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쉰은 '산정특례 종료'와 함께 왔다.

by 뮤뮤


"이제 완치도 됐으니 빨리 쉰의 행성으로 넘어가."

세상이 등을 떠민다.

"내가 벌써 쉰이라고?"

뒷걸음질을 쳐도 시간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나를 쉰의 환영식장에 앉혀놓았다.



내가 쉰이라는 행성에 도착한 시기는 묘하게도 암 완치 판정을 받게 되는 해와 겹친다.

올여름, 별일 없다면 나는 지난했던 5년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축복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안다. 이건 정말 병이 나았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산정특례제도가 종료된다는 사회적·의학적 합의일 뿐이라는 것을.

전이 경력이 있는 내게 완치 판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은 채 '생존자'라는 새 이름표를 다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난 5년은 나와 아버지의 투병기가 뒤엉킨 시간이기도 했다.

내 병을 고치러 병원을 드나드는 사이, 폐암 4기였던 아버지는 서서히 생의 불꽃을 꺼트려 갔다.

병실 밖에서는 나를 살리느라 애썼고, 병실 안에서는 아버지를 보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 지독한 무한 루프의 터널을 지났더니 어느새 내 나이 쉰이 되었고 비로소 병원 문 밖의 진짜 세상과 마주할 날이 다가왔다.


이제 생존은 축복이 아닌 ‘기본값’이 되는 시기.

문제는, 기본값이 된 삶이 결코 기본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암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간 해변에는

부서진 조개껍데기 같은 나의 초라한 경력들만 흩어져 있다.

밀려드는 생활비와 아이의 학원비, 그리고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어쩌면 투병보다 더 치열한 ‘생존’은 지금부터라고.




환영식장의 사람들이 나에게 재촉했다.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는지, 어떤 결과물을 냈는지 증명할 '인생이라는 원고'를 내놓으라고.


자신 있게 내밀 원고가 없었다. 남들이 화려한 커리어를 써 내려갈 때 나는 항암 회차를 기록했고, 남들이 집 평수를 늘리는 서사를 완성할 때 나는 재발을 막기 위한 정보 검색에 급급했으니까.


글쓰기는 어떤가. 3년 넘게 문장을 다듬었지만 그 흔한 공모전 수상 한 번 못했으며, 메일함에는 출간 거절 답장만 수북이 쌓여 있다.



서둘러 빨간펜을 들었다. 이 비루한 원고를 어떻게든 수선해 보려 했다. 하지만 펜을 든 손이 떨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5년의 공백은 거대한 비문(非文)처럼 버티고 있고, 고치면 고칠수록 이야기는 더 엉망이 되어가 ‘낙선 확정’의 원고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엉망진창인 초고를 억지로 수선해 근사한 결론을 내는 대신, 그냥 이 오타투성이 원고를 가슴에 품기로 한다.




내가 정말 이룬 게 없는지, 앞으로라도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른다. 빈손으로 도착한 쉰의 행성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서늘한 공기를 견디는 것뿐.


하지만 추위에 몸을 웅크리다 문득 깨달았다.

예순이나 칠순의 행성에 도착하지 못하고, 영영 우주 미아가 될 뻔했던 5년 전의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그토록 바랐던 것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었다.

이 지독한 당혹감마저 '살아있음'의 증거로 느끼는 평범한 하루, 딱 그만큼이었다.


그러니 쉰 살의 내게 이룬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막막함 속에서도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그저 살아낸 것, 그것밖에 없습니다."


빨간 교정 부호가 빗자국처럼 번진 초고를 가슴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회색 구름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구름 너머에 내가 그토록 바랐던 '오늘'이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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