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에리히 프롬)
오늘날에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모두가 자기 밖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이용한다. 사물의 생산이라는 한 가지 전능한 목표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입으로 고백하는 목표, 즉 인격의 완벽한 발달, 인간의 완벽한 탄생과 성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수단을 목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사물의 생산만이 중요한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물로 변화시킨다. 19세기에는 노예가 될 위험이 있다면 오늘날에는 로봇이나 자유인형이 될 위험이 있다. ~
하지만 인간은 사물이 아니다. 스스로 사물이 된다면 자각하건 못 하건 병이 들고 말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18세기부터 이 병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병은 프랑스어 이름만 가지고 있다, 프랑스어 이름은 이미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 질병을 권태라 부른다.~ 세기의 질병, 즉 인생의 무의미함은 인간이 사물로 변한 데 그 원인이 있다.-P29-P26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서는현대인들의 무기력의 원인 자아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드러나지 않는 큰 체제 아래의 '수동적 삶'이 우리들이 겪는 무기력의 원인이고, 그것이 어느 일정 기간동안 지속되면 번아웃 혹은 우울증으로 오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겪는 이러한 무기력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에리히 프롬은 결국 가장 시급한 것이 우리의 자아, 정체성의 확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현대인들은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유롭고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착각을 해요. 하지만 우리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주변환경과 타인의 영향을 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각종 미디어 SNS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에 영향을 받으며,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거든요.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이 사회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우리 대부분이 타인과 주어진 환경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들을 장착하기 위한 삶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한 삶은 내가 만들어낸 맞춤형 가짜 자아를 탄생시키고, 나 자신이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들을 잘 갖춘 상품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진짜 내가 없는 상태에서 타인과 사회의 기준에 따라 사는 삶은 불안과 혼란을 야기합니다. 우리가 늘 경험하잖아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어떤 선택 앞에서 A가 좋을까? B가 좋을까? 말이죠. 진짜 자아가 있는 사람들은 선택 앞에서 확고합니다. 나의 방향이 확실하니까요. 하지만 진짜 자아가 없는 사람들은 결국 주변이 원하는 수동적인 삶을 선택하게 되고, 그런 삶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무기력과 공허함을 선사하며, 우리에게 그런 불편한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순간의 쾌락이나 스릴을 추구하게끔 만들어버립니다.
자아와 자아의 경험을 연출: 자아의 인식은 더 이상 본질, 즉 자신의 욕망과 상태. 감정과 능력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인성과 성격을 연출하며 외부의 자아 정체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특정한 약력, 성공한 사람, 자의식이 강한 사람,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 등의 역할을 껴입고 그것을 최대한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자아의 경험은 자기 행동이 자신의 의지와 감정, 사고에서 온다고 느끼는 최면에서 비롯된다. 그는 더 이상 경험이 직접 다가가지 못하므로 암시의 희생물이 되어버린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
그렇다면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나의 진짜 나를 알아야 합니다. 이 책에서 진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발적인 경험? 하면 사실 너무 추상적이기도 하고 와닿지 않을 수 있을 텐데요. 먼저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결국 사회와 타인의 기준을 따르게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먼저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고민을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스스로 찾아 자발적인 학습,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타인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이 과정을 통해 진짜 자아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명확해지고 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한 삶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내 안의 보물을 찾는것이라고도 하잖아요. 하지만 보물은 쉽게 안나타나는법. ㅎㅎ
아시잖아요? 안내에 따라 낯선 곳을 관광하는 것은 편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여행하는 것은 불편하겠죠. 진짜 자아에 도달하는 길은 이렇듯 험난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인내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안전과 안락함을 벗어나 미지의 땅을 탐험할 용기 입니다. 어쩌면 부모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의 편안한 삶을 위해 아이의 삶의 목표(꿈)와 길을 주입하고 안내하는 것은, 나중에 자신과 같은 무기력하고 혼란한 인간으로 만드는길 일 수 있어요. 뉴욕타임즈 아이들의 창의성에 대한 글에서 애덤 그랜트는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아이들이 세상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바라는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의 목표를 좇을 수 있게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결국 자신안의 보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부모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로 유명한 연금술사는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 입니다.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보물이 있어. 그런데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물을 더 이상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낮은 소리로 말하지.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더 낮은 소리로 말하지. 아예 침묵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기를 원해. <연금술사 中 - 파울로 코엘료>
저 또한 N년차 직장인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그렇게 저는 새벽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출근하기 전 약 2시간을 온전히 제 시간으로 쓰고 있어요.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데요. 일기를 쓰면 나를 알아가는데 도움이 되듯이 (직장인이라면 하루하루 비슷한 하루일과 이기에 일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알게된점 느낀점들을 써내려가며 나 자신의 성형과 취향 그리고 관심사를 발견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만의 주관이 형성되면서 조금씩 단단한 내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행위들이 자발적이라는 거에요. 직장을 다니면 커다란 시스템의 부품이 되어 수동적으로 내가 할 일만 하면되고, 타인의 평가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나를 알아가는 자발적인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나를 알아가는 즐거움 그리고 나만의 자부심?과 성취감 같은 것들이 생기게되면서 타인의 시선에 예전처럼 얽매이지 않게 되었던거 같아요. 그렇게 하루하루 알게되는 나를 만나며, 그렇게 알게된 내가 좋아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늘 시도해 보며 무기력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그러한 시도 중 하나구요. 무기력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하루 30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처음엔 그냥 멍 때리다 끝날수도 있어요. 하지만 매일매일 30분이 쌓이면 내 안의 보물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거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순간이나마 자신의 자발성을 경험하고 동시에 그 순간을 진정한 행복으로 느낀다. 어떤 풍경이 아름답다고 자발적으로 느낄 때, 고민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틀에 박히지 않은 종류의 감각적 쾌락을 느꼈을 때, 타인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솟구쳐 오를 때, 그런 순간 우리 모두는 자발적 체험이 무엇인지 알게되며, 그런 체험이 이렇게 드물지 않게, 세련되게 찾아온가면 어떻게 달라질지 어렴풋하나마 예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자발성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사랑이다.-P81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로 인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열등감과 무력감의 뿌리이다. ~진짜 자기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것도 없다.-P83
근본적으로 자아가 너무 허약해졌기 때문에 인간은 무력한 느낌,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린다. 나라는 존재가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면 나는 과연 누구인가? 개인의 정체성은 데카르트 이후 현대 철학의 주요 문제이다. ~ 내개는 정체성이 없다.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의 거울상을 빼면 자아란 없다. 나는 '네가 원하는 나'일 뿐이다. 이처럼 정체성이 상실되면 순응이 더욱 시급해진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할 때에만 자신을 확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타인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아 더욱 고립될 위험에 처할 뿐 아니라 인격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정신적 건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삶을 자발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자극과 스릴의 형태를 띤 대용품을 움켜잡는다. 술과 스포츠가 주는 스릴이나 스크린의 허구적 인물을 통해 경험하는 스릴 말이다.-P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