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함으로써 자유를 주는

책 같은 사람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개학날이 되었구나. 너는 방학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쉴 때 도서관에 가고 싶으면 가고, 물놀이를 하고 싶으면 하고. 공기주입식 풀은 어느 순간부터 푸슉거리면서 바람이 빠지는 바람에 화딱지가 난 엄마는 인텍스 패밀리 풀장으로 교체해 버렸어. 패밀리 사이즈라고 된 것들 중에서는 가장 작지만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꽤 넓었지. 한 번 설치해서 며칠씩 놔두다 보니 왜 뚜껑이 필요한지, 왜 필터펌프가 필요한지도 체감했어. 날씨를 생각하면 딱히 더 물놀이를 할 것 같지 않으니 올해는 이렇게 지나가고 내년부터 필요 물품을 구하면 되겠구나. 누구에게나 어쩜 이렇게 뽀얄 수 있냐는 소리를 듣던 네가 제법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고 있으니 색다르고 좋네.


방학엔 체육만 했는데 이제 개학했으니 각종 수업과 현장학습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방학엔 심심하다더니 즐거워지겠군. 방학 때 뭘 했냐 생각해 봤는데, 딱히 한 건 없네? 도서관, 영상물, 물놀이 세 단어로 거의 정리가 되는구나. 뭘 했으면 어때, 안 아프고 건강하게 잘 놀았으면 된 거지.


엄마는 최근에 지나영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를 읽고 있어. 거기서 매우 인상적인 문장을 발견했어.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간다." 그러네! 싶은 거야. 둥둥 떠내려가야만 늘 물결을 따라 움직이겠지. 난 네가 살아있는 물고기면 좋겠어. 그래서 육아의 본질은 무얼까 자꾸 책을 뒤져보는 거야.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 네게 말했을지도 몰라. 엄마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 아니, 책이 왜 좋은지에 그 이유를 말이야. 엄마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검증에 있어. 한 분야의 전문가 혹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험과 성취도를 가진 자들, 그리고 그런 사람의 글과 말을 꼼꼼히 확인하고 책을 내는 출판사들의 검증 시스템을 믿는 거지. 사람들의 말에는 반응이란 게 필요해. 다들 목석과 이야기하는 거 아니니까. 어떤 종류이든 자신의 반응을 드러내거나 숨기려 하여도 드러나거나 하지. 그걸 토대로 타인은 나에 대해 저절로 생각이 정리되겠지. 나랑 잘 맞겠다, 안 맞겠다 같은 판단도 가능하고.


하지만 책은 내 반응을 유보하면서 끝까지 읽어보고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할 수 있어.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내가 결정을 내리면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지. 침묵함으로써 자유를 주는 현명한 자, 그게 책이야. 책들도 해변의 모래알만큼 많지만, 요즘 필터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정보에 비할바가 못되지. 너도 책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일단 네 나이에 책에 거부감이 없고 즐거운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그 태도를 보면 시작이 괜찮은 것 같아서 흐뭇하네.


네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워낙에 "대세"나 "주류"라는 단어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의 사람이라 그런지, 휩쓸려가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단다. 우리 모두 자연의 일부라 늘 변화하고 있고, 너 또한 자라면서 변하겠지? 남들을 따라가고 싶기도 하고, 남들이 뭐라건 네가 좋은 게 좋기도 하고 뒤죽박죽 섞이면서 혼란도 겪겠지. 엄마는 네게 책 같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 쉽진 않겠지만, 해볼게.




오늘은 태권도 가네?

태권도 그만두고 싶다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또 좋다면서 잘 다니고 있어서 기특해.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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