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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Aug 28. 2024

북방 이야기 : 비밀 1

[소설]북방 이야기

“사랑하기에 비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를 떠난 그녀를 처음 만났던 것은,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어둠속에서 내리는 비로 인해 달빛조차 없는 어두운 밤에 나는 홀로 술을 들며 기다렸다. 이미, 사람들은 다 치워두었다. 그리고 신변의 정리는 마쳤다. 그 아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일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예전에 그녀와 많이 닮은 그 아이를 기다리며 나는 오랜만에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그 아름다웠던 시절,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다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시간, 25년이 지나도 기억 속에 선명한 그 시간을 나는 술잔을 넘기며 떠올리고 가슴 아파했다.


“무슨 소란이냐?”


얕은 수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기가 살짝 도는 것을 느끼며 단잠을 깨운 병사들에게 물었다.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나의 일갈에 다들 우왕좌왕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한심함을 느꼈다. 군복조차 엉망진창으로 입고 무기도 겨우 창대가 썩어가는 허술한 것들 것 든 병사들… 그들이 지금 제국을 침공해오는 북방의 늑대 부족들을 막으라고 나에게 주어진 전력이다.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지 않게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오합지졸들… 실제로 아직 전초전이고 작은 전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처구니없는 참패를 거듭하였다.


상황은 이가 갈리도록 넌더리가 났다. 왜 나는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을 데리고 강대한 적들을 막아내야 하는 걸까? 그것은 역모를 저지르고 사망한 나의 외조부 때문일까? 반란의 전리품으로 나의 아버지, 황제 폐하와 시침을 하고, 나를 가진 어머니 탓일까? 아니면,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아버지의 장자를 낳고 마치 황후처럼 구는 명귀비나 든든한 외척 세력을 가진 정실 황후지만 3남을 낳은 덕분에 다소 불리한 입장의 석태후의 질투일까? 아니… 결론은 알고 있다. 그것은 내 탓이다. 형과 동생을 전장에 내보내지 않기 위해 손을 쓴 두 여자의 모략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운 나의 잘못이다.


나는 그 전투에서 죽어줬어야 했다. 하지만, 살아 돌아왔고 그래서 그들은 나의 존재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가서 싸우다 죽으라는 것이 명명백백한 오합지졸을 넘겨주고 강대한 적들을 막아내라는 어명을 내리게 한 것이다. 날 때부터 역적의 핏줄로 태어나고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의지가지 할 곳도 없고, 제위에서도 먼 나의 미미한 존재가 그들에게는 그리도 마뜩치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비통한 마음을 담아 씁쓸히 자조하며 그저 술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취하여 얕은 잠이 들었을 때 밖에서 들리는 병사들의 소리에 잠이 깬 것이다. 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하였다.


소란의 장소에서 발견한 병사들은 어느 남루한 모습의 난민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왠지 짜증이 났다. 연전연패를 하던 오합지졸들… 형편없는 전력인 주제에 그래도 창을 쥐었다고 그 폭력성을 발휘할 곳을 찾는 것은 어느 군인이든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보아하니, 전쟁터에서 항상 그렇듯이 패배한 울분을 담아 도망치는 난민들을 적으로 몰아 약탈이라도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이놈들, 내 진중에서 백성들에 대한 약탈을 하는 놈은 참형에 처한다고 분명히 고했거늘… 네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하… 하오나, 왕자님. 이들은 그냥 난민들이 아닙니다. 이 자들은 다름 아닌 수련족입니다.”


“수련족?”


나의 반문에 그들은 당위성이라도 얻은 듯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난민들을 바라보았다. 남루한 행색에 여느 난민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들… 하지만 유랑민족인 그들 특유의 익숙함이 보인다. 나는 수련족에 대한 소문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한족들과는 다른 인종인 그들 수련족은 항상 정착하지 않고 유랑을 다니는 백성들이다. 유랑은 단순히 유유자적한 여행이 아닌 때로는 민가에 식량을 훔치거나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을 수반한다. 이방인인 그들이 배척당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배척을 넘어 당연하게 증오를 사고 있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행각 때문이다.


그들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미래의 일을 점치고 세상의 비밀을 알아내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특히나 그들의 여자 사제이자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새터니는 단순한 점을 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놀랄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그것으로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한다. 실제로, 왕조에 나타난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여러 황제의 여자들은 다들 수련족이었고, 그중에 가장 최근에 사례는 나의 증조부대에 황도를 요사한 능력으로 불길에 휩싸이게 만든 참사를 벌인 새터니가 실제로 존재했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사람들은 다들 수련족을 박해하고 학살했고, 그들은 중원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북방의 늑대들의 영역에 멀지 않은 곳에 일부가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병사들이 말했다.


“요사한 사술을 쓰고 우리에게 저주를 내릴 자들입니다. 죽이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허락하여 주십시오.”


병사들의 요청에 나는 그들을 돌아보았다. 남루하고 지친 모습… 다들 여자와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청년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그들을 버리고 살길을 찾아 도망쳤거나 아니면 유랑 중에 박해를 받아 살해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여자와 노인들은 겨우 죽지 못한 삶을 연명하다 여기서 이렇게 발견된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최후를 직감하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절망스러운 모습… 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하다. 무리의 중간에 있는 한 소녀는 두렵지만 분하다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런 그들의 모습에 동정이 갔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그리 다르지 않은 처지다. 저지르지도 않은 황위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견제에 시달려 이 죽을 전장에 내몰린 내 모습… 그건 그들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설령 사악한 술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나에게는 더 나빠질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들이 두렵다기 보다는 가련해졌다. 나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놓아주어라. 그냥, 난민들이 아닌가? 설령 수련족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노인과 여자들만 있는 불쌍한 난민들이다. 보내줘라.”


“하… 하오나!!!”


“명령을 내렸다. 항명할 셈이더냐?”


나의 말에 병사들은 당황하였다. 하지만, 마지못한 모습으로 포위를 풀었다. 그리고 그때 한 장교가 말했다.


“왕자님, 그렇게 명하시니 풀어주기는 하겠지만 그냥은 보내서는 안 됩니다. 저들이 언제 또 세상을 어지럽힐 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에게 조치를 취해서 보내도록 허락하소서.”


“조치라니?”


“그들의 무리 중에 특히 가장 사악한 힘이 강하다는 우두머리… 그들의 새터니는 이곳에 남겨놓고 가게 하소서. 그래야 병사들이 안심할 것입니다.”


나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미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 나는 한숨을 쉬며 그에게 그러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그 명령의 결과가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을 것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부대의 주둔을 명하고 나의 개인 막사로 들어와 잠을 청하려던 다음날의 일이었다.


“너는?”


“…..”


내 막사에 놓인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수련족의 무리에서 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아이였다. 이 아이가 수련족의 지금의 새터니인건가? 나는 자그마한 소녀의 모습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웃음이 그녀를 화나게 만든 듯 하였다.


“몸을 농락당하는 것으로 부족합니까? 저항할 힘도 없는 범할 여자를 두고 그런 웃음을 지어 욕을 보이시면 기분이 훨씬 유쾌하신가 보군요.”


“농락? 범하다? 아… 하긴 그런 상황인가 보구나.”


아마도 그 장교는 명귀비나 석태후의 비선인 모양이다. 그러니, 나에게 나라를 망하게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경계하는 수련족의 새터니를 붙잡아서 진중의 침소에 들이다니… 이것만으로도 나중에 참형을 해도 할 말이 없어지겠군. 눈물 나게 억울한 상황이지만, 그런 악의에 절망하기보다는 왠지 당돌하게 나에게 대드는 이 소녀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억울한 모양이구나. 하지만, 수련족은 원래 그런 방면으로도 정통한 일족이 아니던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대단한 백성들이니 오해를 사고 이런 자리에 끌려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나의 말에도 그녀는 조금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남녀가 서로 만나 세상에 물의를 범했다면 그건 쌍방의 책임이지 어찌 여자에게만 죄를 묻는단 말입니까? 더구나, 만고의 제왕들이 다투어 품고 총애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 옛 새터니일진데, 그들에게 무슨 힘이 있어 제왕의 수청을 거부한단 말입니까? 그러면서도 항상 그 제왕들이 범한 실책에는 우리 수련족의 여자를 엮어 죄인 취급한 것은 한족인 당신들 아닙니까? 우리 수련족의 죄라면 권력자의 눈에 들어 그의 품에 안기고, 고독해하고 정에 굶주린 그들의 마음을 채워준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 아이가 나는 왠지 싫지 않았다. 그리고 말도 왠지 그럴듯했고…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렇구나. 네 얘기가 맞다면 수련족의 세상의 악명에 대해 논하는 것은 내 사과하도록 하지. 하지만, 네 말을 그대로 따르자면 너 또한 권력자의 품에 안겨 정을 채우는 것이 불합리하다 논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 않느냐? 나는 제국의 2왕자다. 그러니 네가 말한 그 어리석은 권력자라면 권력자 나부랭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에도 굶주려 있고. 네가 오늘 밤 내 마음을 채워주겠느냐?”


“무… 무슨… 다가오지 마십시오.”


“어허… 네 말이랑 틀리지 않느냐? 이러면 안되지… 수련족의 새터니는 또한 남자들을 위로하는 기술도 뛰어난 이가 아니던가?”


“그… 그런 것이 수업에 있기는 하지만, 저는 아직 경험이…”


“그러면, 오늘 수업해 보도록 하자. 자, 나를 품거라.”


“아… 안 돼!!! 에? 무슨…”


나의 거침없는 접근에 당황하던 소녀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치다가, 내 행동에 당황해버렸다. 나는 침상위에서 필사적으로 뒤로 피하던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벌렁 드리누워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위로 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뭘 기대한 것이냐? 보기보다 엉큼한 아이로구나. 진중의 밤이 기니 지루하구나. 재밌는 이야기나 해보 거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일족이니 보고 들은 것도 많겠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보내야 겠다. 어서 이야기를… 아오!!! 이게 무슨 짓이더냐.”


“이 못된 사람 같으니!!!”


나는 그 아이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기 무릎위에 올린 내 머리에 베개를 내리치는 걸 웃으며 피했다. 상식적인 판단이라면 황실의 일원으로서 천하의 환멸을 받으며 보이는 즉시 죽여 없애야 할 수련족의 새터니를 들이는 것은 미친 짓이겠지. 하지만, 왠지 오기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이번 전쟁이 끝날 때 살아 있을지 없을지도 장담하기 힘든 몸이다. 그렇다면, 왠지 모르게 나의 처지와도 닮아 있는 이 아이를 곁에 두는 것이 왠지 명귀인이나 석태후에 대한 소심한 복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진중에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아이는 처음의 당돌한 모습과는 달리 경계를 풀자 나에게 그리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매일 절망적으로 흘러가는 전쟁의 흐름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밤에 막사로 돌아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아이는 재치 있고 현명하며 아는 것이 많았다. 나는 아이에게 들은 내가 경험하거나 듣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그 중에서 특히 재밌는 것은 아이가 설명해준 자신들 수련족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괴의 일족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너희 일족들이 천문을 잘보고 점을 잘치는 것은 유명하지 않느냐? 너희만 특출하다면 그건 뭔가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우리 수련족의 사람들이 먼 세상에 대한 감이 좋은 체질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호한 감보다는 사람들이 놀라는 점괘는 실제로 유랑을 통해 얻은 경험과 다양한 일을 학습하여 얻은 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비가 올 것을 말하면 하늘의 뜻을 읽었다고 놀라워 하지만, 실제로는 개구리가 땅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죠. 미래의 일은 그렇게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흠… 나도 왠지 그럴 꺼라 생각은 했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만 그런 능력을 가지게 하늘이 안배하진 않았겠지. 응? 근데 하지만 아직도 의문은 남는다. 그건 바로 너. 수련족의 새터니는 어찌되는 것이냐? 너희들은 정말로 하늘도 놀랄 신묘한 능력을 지녔다고 들었다. 실제로 황도에 거대한 불을 낸 역사의 기록도 남아 있지 않느냐?”


“그건… 기록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불을 낸건 반군들이고 그 대의 새터니가 보인 능력은 그 불을 끈 비를 내리게 한 것입니다. 네, 확실히 저희 새터니는 세상 사람들이 보이게 신묘해 보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무섭고도 만능인 힘이 아닙니다. 그 능력은 어떤 능력일지도 미리 예측할 수 없고, 그 능력의 통제도 쉽지 않으며, 일생에 단 한번만 사용하고 더는 쓰지 못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수련족 새터니의 능력의 실상이죠.


그래서 실제로 상당히 많은 새터니들이 그 능력을 일생 사용하지 않고 삶을 마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능력을 사용하면 다시는 쓰지 못하는데 쓰는 걸 들키면 수많은 사람들이 발광을 하며 마녀를 죽이라고 달려드니깐 요. 세상을 어지럽히는 힘 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그냥 후회 할 수밖에 없는 삶을 만드는 이유에 불과합니다.”


“그렇구나… 확실히, 정말로 세상에 소문처런 너희 수련족이 그런 힘을 자유자재로 부리면 벌써 천하는 수련족의 것이 되었겠지. 네 말이 맞다. 그러면 네 능력은 무엇이냐? 전에 그 새터니처럼 비를 내리는 능력이더냐? 아니면 하늘을 훨훨 나는 능력? 그것도 아니면 물위를 걷는 능력? 뭔지 궁금하구나.”


나의 농섞인 질문에 그녀는 왠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것은… 비밀입니다.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제 일족도 정인도 아닌 왕자님에게 그걸 알려드리는 것은 금기입니다.”


“하하하… 그러냐? 그럼 애써 묻지는 않으마. 근데, 그러면 내가 행여나 네 정인이 되면 어찌되는 것이냐? 그러면 그때가면 금기가 아니게 되는 것이냐?”


여전히 가벼운 나의 질문에 그녀는 의외로 진지하게 정색하고 대답했다.


“사랑하기에 비밀입니다. 다만, 그 능력을 짐작할 일이 있을 뿐입니다.”


그때는 그녀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다만, 뭔가 중요한 일이려니 하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 아이와의 시간은 흘러갔지만 전황은 개선되지 않고 난국은 이어졌다. 결국 단순히 정치적으로 혹은 실제로 제거하려던 왕자와 오합지졸로 간단히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조정은 제대로 된 증원을 하였지만, 그것은 늑대 부족들이 바라던 바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제국의 주력이 장성을 넘기를 기다렸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런 그들의 의도를 알리고 막으려 하였으나, 석태후의 배후에 있던 석씨 일가는 주청을 올려 내 지휘권을 박탈하고 북방으로 진군했고, 대참패를 겪었다.


“부절을 받으라고요?”


나는 내 눈앞에 뻔뻔스럽게 부절을 넘기는 석씨 일가의 당주를 보며 분노하였다. 이미, 전쟁은 참패하였다. 장성 북방에서 대참패를 하고 수많은 병력을 잃고 돌아온 배후를 늑대의 부족들은 놓치지 않고 추격해 들어왔다. 이미 패잔병이 된 병력이 퇴각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장성 북쪽의 전진기지에 남아, 소수의 병력으로 그들을 저지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적임자로 뻔뻔하게 나를 다시 추천하였고 장군의 상징인 부절은 나에게 넘어 왔다. 나는 그것을 이를 갈면서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보류되었던 내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 순간을 준비해야만 했다.


“어차피… 농성을 할 식량도 없고, 초원에서 우회하는 적을 막을 수도 없다. 회전으로… 승부를 가린다.”


“하오나…”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안다. 아마도 다 죽겠지. 미안하다… 여기 남은 너희들, 명귀비의 일파도 아니고 석씨들에게도 배척당한 너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구나. 다만, 제국의 2왕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싸우고 너희들과 최후를 함께 하겠다. 이것밖에는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만 해산한다. 다들, 출정을 준비하라.”


막사로 돌아온 나는 기다리고 있던 그녀에게 말했다.


“말을 한 마리 준비해뒀다. 너희 일족은 서북쪽으로 떠났다고 하더구나. 가거라.”


“어째서… 저를 보내시는 건가요?”


“이미, 승산은 없다. 이것은 그저 무의미한 시간벌기를 위한 교전이다. 그런 의미 없는 죽음에 너를 두고 갈수는 없구나. 늑대들은 아마도 어여쁜 너를 곱게 두지 않을 것이다. 서둘러 일족에게 돌아가거라. 수감생활은 끝났다. 이제 너는 자유다.”


“포기… 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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