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다!
아들에게,
오늘 아빠는 지방으로 출장 갔어. 내일 돌아올 거야. 너는 아빠가 없으면 큰방에서 자길 무서워하지. 방은 넓고, 꾸며놓은 구석 없이 침대와 옷장만 있는 방이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말이야. 너는 엄마와 둘이 잘 때는 서재에서 자는 걸 좋아해. 빛도 조금 새들어오고 방도 휑하지 않아서. 책상, 책장, 소파, 텔레비전이 서재에 딱 앉아있으니 가득 찬 느낌이라고 했어.
언젠가 아빠가 미팅이 잡혀서 사무실에 있다가 밖에 나갔다 온다니 네가 말했어.
"아빠도 오늘 현장학습 가요? 좋겠다!“
그날 이후로 네 아빠의 모든 외근은 다 현장학습이라고 부르지. 네가 현장학습이란 말에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유치원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한 듯하여 흐뭇하기도 했어.
서재는 난로를 피우지 않으면 냉골이지만 엄마는 오늘 좀 따뜻하게 지내고 싶어서 불을 땠어. 참나무 장작이 타는 냄새는 무척이나 향기롭지. 은은한 장작향을 맡으며 온기 속에서 너는 잠들었어. 높던 습도도 적당히 떨어지고 훈훈한 공기 속에 누워있자니 엄마는 우리가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서울을 벗어나 전원주택 생활을 선택하길 잘했다 싶어. 물론 등유값은 비싸고 장작값도 비싸서 아파트 관리비 내는 만큼 내면서도 주택이라 껴입고 살고 화장실도 추워서 겨울엔 난방기를 틀고 쓰지만 아파트와 전원주택의 장단점은 겹치는 점이 거의 없어서 비교를 할 수가 없네. 엄마는 아파트에서 자랐지만 왠지 네 유년기가 나의 그것보다 더 스스럼없고 자유로워보이는 것 같아.
넌 아까 장작 때면서 서재에서 자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루어져서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하더니 말을 마치고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잠들어버렸구나. 아빠가 현장학습에서 돌아오면 셋이 같이 서재에서 자고 싶다고 했지. 아빠한테 그렇게 말해보렴. 안 될 것도 없지.
방금 적당히 탄 장작이 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어. 고요한 가운데 그런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새벽에 온기가 식으면 또 어떨지 오늘 밤 자보면 알게 되겠지.
꿈 없이 푹 자렴.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