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아들에게,
오랜만이야. 요 며칠간 네게 편지를 쓰지 않았어. 못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네게 쓰는 편지보다 더 우선한다고 판단한 일을 해내지 못하고 미루고 미루기만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구나. 엄마는 소설을 써보는 중이었어. 열다섯 쪽을 넘어갈 때,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설정 같은데, 하면서 다 지워버렸어. 그리고 다시 텅 빈 종이를 보면서 허탈하게 의자에 앉아있다가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받고 한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떠들어댔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학부모 상담 주간이었어. 다행히 너는 잘 지내고 있구나. 처음에는 어떤 아이와 유독 놀지 않으려 했지만 요즘은 먼저 다가가기도 한다지. 너랑 기질이 많이 다른 아이라서 너도 집에서 그 아이를 많이 언급했던 터라 선생님 말씀을 듣고 엄마는 마음이 놓였어.
너는 요즘 네가 달리기가 느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연습을 하지. 자발적으로 자기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려 연습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너는 알까? 엄마는 네가 정말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한단다. 물론 연습을 해도 넌 아직 달리기가 가장 느리지만, 너보다 빠른 아이들이 약 올리지만, 그래도 네가 멋진 작은 인간이란 사실은 변함없어!
그리고 파워레인저를 열성적으로 보더니만 거기에 나오는 어휘들을 쓰기 시작했지. 너보다 빠른 아이가 너에게 “모욕감을 줬다”는둥 너를 “우습게 본다”는둥 하면서 말이야. 거기 나오는 주인공들이 이 별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틈만 나면 외치더니 결국 네 입에서도 그 어휘가 나오는구나. 듣는 말들을 쪽쪽 빨아들이는 어린이 같으니.
엄마는 요즘 고민이 많아. 네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사를 결정하게 될 거 같은데.. 이사는 워낙에 큰 일이니 일단 말을 아낄게.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야 하지. 오늘의 행복은 네가 아침에 해준 말로 초과달성했어. 네가 오늘 내게 “엄마는 파도처럼 눈이 부시게 예뻐요.”라고 했거든. 네가 내 인생에 존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따 보자,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