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화곡동 임효리 _ 단어의 해석이 달라졌다.
'지금부터 당당하게~' 당당함과 뻔뻔함의 갈등시기
[당당하다]의 사전적 뜻은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모습이나 태도가 떳떳하다]이다.
결혼 10년 차가 된 화곡동 임효리에게는 '당당하다'의 해석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어떤 남이냐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의 내세울 모습이나 태도이냐에 따라 뻔뻔하게 보이기도 함]
'뻔뻔하다'라고 말로 하지 않지만 그렇게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눈'이 있다.
그 시작은 '내 시간 갖기'부터였다. 독박육아로 하루가 길었던 어느 날, 사우나에 가서 몸 좀 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집 근처에 24시간 쾌적한 사우나가 있었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먼저 잠든 남편에게 나서기 위해 말을 건네려는 순간 나 스스로 갈등을 한다.
'가도 되나?'
부모님 허락도 필요 없는 기혼녀인 내가 남편의 눈치는 예의정도였지만 늦은 시간이라는 게 문제였을까?
늦은 시간에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재우고 두어 시간 외출이라니...
그것도 특별한 사정이 아닌 사우나라니.
그게 걸렸나 보다. 그래서 망설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 것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저녁부터 같이 갈 수 있는 엄마들에게 카톡으로 '사우나 가자'고 보냈다.
대부분은 '가고 싶지만'이라는 단서는 붙지만 결국은 '안된다', '눈치 보인다', '남편이 싫어한다'는 다르지만 같은 결론의 답장이 왔다. 아니, 집에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당당하게 야심한 밤에 목욕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나는 당당했으나 개운치 않은 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한 동안 그 기분은 오래갔다.
그리고 나의 이런 행동이 당당하게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가족사가 아닌 개인적인 일로 저녁을 챙기지 못하거나 한 그런 날에 사우나를 찾는다면 백 프로 뻔뻔하고 이기적인 행동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한 순간의 나는 '임효리'가 아닌 누구의 엄마 거나 누구의 아내일 뿐이다.
육아의 초년기에는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뭐든 척척 잘할 줄 알았지만 모든 게 처음이니 잘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아니 혼돈의 시간 속에 '잘'과 '잘못'을 구분하지도 못했던 것이 더 정확하다. 집에서의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랬다. 그야말로 '나는 어디' , '여기는 어디' 구분할 줄 모르고 그냥 시간에 묻혀 살았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의 삶이란, 그걸 말로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들 셋넷 다둥이 엄마들에게 한 마디 들을 것 같아 멈춘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복합장르다. 김은희 작가의 장르물 <시그널>과 김은숙 작가의 로맨스 판타지 <도깨비> 그리고 김순옥 작가의 막장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색깔을 머무려 논 하루가 매일 반복된다는 정도로 말하겠다. 가끔 집에서도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이 펼쳐지기도 하니까 처음 보는 새로운 장르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리즈시절이 있었다! 고 치자.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협상이 아닌 나와의 협상을 해야 했다. 그것부터 낯설었고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지만 끊임없이 나 스스로와 매 순간 협상과 타협을 했다.
육아 동창생들은 가끔 '언니처럼'이나 '자기처럼'이라는 말로 나를 흉내 냈다. 사우나를 가던가 친구를 만나러 외출을 할 때 그리고 밥 차리는 것을 건너뛸 때, 그 말을 사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가까운 동생 미진이는 나에게 당당하다는 말을 했다. 이때의 당당하다는 말은 원래 의미였다.
그리고 '이효리처럼'이라며 한 마디를 더했다.
듣기 싫지 않았다. '이효리 같다'는 말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조금은 제 맘대로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잘 채워가는 중이다.'로 해석해 들었다.
- 계속
(화곡동 임효리는 40대 후반의 두 아이 엄마이고 소소하게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본다. 그녀의 이야기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