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37. 영화 <다우렌의 결혼>
1.
다큐멘터리 <세계의 결혼식> 촬영을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난 조연출 '승주'. 그곳에서 만난 고려인 감독 '유라'는 자신만 믿으라는 자신감 넘치다 못해 방만한 태도를 보이다 결국 부상을 입어 작품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든 작품을 완성만 해오면 연출 데뷔 시켜주겠다는 대표의 말에 넘어가 촬영감독 '영태'와 함께 촬영 현장을 향한다. 하지만 이미 촬영해야 하는 결혼식은 끝나버렸고, 어떻게든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야 하는 승주는 유라의 삼촌 '게오르기'의 제안으로 가짜 결혼식을 열어 촬영하고자 하고, 승주 본인이 신랑 '다우렌'으로 분해 현지에서 섭외한 '아디나'와 함께 결혼식을 준비한다.
2.
간단한 이야기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카자흐스탄이 배경이고, 대부분의 등장인물들도 고려인으로 채워져있다. 기존 고려인들을 다룬 매체들의 태도를 봤을 때 고려인들을 그 곳에 살고 있는 온전한 인물이 아닌 자신의 뿌리에 대한 결핍이나 추구를 가진 인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우렌의 결혼>의 경우, 이런 시선에서 한발짝 떨어져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 여기가 좋아요', '한국이 더 넓은 세상이고 모두 가고 싶을 거란 생각 하지 말아요', '여기 있다고 꿈이 작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등 극 중 이디나의 대사는 극 흐름상 순간의 감정적 요동으로 인한 대사일 수 있지만 고려인의 주체성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 하다.
3.
승주는 다큐멘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처럼 언뜻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인터뷰한 인물들 이름을 알지 못해 축구선수 이름으로 대충 채워넣는 그를 다큐의 진실성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여러 상황의 압박이 있기야 했지만 애초에 승주가 '가짜 결혼식'을 촬영하는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임을 생각했을 때, '다큐에서 중요한 것은 팩트'라는 말로 혼나지만 결국 또 다시 거짓을 꾸며 다큐를 찍어내는 승주를 보면 사실 다큐멘터리 연출로서의 자세가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봤을 때 영화는 승주가 입봉을 위한 고군분투를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다큐멘터리의 가치(그것이 앞서 이야기한 '진실성'이 되었든 다른 무언가가 되었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양궁선수를 꿈꾸던 아디나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되고, 아이들에게 양궁을 가르치며 양궁의 주변을 멤돌던 인물이다. 양궁과 더 넓은 세상에 미련은 남지만, 챙겨야할 것들이 많은 현실에 넘어진 인물이다. 아마 그런 현실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꿈을 찾아 떠나라는 승주의 말에 되려 버럭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승주와의 가짜 결혼식 촬영을 통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된다.
이렇듯 결국 <다우렌의 결혼>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본인들 속에 숨어 있던, 그러나 용기내 드러내지 못했던 진짜를 꺼내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승주가 예전부터 기획했던 다큐멘터리 <갈치의 꿈>을 실제로 촬영했을지, 아디나가 양궁선수로서 크게 성공했을지 그것보다는 그들이 갈피잡지 못했던 '진짜'를 끝내 찾아냈다는 점에서 가짜 결혼식이라는 여정의 의미가 꽃피운다.
4.
'KAFA 글로벌 프로젝트 선정작으로 영화 대부분이 카자흐스탄에서 촬영되었다'는 이야기가 모든 홍보 자료에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러한 이국적이고 탁 트인 촬영 현장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셀링 포인트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홍보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영화 내에서도 그 자연 풍광이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준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가짜 결혼식을 진행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스리슬쩍 넘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이야기를 카자흐스탄의 자연 풍광에 펼쳐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부분 아쉬움 남는 영화긴 하지만, 목가적인 풍광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귀여운 이야기를 통한 치유를 원한다면 한번쯤 감상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