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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Aug 27. 2024

북방 이야기 : 계모 3

[소설]북방 이야기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북방삼걸 이후 유일하게 늑대들의 공세에서 백성들을 지키고 그들의 공격을 막아낸 장수라는 사실을… 그리고, 저번 황위 쟁탈전으로 피비린내나는 혈전을 벌인 황실에…

남은 가장 적통에 가까운 일족이라는 사실도. 설령 그게 아닐지라도, 하다못해 내가 황실과 무관한 거리에 널부러진 거지 나부랑이라도 지금의 나외엔 황제가 될 자격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도성에 오는 동안 나는 깨닭았다. 예전과는 다른 흉하게 뭉게진 나의 얼굴… 백성들은 그 얼굴을 싫어하지 않았다. 시련을 이겨내고 백성들을 위해 싸운 나에게 그들은 진심으로 존경심을 가지고 대했고, 소소한 저항은 무시되었다. 황궁에 도착한 나는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태황대비가 되셨다. 나의 아들은 태자로, 아내는 황비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생에 있어 나를 가르치시고 사람답게 키우신 어머니의 공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감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다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소자, 앞으로도 어머님의 뜻을 따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제 의지로 살아가겠습니다.”


“공자… 아니, 이제는 황상… 이 천한 어미가 그렇다면 한가지 의견을 내도 될까요? 들어주실 수 있나요?”


“뭐든 말해주십시오. 소자,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얼마 후 나는 어머니의 말을 첫 조정신료들의 중신회의에서 밝혔다. 그들의 표정이 난감했다.


“장성을… 다시 세우신다고요?”


“그렇소. 그대들이 왜 그런 표정을 하는지는 내가 더 잘알고 있소. 내 부친이신 태상황이 저지른 만행… 장성은 그것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소. 하지만, 그 부정을 걷어낸다면 장성은 우리 한족에게 필수불가결의 것이오. 

이제 앞으로 늑대들의 칸과 그들의 장수가 내전을 벌일 것이도. 그것에 국가의 총력을 다해 장성을 쌓고 그들이 선호하는 기동전을 제한한다면… 그것으로 내전이 끝난 이후 전쟁의 종식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오. 더는, 무의미한 전쟁으로 피를 보는 것은 원치 않소. 

한족이든, 늑대든… 다들 경계를 기점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자들이 서로 넘나들며 평화를 구축 할수 있다고 생각하오.”


“하오나… 그 장성의 공사는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걸 어찌 간단히…”


“황제가 직접 벽돌을 나르고 처마에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조밥을 먹어도… 내 절대 그것으로 인해 백성들을 곤궁하게 하며 진행하진 않을 것이오. 그것은 내가 직접 감독하도록 하겠소.”


그렇게… 장성은 세워졌다. 과거의 전쟁을 위한 성이 아닌… 전쟁을 막기 위한 성이 세워져서 국경을 따라 구축되어 갔다. 그것은, 오랜 세월의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늑대들의 내전이 길어진 덕분에 그것은 큰 방해없이 세워졌지만 몇번이나 예산과 반대를 부딪치며 좌초될뻔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장성을 통해 보존되는 병력과 안전을 보장받은 백성들의 생계가 편해지자, 점차 그것은 지지를 받았고, 어느새 그것은 평화의 상징으로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정신을 차리소서. 소자를 두고 떠나시 마시옵소서.”


“공자… 아니, 황상… 나는 그대에게 어떤 어미였나요?”


“더 바랄 것이 없는 훌룡한 어머니셨습니다. 제 인생의 인도자셨으며,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셨으며,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신 구원자였습니다. 어머니는 단순히 제 개인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만 백성의 어머니입니다. 기운을 차리소서…”


어머니는 그런 나의 말에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쓸어만졌다. 그리고 말하셨다.


“미안해요… 공자…”


그게 마지막 말씀이셨다. 마치 꽃이 지듯이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어머니는 병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내안의 슬픔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절망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황제였고, 어머니는 그런 자신의 위치에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르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장성의 완공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 후에 일에 대해 노력했다. 이제 오랜 내전으로 사분오열된 늑대들… 그들은 장성으로 인해 원활한 운영을 하지 못하고 궁지에 몰려 있었고 점차 우리측에 귀순하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자들을 받아들였다.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오랫동안 늑대들과 싸워온 한족의 입장에서는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들에게 평화를 원하는 자는 그 누구든 장성의 안에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고하며 그들을 수용하고 우대하였다.

점차, 늑대들의 매파인 새로운 칸은 설 자리를 잃어갔고, 그들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출병해야 하네.”


“아니되옵니다. 폐하.”


나는 대신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그것은 어느 군소 늑대 부족에 대한 지원의 문제였다. 늑대들의 칸이 실종되고, 그들은 내전으로 점차 약해져갔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늑대들이 우리 측에 귀순해왔다. 얼마전 어머니가 남기고 간 내 하나뿐인 여동생을 시집보낸 작은 늑대 혈족의 젊은 왕자가 당당히 각료로 어전회의에 참석한 것만 봐도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도 있었다.


그들의 칸이 실종되고, 이제 와해되던 늑대들의 재집결을 천명한 야심가가 있었다. 그는 실력은 선대 칸에 못미쳤지만 잔인함은 훨씬 더한 인물이었다. 숱한 부족들이 그의 손에 피를 보았고, 그 여파로 우리 측에 귀순해왔다. 그리고 그 야심가가 노린 다음 부족도 비슷하게 진행되리라 여겼으나… 

그들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그들은 바로 선대 칸이 이끌던 부족, 그러니깐 과거 우리 한족의 북방삼걸을 해치운 그 부족인 것이다.


의지할 곳 없는 그들은 야심가에 손에 몰려 우리에게 구원을 청하고 원병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과거 그들의 손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잃은 조정의 신료들은 물론, 그들이 벌인 내전으로 가족들을 잃은 귀순한 늑대들의 후예들 마저 그들의 수용은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 역시… 마음이 불편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설득하였다.


“과인은 늙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아직 어머니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 가장 바르다고 생각한다. 과인이 지금까지 황위에 있으며 그대들에게 부끄럽거나 한심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보았는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삶의 주인이 되어라… 그것은 비단 내 어머니가 어리석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르신 것에 족하지 않고 제국을 다스리는 치세의 규범으로서도 훌룡히 자리잡아 주었다.


지금 그들은 상처입고 우리 품에 들어 오려는 가련한 새와 같도다. 그들의 죄가 무거움은 아나, 과거의 행적으로 사람을 벌한다면 누가 늑대들의 병사들을 상대로 40일의 저항을 했을 것이며, 누가 장성을 쌓아 이토록 항구한 평화를 만들었으리라 생각하는가?

과인은 그리 큰 것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병력만을 데리고 가서 그들의 유민을 보호해 장성으로 데려오면 다 끝날 일이다. 그 가련한 자들에게 그 정도의 온정을 베품도 무리이면서 어지 천하를 논하려 하는가?”


나의 말에… 몇몇 신료들이 조금 굳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얼마전 우리에게 투항하여 여동생과 결혼한 늑대의 왕자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폐하… 잠시 사람들을 물려주시옵소서. 간할 것이 있나이다.”


허락할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비장한 그의 모습을 보고 허락하였다. 사람들이 물러나자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경악했다.


“그럴…수가 없다. 말도 안돼.”


“전부… 사실이옵니다. 저희도 얼마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족에 잠입하고 있던 밀정이 자수하며 선대 칸이 저지른 일을 죄다 밝히지 않았다면 영원히 아무도 모른채로 사라져 버릴 비밀이 되었겠죠. 이미, 그가 수많은 밀정을 이용해 적진에 잠입시켜 자신의 의도대로 전쟁을 이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밀정 중에서… 그분도 일원이셨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사실을 고하나이다. 폐하, 폐하의 어머니이신 태황대비 마마는… 칸의 밀정이었습니다.”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내 머리속에 착착 상황이 맞아 떨어져 갔다. 처음부터 그랬다. 피난민 출신이면서 학문이 뛰어나고 예능에 재주가 있어 아버지를 한눈에 반하게 만든 재능… 그건 밀정으로서 준비한 공부의 결과겠지. 

그리고, 마마가 세상을 뒤덮은 곳에서 나를 구하러 와서 멀쩡히 돌아다니던 모습… 늑대의 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소를 기르며 얻은 우두로 마마에 면역을 얻은 탓이겠지.


아버지의 직위를 받지 말고 사람들에게 채무를 청산하라는 그 조언… 덕분에 그들의 칸은 허술하나마 방어기지가 되었던 장성의 방해없이 자유롭게 국경을 유린할 기동범위를 확보했지. 

그리고, 그 농성전에서 그들의 병사가 한 말… 그 안에 숨어 있던 밀정은 어머니였다. 그래서, 그날밤 성루에서 나와 마주친 거겠지. 성문을 열려다가… 나를 만나서 들킨 것이고… 나에게 한 조언은, 내가

긍정적으로 해석했으니 기습으로 이어졌지만, 사실 제안을 수용하라는 의미에 가깝게 말하려 한거겠지.


그리고 황도로 돌아와 했던 이제는 장성을 세우라는 요청… 그건 내전에서 방해받지 않고 동포의 싸움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군의 기동을 저지하기 위해 바뀐 상황에 맞게 나에게 요청한거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그 미안하다는 말…

그것으로 확실해졌다. 그녀는… 칸의 밀정이었다. 부들부들 떠는 나에게 왕자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태왕대비를 생각하는 폐하의 마음을 알기에 무덤까지 가져가려 하였지만… 역시 이번 일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물러갔다. 나는… 하루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은채로 번민했다. 대체 왜… 왜 나에게 그런 짓을… 진심으로 존경했는데.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나는 한참동안을 절망에 빠진 채로 홀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과인은 혼자 있고 싶다고 했노라.”


“폐하… 저입니다.”


황후였다. 나는 황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대는… 혹시 알고 있었는가?”


무거운 침묵… 아, 역시… 알고 있었구나. 나는 아내에게 사과했다.


“그래, 알고 있어도 말할 수 없었겠지. 내가 그분에 대한 존경이 그리 간단한게 아니니, 발광을 할게 틀림없으니 말하기 어려웠겠지. 그래… 이해하오.”


그러나, 아내의 말은 조금 달랐다.


“아뇨… 그런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여자의 이기적인 마음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왜… 어머니는 그러셨을까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보고 느낀 것만 가지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나는 내 스스로 새로운 결론을 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후처가 된다고 해서, 굳이 나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마마에 면역이라고 해도, 굳이 나를 구하러 올 필요가 없다. 장성의 구축이 중단된다고 해서, 굳이 나를 거둘 이유도 없다.

적들의 포위에 빠져 있다고 해도, 굳이 내게 살 선택을 강요할 이유는 없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다.. 굳이 나를 위해서 그럴 이유는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때 아내가 말했다.


“늑대는… 아비가 죽으면 아들이 생모를 제외한 계모들을 물려받는 다더군요.”


그렇다. 그들은 그렇다고 들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늑대의 여자에게 있어서,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아이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알수 있었다. 왜 그녀가 그렇게 나를 위해서 살아주었는지. 그리고… 아내는 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지. 대신에 나는 아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나 스스로도 뭔가 통제되지 않고 이해하기도 함든 감정을 느끼며 떠나보낸 어머니…

그리고, 내 첫사랑을 드디어 내 마음속에서 떠나 보낼 수 있었다.


“제국은… 그들을 지원하지 않는다. 원정은 없다.”


나의 말에 늑대의 왕자를 비롯한 대소 조정 신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딱했다. 앞으로 내가 할 폭탄발언에 놀랄 그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어쩔수가 없다.


“대신에, 제위를 태자에게 넘기겠다. 태자는 와서 옥새와 보관을 받으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신료들이 뒤로 넘어갈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의 말은 이어졌다.


“앞으로 태자가 황제로 즉위할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도와 온화하고 성실하게 정무를 경험한 태자는 좋은 황제가 될것이다. 이제 나는 상황으로 야인이 된다. 그러니… 나는 북방으로 가겠다. 

황제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나 개인이 가는 것은 막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를 따르고 싶은 자는 따르고 아닌 자들은 도성에서 황제를 보필하라.”


“하오나 폐하!!!”


수많은 신료들이 나를 만류하였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복을 벗고 나와 북방으로 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초립을 쓰고 낡은 갖옷을 입고 북으로 가는 나를 따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곁에는 아내가 있었다.


“황비, 그대는 남으라.”


“황제도 아니면 다 늙어서 마누라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요. 이제 물러났으니, 나도 이제 야인입니다. 일생 당신이랑은 지긋지긋한 악연이죠. 악연으로 처음 만나서, 꼴사납게 청혼을 받고, 일생을 연정을 효도로 착각하고 다른 여자만 보는 당신은 참 짜증나는 남자죠. 

하지만, 이제 그 긴 짝사랑을 마무리 한 것 같으니 앞으로는 내 몫이겠죠. 가시죠. 늙은 계집이 죽을때까지 당신 곁에서 남아 지긋지긋하게 해드리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꾸 쳐내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왠일인지 전쟁에 준하는 작전에 나서는 데도 기분은 좋았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북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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