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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경 Oct 21. 2024

불편한 감정들까지 온전히 마주해야 하는 이유

각각의 감정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기


모든 감정은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이러나고 있는지 알려 주는 중요한 정보원이다. 인간의 복합적 감각이 몸과 마음, 바깥세상에서 소식을 가져와면 뇌가 이를 정리하여 분석한 뒤 표현해 낸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감정을 무시해 왔다. 그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감정은 변덕스럽고 특이한 정보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기도 전인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이성과 인지를 내면의 위대한 힘이라 여겼으므로 '감성 지능'이라는 모순된 개념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 서구 문학, 철학, 종교는 감정이 올바른 판단과 이성적 사고를 방해한다고 가르쳤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이성과 감정이 각기 다른 신체 부위에서 온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자. 머리와 가슴, 둘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하라고 배웠는가?  <감정의 발견 - 마크 브래킷>


중요한 정보원 '감정'의 차단

예일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고등학생, 교사, 전문직 종사자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시간의 비율은 학교나 직장에 있는 시간 가운데 최대 70퍼센트에 달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평소에 부정적이고 불편한 감정들을 많이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특히 직장인들이라면 '감정의 절제'에 대해 많이 공감하실거에요. 고객이나 상사의 갑질을 그리고, 많은 업무량을 견디며,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 입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징징이가 되어버리기 십상이거든요. 그렇게 감정이 서서히 마비가 되고, 불편한 감정들은 애써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흥을 즐기며(술, 담배, TV..) 해소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진짜로 해소되는 건 아닐거에요. 이렇게 무시된 감정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감정에 대해 침묵하면 고통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해요. 계속 반복되는 불편한 감정들이 쌓이면 결국 어느 순간 우울증, 정신 분열, 번아웃등의 질환으로 진짜 문제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나게 되요. 그땐 손쓰기 힘들어지고 약으로 버티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이죠. 


아무리 상처가 깊어도 붕대로 꽁꽁 싸매고 모르는 체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과거의 아픔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홀연히 돌아온다. 싸매둔 붕대를 풀면 고약한 냄새와 함께 상처가 썩어 깊이 병들어 있다. 과거에 상처를 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기 않아서, 아파야 할 때 아파하지 않아서 빚으로 돌아오니 인간의 의식이란 얼마나 지독한가.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잘 참고 억누르고 잘 없애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잘 분출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외부나 내부의 자극과 나의 반응 사이에 '생각'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감정 어휘 - 유선경>


그렇다면 감정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요? 모든 감정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나의 내면의 즉 마음이 느끼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 마음의 신호와 같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예로부터 이성과 대비되며 외면당해 왔지만, 사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우리를 고민하게 하고, 고민에 대한 답을 찾으며 개선하게 하고, 인간다운 가치들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만들어내고 기대하는 인간만의 특별한 가치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해당 감정이라는 자극에 대한 고민이 바로 생각, 사고의 시작인 셈이죠. 그렇다면 이런 감정들을 차단시켰을 때, 어떤 현상이 발생하게 될까요?


멋진 신세계 - 부정적 감정이 차단되는 인위적 사회

이러한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차단하는 인위적인 사회를 그린 대표적인 문학작품이 있는데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입니다. 모든 인류는 인공수정으로 시험관에서 태어나며 이미 그 때부터 알파(엘리트), 베타(중위층), 감마(하류층), 델타(단순노동), 엡실론(단순노동) 계급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들은 부모가 없으며 양육과 교육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조건반사와 수면암시 교육으로 자신의 계급에 맞는 세뇌 교육을 받게되요. 정교하게 계층화된 사회구조는 그들이 각자의 정해진 계급에 충실하게끔 만들고, 어떤 불안감 혹은 공허함과 같은 감정이 생길 때는 소마라는 일종의 마약을 받아요. 더 이상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되고, 약으로 바로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촉감영화와 성의 자유로 일상의 쾌락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사회 입니다. 그냥 이야기를 들었을때 살짝 찝찝하긴 하지만 고민이 없는 사회가 좋아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현재에 만족하면서 쾌락과 즐거움만 주구장창 추구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사회는 인간미가 전혀 없습니다. 제대로된 사랑, 우정, 장인정신 등 인간다운 고귀한 가치들을 만들어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감동이 없는 메마른 사회가 될 수밖에 없어요.


사실 현재를 사는 우리도 비슷해요. 소마의 역할을 인터넷 게임, 텔레비젼, 술, 각종 유흥 및 오락 시설등로 바꾸면 공식이 성립이 되거든요. 우리 역시 우울하거나 공허할때 굳이 우리의 감정이 어떤건지, 그 감정을 왜 느끼는지, 어떻게 개선이 될지, 전혀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냥 TV를 보면서 감정을 무마하는 경우가 많아요. 많이들 공감하실 거에요. 그렇게 나의 감정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지 않는 사회에서, 개선되지 않은 감정들은계속 반복 등장하며 우리를 괴롭히게 됩니다. 영화 이터널 션사인에서 그랬듯, 이별 후 너무 아픈 감정을 견디기 어려워 사랑의 기억을 지우잖아요. 그런데 또 똑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때 그 감정을 견디고 고민해보고 극복하지 않으면 그렇게 계속 반복이 되는거에요. 불편한 감정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고 회피하기만 한다면 매번 똑같은 감정이 반복되고 더 악화되며, 더 깊은 인간적인 가치들을 느끼지 못하게되거나 혹은 부정하며 메마르게 살아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삶이란, 세상의 모든 다양한 감정들을 온전히 깊게 경험하는 것

그런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작품을 대부분 아실거에요. 이 작품은 멋진 신세계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베르테르는 로테를 처음 본 순간부터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약혼자의 존재를 알고부터는 죽도록 아파하다가 결국 자살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잖아요. 사실 괴테가 사랑 때문에 자살하라고 이 작품을 쓴 건 아닐거에요. 저는 사랑이란 감정의 탄생과 죽을을 밀도있게 그리고 있다고 생각되었어요. 바로 사랑이란 감정의 잉태부터 죽음까지의 리얼한 과정을 작품에 녹인 것이죠. 결국 우리는 베르테르를 통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깊이 있게 경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괴테는 이 작품에서 그 당시의 사람들을 ‘정신적 불구자’라고 표현해요. 삶을 살면서 마땅히 느껴고 누려야 할 아름답고 고귀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를 한탄한 것이죠.


화가 치밀 정도로 지긋지긋한 일은 젊은이들이 온갖 즐거움에 스스로 문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는 인생의 꽃다운 청춘기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얼굴을 찌푸리고 즐거운 나날을 망쳐버리는 일이다. 그들은 상당한 시일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돌이킬 수 없이 좋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된다.-P54


이런 사랑, 이런 성실, 이런 정열은 결코 문학적인 창작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소위 교양 있는 사람이란...아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신적 불구자가 아닐까?-P137


이 지상에서, 그래도 아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아주 희소한 것을 이해할 줄도 느낄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미칠 것만 같다. -P140


모든 감정들을 날 것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 - 성장, 풍요로운 삶

괴테가 당대의 사람들에게 지적했듯,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대부분은 정신적 불구자일 수 있어요. 세상의 모든 감정을 깊이있게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주변에 몇 명이나 될까요. 아무리 힘든 감정이라도 그 정체를 파악하고 표현하며 이를 제어할 수 있다면,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해요. 감정들에 제대로된 네이밍만 된다면 말이죠. 그렇게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날것 그대로 인정하고 세세히 이름을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막상 이름을 붙여보려고 하면 좀처럼 어려운게 아니에요. 지금 내 감정이 불안한건지, 무기력한건지, 권태감인건지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구분하기도 힘든게 사실이잖아요. 그걸 구분해야 이름을 붙일 수 있고, 그에 맞는 극복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 거잖아요. 


제대로 사는 삶이란 긍정적인 감정만 골라서 느끼는게 아니라 모든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반응이 이전보다 성숙해지는 것이다. 모든 감정은 밀물과 썰물처럼 들이닥치고 떠난다. 또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 그러니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우선 감정이 들이닥칠 때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피하지 말자. 감정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자. ~ 가능한 모든 감정을, 아픔마저도 생생하게 경험하고 응시하자. 살아 있는 한 다음은 꼭 찾아온가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때 나아지면 된다. -P101


사람은 기쁨뿐 아니라 슬픔, 분노, 불안,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낄 때야 비로소 그 대상이나 존재, 가치 등이 자신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혹은 반대로 사소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지혜를 모색하고 용기를 내게 하는 과정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P126 <감정 어휘 - 유선경>


불편한 감정들을 잘 인지하고 극복하는 행위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됩니다.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에요. 또한 다양한 감정들을 온전히 깊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게 되구요. 오늘부터라도 나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감정이든 솔직하게 느낄 수 있는 내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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