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연고를 바른 뒤에 괜찮아반창고를 붙였다고
아들에게,
내일 수료 사진을 찍는다고 선생님이 공지하셨어. 한 해가 갔다는 뜻이구나. 넌 한 해 무사히 자라줬고, 유치원 첫 해를 마무리하며 사진을 찍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수료증이나 수료식 사진을 볼 때는 그냥 아이고 이쁘네 하는 마음정도였는데, 어째 이번엔 감회가 남달라. 내년에는 네가 수료식 사진이 아니라 졸업 사진을 찍게 되어서 그런 걸까. 부쩍 많이 자란 네 모습에 괜히 가슴에 무언가 자르르 흐르는구나. 자랑스러운 마음,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이 뒤섞여 무슨 색깔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야.
며칠 전에는 잘 준비를 마치고 불을 끄고 이불까지 다 덮고 나니 네가 물 마시고 싶다고 했지. 엄마아빠는 이미 수도 없이 잘 준비 마치기 전에 하라고 말했고. 그게 쌓여있어서 그랬는지 엄마아빠는 안 된다고 대답했어. 꽤나 단호한 목소리였지. 그러니 네가 울기 시작했어. 나는 왜 이러지, 오늘 왜 이러지, 아니지, 오늘이 아니라 요즘 계속 왜 이러지, 하면서 흐느꼈지. 그런 자책의 말이 몇 분이고 계속 이어졌어. 아빠는 결국 네게 한 마디 더 했어. 징징대지 말고 정중하게 부탁을 해.
여섯 살의 네가 자책하는 말을 뱉는 걸 보면서 엄마 가슴이 찢어졌어. 저 쪼끄만 게 벌써 나처럼 되려는 조짐을 보이는 건가?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서워졌어. 스스로 탓하는 기분을 엄마는 너무 잘 안단다. 자책은 늪이야. 엄마는 평생 거기서 허우적댔어. 빠져나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 네가 그 길로 안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내가 널 그렇게 만든 건가. 내가 널 대하며 내 엄마가 날 대하듯 대한 건가? 나도 모르게? 평가받고, 공감받지 못하는 느낌을 네가 받았나? 되짚어보니 네가 열창한다며 소리를 꿱꿱 지르며 마음껏 노래 불렀을 때 나는 네게 음정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었지. 네가 클레이를 다 섞어가며 주물럭대니 색깔을 따로따로 둬야 뭘 만들어도 제대로 될 것 아니냐고 말했었지. 너는 흥에 겨워 소리 내다 기가 팍 죽었고, 클레이를 만들다 말고 포기하겠다고 말했지.
네 아빠에게 엄마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 부정적인 사고는 퍼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듣고, 아이에게는 무조건적인 응원이 필요하다는 말도 듣고 그래. 엄마는 자책과 우울의 늪에서 숨이 꼴딱 넘어가기 직전에 겨우 기어 나왔어. 마음속에는 내게서 덜 떨어져 나간 진흙이 네게 묻어 너를 괴롭힐까 봐 늘 두려운 마음이 있었어. 하지만 엄마는 늪에서 탈출한 사람이어서 어쩌면 다행인 것 같아. 너 자신을 탓하고 마음에 브레이크를 일찍부터 걸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거든. 엄마가 한 말 기억하지?
몸도 다치면 치료하며 자라듯이 마음도 그래. 실수한 뒤 괴로워하는 게 마음이 다친 거야. 하지만 자책하는 말로 너를 공격하며 상처를 계속 휘저으면 상처는 나을 수 없고, 그러면 뒤따라오는 성장도 없어.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에 괜찮아연고를 발라. 너는 반창고를 좋아하니 괜찮아반창고를 발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이걸 기회로 더 성장하면 되는 거야.
어제 울다가 내게 와 안긴 너에게 물었더니 너는 마음에 괜찮아연고를 바른 뒤에 괜찮아반창고를 붙였다고 했어. 잘했어. 너무 잘하고 있어.
예민하고 섬세한 내 아이야,
엄마가 널 한없이 사랑한다는 걸 알아주렴.
그냥 네가 내가 삶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해.
너도 너를 듬뿍 사랑해 줘.
이따 만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