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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를 사지 않은 복은 보복이 된다

사뭘기 2025(1)

by 선우비 Mar 10. 2025

1.

연휴 내내 내린 비가 오스씨의 3월 첫 출근 날에도 어김없이 쏟아졌다. 출근길에 음악이나 들을까? 다운로드된 음악들을 훑어보니 언젠가 백은하 음악 평론가가 추천한 밴드 '소울딜리버리'의 앨범 <뉴웨이브>가 가장 먼저 뜬다. 기묘한 음향이 자잘하게 배치된 노래가 흘러나오자 오스씨가 뭔 노래가 이러냐 한다. 뽕끼와 댄스 리듬이 있는데도 어딘가 나른한 음악들, "아침부터 졸린다. 다른 음악 없어?" 투정이다. 할 수 없이 지드래곤의 새 앨범 <위버맨쉬>를 틀었더니, 출근길 음악에 딱이란다.

집에 돌아와 좀 놀다가 점심을 차려놓고 유튜브 앱을 연다. 오늘의 런치메이트는 어떤 영상? 찾다가 EBS의 <건축탐구>를 튼다. 우리의 유튜브 식사메이트는 대체로 <오마르의 삶>, <자취남/유부남>, 아니면 탤런트 김영옥씨가 내레이션을 맡는 EBS의 집 관련 프로그램이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부제가 끌려서 클릭했는데, 어머어머어머낫!!!

제작진이 찾아간 곳이 밴드 <소울딜리버리>의 멤버가 사는 집이다!!!!!!!!

이런 우연이! 아아앗!

얼마 전(이월기 포스트의 8번 참조) 전날 테넷을 보고 다음날 아침 라디오에서 테넷 해설을 듣는 우연을 '당했다'라고 흥분했었는데, 이번에도 이런 우연이!

더구나 테넷은 메인스트림 영화라도 되지. 소울딜리버리라는 밴드를 누가 안다고!(밴드, 팬 모두 죄송)

뭘까 뭘까, 왜 자꾸 이런 우연이 반복되는 걸까? 어떤 계시 같은 건가?

복권을 사라는? 응? 응?

지난 터넷 사건은 홍보알고리즘의 낚시일 뿐이라 애써 무시했는데, 이번엔 무시하기 힘들다. 이번 주 로또, 딱 기다려!


2.

결국 박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시집에 수록된 시가 수필에도 종종 눈에 띈다. 시의 주제를 확장한 이야기들도 종종 보이고. 어쩌면 수필은 시를 쓰기 위한 스케치, 또는 비하인드스토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시와 쌍으로 읽으면 더 즐거울 듯하다.


3.

작년 한 해 동안 본 영화가 열 편 안팎이어서 영화 매체랑 완전히 멀어졌다 싶었는데, 새해가 되니 영화가 당긴다. 시작은 역시 마블. 연속극 보듯 <캡틴 아메리카>를 골랐다. 또 재미없다. 그래도 아마 다음 마블 영화가 개봉되면 또 보겠지. 한번 꽂히면 싫어도 모으는(?) 나의 삐뚤어진 수집벽, 이럴 때 참 싫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재미없는 신작도 계속 사야만 했던...

두 번째는 젊은 시절 열광했던 판타지 소설 <퇴마록> 극장판이다. 예고편 보고 박신부 피지컬에 홀딱 반해 극장을 찾았다. 만족 만족 대만족!!! 제작진이 제발 2편 만들어줬으면! 빨리 개봉해 줬으면!

퇴마록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폭발해 넷플릭스에서 <나혼자 레벨업>을 정주행 했다. 카카오웹툰에서는 몇 번 시도했다가 계속 중도하차했었는데, 퇴마록 때문에 애니력이 올라서인지 홀린 듯이 연휴 내내 다 봐버렸다. 이어 내친김에 제목에 낚여서 <나의 행복한 결혼>을 클릭했다. 달달한 결혼생활 애니인 줄 알았는데, 판타지 시대물? 낯설지만 재미있다! 시즌1/2를 마스터하고 영화까지 휘리릭! 애니 별로 안 좋아하는 오스씨까지 동참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막장 요소가 많지만 주인공이 고구마 짓을 안 해서 좋다는 오스씨의 평!

이어 오래전부터 제목은 많이 들어본 <장송의 프리렌>으로 내달렸다. 마왕을 물리친 이후, 용사도 죽은 이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독특한 전개가 신선하다. 배틀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힐링 지향인 점도 흥미롭다. 심심할 때마다 곶감 빼먹듯 하나씩 챙겨보는 게 좋겠다.

숏폼에 중독되어 영화를 봐내기가 힘들었는데, 정주행을 쭉쭉하다 보니 다시 장편을 볼 정신력이 구축됐다. 극장 나들이가 익숙해지니 작년에 패스해 버린 <위키드>도 눈에 들어왔다.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연 두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는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영화의 전당에서 아카데미 특별전을 진행 중이어서 가능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입이 딱딱 벌어져서, 이걸 도대체 왜 개봉 시 아이맥스로 안 봤을까 후회에 후회를! 2편이 이렇게까지 기다려지는 영화는 어벤저스 이후 처음이다. 2편 개봉할 때 분명 1편 아이맥스 재개봉할 텐데 그때 또 봐야지.

넷플릭스가 과연 요물인 게, 드라마 싫어하는 나도 자꾸 클릭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드라마 <아수라처럼>으로 시작해, <the Hot Spot>, <마녀>까지 리모컨을 놓을 새가 없다. 소설, 언제 쓰냐...

  

4.

부산 미술랭 관련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한 해 동안 다녀본 17군데 가게 중 내 맘대로 1위를 꼽았고, 그 영광을 차지한 음식점은 태국요리 전문점 <피리피리>였다. 이 가게는 복잡한 광안동 골목 안에 있는데, 처음 이 가게에 갔을 때 일이다. 가게 옆 골목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식사를 마친 후 집에 가려는데 오토바이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배터리가 나간 듯하다. 오토바이 구매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가 추석 연휴 첫날이었다. 오토바이 수리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베스파 배터리를 취급하는 곳은 연휴가 끝나야 문을 열었다. 오토바이를 끌고 집까지 가기엔 너무 무리였다. 그렇다고 장장 4일 동안 골목에 주차해 둘 수도 없고... 해서, 광안동에 사는 퀴어커플의 집에 잠시 맡기기로 했다. 거기까지 끌고 가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온몸이 함빡 젖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피리피리>는 우리 집에서 오토바이로 10분이면 도착인데,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 30분 이상 걸린다. 오토바이가 아니면 가고 싶지 않은 동네다. 그래서 내 맘 속 미슐랭 1위를 차지했으면서도 발걸음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난달 해운대에서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피리피리에서 저녁을 먹을까 싶어 그쪽으로 오토바이를 돌렸다.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속도를 줄이며 가게 앞에 주차 자리가 있나 살피는데............ 뭐냐. 갑자기 푸시식 하며 오토바이 시동이 꺼졌다.

소......오.......름.

교체한 지 5달 만에 배터리가 나가? 수리점 주인이 우리에게 불량품을 판 거야?

다시 시동을 거니 다행히 제대로 걸렸다.

"세워두고 가게에 들어갈래, 어쩔래."

오스씨가 물었지만, 왠지 여기에 오토바이를 세워두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오래 두면 오토바이에 무언가가 달라붙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때도 식사한다고 한 시간 가량 주차를 해서 시동이 나간 건지도... 귀신이 작업할 시간을 준 거지...

"그냥 가자."

완전 쫄보 모드로 돌입해 냉큼 그 자리를 떠났고, 오토바이 배터리는 그날 이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뭘까, 그 가게 앞은. 무엇이 서식하고 있을까. 당시엔 무섭기도 하고, 멈춘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는 노동량에 기겁해 도망쳤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시 가보고 싶다. 공포영화 초반에 죽어나가는, 가지 말라는 곳에 굳이 굳이 기어들어가는, 조역들의 심리가 이해가 가는 듯하다. 가게 되면, 그 결과를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5.

로또는 사지 않았다. 안 하던 짓, 못하겠더라. 그런 거에 휘둘리는 내가 싫기도 하고.

그런데, 그 다음날, 두 가지 커다란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는 내 사랑 박준 작가가 4월 초에 내가 사는 동네 도서관에서 강연을 한다는 거다. 또 하나는 나의 글 스승인 김비 작가가 역시 홍예당에서 최근에 출판한 <혼란 기쁨>의 북토크를 한다는 거다. 둘 다 '어쩜 그럴 수가 있지?' 싶게, 내가 괌여행을 가는 그 주에 행사를 한다. 로또를 사야 하는 복이라는 것은, 로또를 사지 않았을 때엔 보복으로 전환되는 건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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