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충분히 그럴 아이지
아들에게,
요즘 들어 부쩍 자란 것 같구나. 태권도장 겨울 훈련복을 받아 입혀보니 더 커 보였어. 유치원에서 네 동갑내기들이 워낙에 작은 편이라 네가 그 반사이익으로 더 커 보이는 게 있지. 평소에 형아누나랑 어울려 노는 걸 더 좋아해서 유치원 선생님이 찍어주시는 사진을 보면 꼭 네가 일곱 살처럼 보이기도 해.
얼마 전에 차에서 네가 태어난 이야기를 하다가 너 전에 엄마가 유산을 하지 않았더라면 형아든 누나든 있었을 거란 말을 했었지. 네가 크게 아쉬워했어. 넌 유치원 선생님께도 네게 형아든 누나든 있었을 뻔했다고 이야기했다고 했지. 넌 많은 이야기를 선생님께 해. 저번엔 엄마가 응가하다가 오래 걸려서 유치원에 지각했다고도 말했다지. 앞으론 좀 걸러서 공개했으면 좋겠구나 아들아. 흠흠..
너는 정이 많고 가족끼리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분명히 많이 아쉬웠을 거야. 형이든 누나든 이젠 가질 수 없지만, 동생은 아직도 가지고 싶어 하지. 엄마가 널 낳을 때도 이미 노산이었는데 말이야. 동생 이야기를 아직도 하면서 “난 그래도 여전히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던 너. 전에는 동생이 생기면 기저귀도 갈아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업어준다고 했었지. 네 말이 진짜인 걸 엄마는 알아. 넌 충분히 그럴 아이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자면, 엄마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 셋이 정말 행복한데, 여기에 하나 더 있어서 넷이 복작복작대고 낄낄거리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 말이야. 그런데 주저하다가 벌써 엄마 나이가 이렇게 됐네. 내년이면 마흔다섯이나 되는데.
엄마가 네 동생을 갖는데 주저한 이유는 말이야, 세상에 둘밖에 없는 동기간에 서로 없느니만 못한 관계가 될까 봐였어. 그런 사람들이 많거든. 그건 엄마가 겪어서 잘 알지. 차라리 남이었으면 안 보면 그만인데 부모로 이어져있으니 그것도 안 되는 마음 말이야. 혹시나 네가 이런 마음을 알게 되어버릴까 봐 주저했어. 엄마아빠가 낳지만 어떤 아이가 나올지는 모르는 거잖아?
그런데 널 키우면서 집안 분위기와 서로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 네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말하자면, 한 아이의 인격 형성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곁에서 목도하고 보니 엄마의 걱정은 점점 옅어지더라. 그저, 너무 늦어버렸다는 게 아쉽구나.
아들아, 넌 자라서 좋은 아빠가 될 거라고 했지. 넌 꼭 아이 여럿 낳고 울고 웃고 행복에 겨워하며 삶을 살아가렴.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