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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Oct 24. 2024

거문오름을 오르며

누구였을까-스노

거문오름을 오르며



               

누구였을까?

억새 우거진 숲길을 묵묵히 걸어가던 사내

산속으로 더 깊이 사라지던 뒷모습

쓸쓸함이 바람을 타고 흐른다

제주의 바람, 검은 흙의 향기를 품고

그리움의 속삭임처럼 퍼진다

     

검은 것들이 모여 있는 곶자왈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땅에 돌을 쌓고

거친 손길로 씨를 뿌리던 옛사람들

4·3의 총칼 아래 무너진 삶

거문오름에 올라 목 터져라 울부짖던 그들

누가 그 눈물을 기억할까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가족의 웃음이었고 따스한 집의 불빛이었다

     

아프게 검은 땅을 뚫고 솟아난

붉은 독초 천남성, 그 울음마저도 껴안으며

땅속을 적시는 용암의 흔적들

깊고도 뜨거운 상처가 굳어버린 이 땅,

그 위로 아픈 시간은 덮여 버렸다

     

삼나무 가득한 거문오름 숲길을 걸으며

그때의 사내를 생각한다

쓸쓸히 발걸음을 옮기며,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되뇌었을 그 사내를,

그의 슬픔이 아직도 이 땅에 맴도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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