생각해보면, 나를 흔드는 건 그 숨소리가 아니라 내가 그걸 참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다들 그런 상태로 살아간다. 너무 웃지도, 너무 울지도 않기. 기준도 없이, 겨우겨우 적정선에서 버티며.
그 적정선조차 감당하지 못하던 몸으로부터, 나는 꽤 멀리 왔다.
그래서인지, 웃음을 참는 이 고작 몇 분의 시간도 내겐 제법 감동적이다.
오늘, 내가 끝까지 참았던 건 숨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았다. 웃음보다 힘든 건, 웃음을 참는 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