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피해자는 언제 제일 화가 날까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 당시'보다 피해 이후 잘못 돌아가는 상황에서 더 화가 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범죄 피해는 피해자가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용기를 내서 피해를 알렸는데 그 이후 사건 처리가 지지부진 하다든가, 나에게 죄를 저지른 사람이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더 큰 충격과 괴로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형사사법체계라는 것이 생긴 지 약 70년만에 갑작스럽게 제도를 크게 바꾸었습니다.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검경수사권조정'과 2022년 봄 휘몰아 친 '검수완박'입법이 그것입니다. (*검수완박이라는 말이 잘못된 표현이라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만, 이 입법을 추진한 민주당도 처음에는 이 표현을 썼고 언론이나 전문가들도 이 표현을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썼기 때문에 쉬운 이해를 위해서 여기 글에서도 그냥 그 표현 그대로 쓰겠습니다.)
검경수사권조정과 검수완박을 누가 추진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그런 것들은 너무 길고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자세히 적지 않겠습니다. 그 과정이 어찌되었든 지금 현재 피해자에게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이 글과 다음 글에서는 최근 있었던 이 두 번의 큰 제도 변화가 피해자를 어떻게 불리하게 만들었는지 나눠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왜 불리해졌다고만 단정하냐는 주장이 있는 것도 압니다만, 그럼 유리해 진 것을 하나라도 가져와보세요. 사례로 하나하나 다 반박해드릴 수 있습니다.)
불리해 진 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해자의 무혐의를 다시 들여다보거나 뒤집을 수 있는 구조가 허술해 진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수사의 책임자가 불분명해지면서 생기는 수사지연이나 왜곡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검경수사권조정과 검수완박이 가해자의 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을 얼마나 줄어들게 했는가?'를 보겠습니다.
2021년이 되면서 경찰이 수사를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검찰의 검토 없이 단독으로 사건을 덮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이게 검경수사권조정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입니다.
2020년까지는 경찰은 자신이 수사한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했습니다. 수사를 해 보고나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피의자)이 죄가 있는 것 같으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죄가 없는 것 같으면 불기소의견이라고 '의견'만 붙여서 전부 다 송치를 했죠. 그러면 그때부터는 수사의 책임이 검찰로 넘어갑니다. 검사가 다시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읽어보고 기소할지 불기소할지 판단할 책임을 지는 것이죠.
그런데 2021년부터 경찰은 자기가 볼 때 가해자가 죄가 없는 것 같아 보이면, 그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다는 '불송치'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불송치결정된 사건 기록은 박스에 담겨서 검찰청에 단순히 기록'송부'만 합니다.
만약에 피해자가 볼 때 경찰의 불송치결정이 도저히 납득이 안되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2020년까지는 뭘 따로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경찰에서 검찰로 모든 사건이 자동으로 송치되었기 때문이죠. 피해자건 피의자건 자기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검찰에 추가 증거를 내거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2021년부터는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별도로 '이의신청서'라는 종이를 별도로 작성해서 그 불송치결정을 한 경찰이 일하고 있는 경찰서에 제출해야 되도록 바뀌었습니다. 불송치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 자기 스스로 이의신청서를 쓰거나 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은 어떡하냐고요?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건은 송치되지 않고 끝납니다.
바로 여기에서 2022년 검수완박 입법으로 바뀐 부분이 하나 더 나옵니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8월까지는 그나마 불송치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에 제한이 없었지만, 민주당이 2022년 4월 한달만에 바꾼 형사소송법 때문에 이제는 '고발인'은 이의신청도 못하게 바뀌었습니다. 장애인학대, 동물학대같이 피해자가 스스로 고소장을 내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범죄는 고발로 수사가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약범죄, 환경범죄같이 피해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한 범죄도 고발로 수사가 시작되죠. 그런데 이렇게 고발인만 있는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사건을 덮고 불송치해버리면 사건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영영 없습니다. 다시 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말이죠.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말이 있죠. 사건을 한 사람만 보고 덮는 것과, 다시한번 자세히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은 큰 결과의 차이를 만듭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범죄 피해자에게 큰 제도가 변화가 갑작스럽게 진행되면서 경찰에서 볼 때 가해자가 죄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걸 다시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피해자에게 좋지 않은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행될 수 있냐고요? 그건 수사의 책임자가 불분명해진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 그 부분을 더 집중적으로 쉽게 설명해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