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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애인권법센터 Apr 11. 2023

6. 고소장을 안 받아주는데 어떡하죠?

사례로 알아보는 피해자의 형사사법 대응방법

가해자를 처벌해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고 처음 나서는 일이 바로 고소장을 쓰는 일이죠. 고소장 쓰는 방법은 아래 글에서 자세히 설명을 해 두었습니다.


고소장을 써 봅시다! (글 읽으러 가기)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쓴 고소장을 들고 갔더니 접수를 안 받아준다고 거부를 당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어떤 사람은 더 강하게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거기까지 갈 용기조차 내기 어려운 사람은 그냥 거기서 포기해버리기도 합니다. 제가 대리하는 청소년 피해자들, 장애인 피해자들이 많이 그렇습니다.


2021년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전에는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다시피 검찰청과 경찰서 양쪽 모두 고소장을 접수했어요. 그런데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이 직접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사건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경찰서에다가 만 고소장을 낸다고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이 단계에서 고소장 접수가 거부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경찰서에서 고소장을 받지 않는(반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사권조정과 검수완박 이후 거의 대부분의 수사업무가 경찰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지금 들고 있는 사건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힘들기 때문에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새로운 사건(특히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건)은 최대한 안 받고 싶어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요새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고소장 안 받아주기 이유들을 5개 뽑아봤습니다.


1. "왜 이제서야 고소장을 내시는 거예요? 다 지나서 증거고 뭐고 이제 없어서 수사해도 나올 것도 없어요."


2. "왜 이렇게 증거가 빈약해요? 이거 뭐 진술 말고는 제대로 된 증거가 하나도 없네. 이거 해 봤자 어차피 안 될 거에요."


3. "이거 결국 돈 달라는 얘기네. 그럼 민사소송을 거셔야지 왜 이걸 여기에 가지고 옵니까?"


4. "이거는 보니까 우리 관할이 아니네요. 다른 경찰서에 가서 제출하셔야 돼요. 저희는 받아봤자 수사 못해요."


5. "고소는 변호사랑 같이 상의하고 오시는 거예요. 변호사도 없이 사건 진행을 어떻게 합니까?"


실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조금씩 지능적으로 바뀌고 있어요. 경찰서 오자마자 바로 안 받아준다고 하면 민원이 심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나름의 완충책을 쓰는 것인데요. 고소장을 바로 받아주지 않고 '임시접수'라는 이름으로 받아준 후, 나중에 연락해서 '살펴봤는데 이런 이런 이유로 못 받아 준다'라고 하는 것이죠.


법(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50조)에 따르면 경찰은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소나 고발을 반려(접수하지 않음) 할 수 없어요.


(1) 아예 죄가 안 되는 내용이거나,

(2)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이거나,

(3) 같은 사건에 대해 이미 결정이나 판결이 다 나 있고 그걸 뒤집을 새로운 증거도 없거나,

(4) 가해자가 죽은 사건,

(5) 반의사불벌죄인데 피해자 의사를 무시하고 고소한 사건,

(6) 고소권 없는 사람이 고소한 사건,

(7) 고소하면 안 되는 사람을 고소하거나, 고소취소한 사건을 또 고소했을 때


요 7개 중 어딘가에 해당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고소인이나 고발인의 "동의를 받아서" 고소장 접수를 안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앞에서 살펴 본 5개(증거가 부족하다, 관할이 아니다 이런 것들) 경우에는 고소장을 접수해줘야 합니다.


그럼, 고소장 접수를 안 해주는 일을 실제로 겪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사실 수사권조정 이후에 변호사들도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고 있어서 변호사들에게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거나 취하하라고 압박을 받은 적 이 있다는 변호사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변호사들에게 이후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까 1/5가 넘게 사건을 포기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변호사들도 이렇게 고소장 접수 거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건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 벽을 넘어 결국 접수시켰다는 변호사들은 어떤 방법을 썼을까요?


"반복적으로 계속 접수를 시도해서 성공했다"가 절반 정도 나왔습니다. 변호사들이 주로 쓰는 대처 방법을 정리해보면,

(1) 계속 접수해달라고 가서 이야기 한 경우 말고도

(2) 정식으로 경찰에 항의를 하거나 진정서를 넣어 접수시킨 경우도 있었고,

(3) 아예 접수 거부를 못하게 우편으로 접수했다는 경우도 있네요.

(4) 관할이 다른 경찰서에 가서 접수에 성공하기도 하고,

(5) 이미 개시되어 있는 다른 사건에 추가 고소장을 내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고소장을 쓰셨다면 처음에 접수가 거절되더라도 다시 접수를 해보시거나, 진정서를 써서 민원실에 제출해 보세요. 접수를 거부한 경찰관을 그 경찰서 청문감사실에 말해주세요. 청문감사실은 불친절하거나 부당한 업무처리를 처리하는 곳입니다. 우체국에 가서 고소장을 서류봉투에 넣어 등기우편으로 경찰서에 제출해 보세요. 그렇게 보낸 후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 그 경찰서 민원실에 전화해서 고소한 사람이라고 밝히면서 고소장이 잘 접수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예전에는 안 해도 되는, 엄청 귀찮고 어려운, 추가적인 노력과 에너지가 드는 일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도가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을 어쩌겠습니까. (오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고요. 가해자가 죄에 대한 벌을 받게끔 해 줘야죠!


더 보태고 싶은 경험이나 이야기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언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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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펠로우 3기 김예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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