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굴레, 풀리지 않는 숙명 (새로운 굴레, 풀리지 않는 宿命)
무학산 정상, 싸늘한 밤공기 속에 격렬했던 전투의 잔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찢겨나간 숲, 부서진 바위들, 그리고 열댓 명의 '그림자'들의 처참한 잔해들이 참혹했던 현장을 묵묵히 증언했다. 이사장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아지랑이 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고, 이제 어둠 속을 지배하는 것은 극도의 피비린내와 정적뿐이었다.
장군신의 거대한 영체는 마치 고대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산의 일부처럼, 고요한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전장에서 우뚝 서 있는 민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민성은 찢긴 현대식 전투복 차림에 온몸에 흙과 그림자들의 검붉은 피가 뒤섞여 있었고, 그의 눈은 여전히 섬뜩한 푸른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갈망과 폭력적인 충동이 어룽지고 있었다.
"허허… 저 녀석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나 냄새가 기억났구나."
장군신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음성은 바위를 깎아내리는 바람 소리처럼 차가웠으나, 그 속에 미묘한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내, 예전 왜(倭) 나라 주술사들과 전쟁할 때 함께했던… 구미호의 냄새. 그런데 어찌, 인간인 네 아비가 구미호의 힘을 쓰는 것이냐? 영력(靈力)은 없어 보인다만…."
장군신의 시선은 민성의 푸른 안광과 피에 굶주린 듯 갈구하는 섬뜩한 표정에 오래 머물렀다. 그의 눈에 비치는 민성의 모습은 더 이상 자애로운 한 가정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맹수의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본능과, 파괴로 점철된 광기가 민성의 영혼을 잠식하려는 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민성의 내면은 지금,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 그 자체였다. 몸속 깊은 곳에서 울부짖는 야수성과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피의 굶주림이 그의 인간적인 자아와 끔찍하게 부딪히고 있었다. 그의 뇌리 속에는 그림자들과의 싸움 장면, 그들의 비명, 찢겨나가는 살점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그리고 매번 그 마지막 순간에는 **"더… 더… 필요하다… 왜놈들의 피… 가…!"**라는 끔찍한 갈망이 그를 채찍질했다. 굉장한 증오가 끓어 올라, 그는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온몸의 근육은 폭주할 듯 팽팽하게 당겨졌고, 심장은 광적으로 고동쳤다.
미나와 호연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두려움이 앞선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아직 어린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아닌가. 호연은 아빠의 낯선 모습에 불안한 눈물을 글썽이며 미나의 한복 자락을 불안하게 움켜쥐었다.
"누나… 어떻게 해… 아빠가… 이상해…." 호연의 작은 목소리는 밤공기에 젖어 더욱 가늘게 떨렸다.
미나 또한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녀의 영적인 힘은 잠시 악귀를 퇴치하는 데 쓰였지만, 아빠의 내면에서 격돌하는 거대한 힘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호연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그녀는 굳게 다문 입술을 깨물며 애꿎은 밤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결국, 그녀의 초조함과 분노는 괜한 장군신에게로 향했다.
미나는 어린 시절의 앙칼지고 당돌했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씩씩거리며 장군신을 향해 소리쳤다.
"장군님! 보고만 있지 말고! 해결을 해봐요! 좀! 네!? 신이라면서요! 힘 좀 써봐요!"
그녀의 목소리는 절박함에 갈라졌지만, 동시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어린아이 특유의 비난이 담겨 있었다. 두 손은 어느새 꽉 쥐어져 있었다.
장군신은 그런 미나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성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구미호 또한 도(道)를 오래 닦은 영물(靈物)의 힘. 그것이 이 시대에 네 아비에게 발현된 것은 다 필연일 듯싶다. 미나야. 호연아. 네 아비는 그리 약한 아이가 아니다. 분명 깨어날 것이야."
그의 목소리는 민성의 내면 깊숙이 울리는 듯했다.
"뭐래? 해답을 줘야지?! 해결을 해주던가!"
미나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장군신의 신비로운 말에도 더욱 답답함을 느꼈다. 뾰족한 눈초리로 장군신을 노려보던 그녀는 다급해진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영적인 힘이 아빠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다. 그녀의 몸에서부터 은은한 하얀빛이 피어올라 민성에게로 뻗어갔고,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기 시작했다. 호연은 울먹이며 자신도 모르게 누나를 따라서 작은 손을 모으고는, 자신의 목소리도 아빠에게 닿기를 바라는 듯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아빠…! 돌아와…!"
그의 작은 목소리는 밤바람을 타고 민성에게 스며들었다.
민성은 격렬한 내면의 싸움 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희미하게 들었다.
"아빠…!" "돌아와요…!"
그 목소리는 마치 혼돈 속의 한 줄기 빛처럼 그의 의식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피의 굶주림과 야수적인 본능이 그를 잠식하려는 찰나, 두 아이의 존재는 그에게 조건 없는 축복이자, 놓을 수 없는 생의 '고리'임을 상기시켰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작은 존재들의 간절한 부름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그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 내어 거친 짐승의 포효 대신, 인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썼다. 그의 심장은 고통스럽게 고동쳤지만, 이번에는 야수의 심장이 아닌,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심장이었다. 푸른 안광이 점차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고통스러운 인간의 눈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야수성은 점차 사그라들고, 지쳐버린 인간의 육체가 전신을 지배했다.
결국, 민성은 자아를 되찾았다. 짐승 같은 거친 숨 대신, 인간적인 깊은숨을 내쉬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 따뜻함만은 변함없었다.
"미나… 호연아…."
호연은 안도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민성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아빠…! 흐으으읍… 아빠아…!"
그는 아빠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민성은 한없이 무겁게 그의 작은 등을 토닥였다. 미나는 그런 호연을 보더니, 안도감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공포와 걱정, 그리고 이 모든 사태에 대한 막대한 피로감이 뒤섞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민성의 품에 안긴 호연의 뒤로 다가가더니, 민성의 가슴팍을 퍽퍽 때리며 소리쳤다.
"아빠! 정신 놓지 마! 으앙~! 진짜 짜증 나! 아빠가… 아빠가 돌아와서 다행이지만, 정말 짜증 난다고요!"
미나의 목소리는 흐느꼈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를 잃을 뻔했던 어린 소녀의 서러움과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민성은 미나의 짜증 섞인 외침에도 그저 말없이 두 아이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들의 가족에게는 이토록 험난한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고 자랑스럽게 바라보던 장군신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밤하늘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남겨진 것은 산의 고요함과 세 가족의 재회뿐이었다.
(만신 할머니의 초가집 안.)
깊은 밤, 만신 할머니의 아담한 초가집 안은 온화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민성은 격렬한 전투의 여파와 야수성 발현으로 인한 극심한 기력 소진으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상처 입은 몸으로 누워 머리에는 차가운 물수건 찜질을 받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아직 지우지 못한 피 흔적과 땀방울이 뒤섞여 있었지만,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할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약물을 달이며, 맞은편에 앉은 미나와 호연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듯 고갯짓 했다. 미나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지친 기색을 보였지만, 호연은 에너지가 넘쳤다. 아직 어리기에 사건의 충격이 생생했기 때문이리라.
"할머니, 아빠가… 아빠가 완전 쩔었어요! 무슨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짐승처럼 변한 줄 알았다니까요? 막… 찢고, 패고, 와… 진짜…!"
호연은 손짓 발짓까지 동원하며 민성이 그림자들과 싸우던 모습을 재현했다. 그의 눈은 반짝였다. 그때,
"아?! 왜 때려!"
호연의 뒤통수에 '퍽!' 소리와 함께 미나의 가벼운 손찌검이 날아들었다. 미나는 호연의 입에다가 검지를 갖다 대며, "말 좀 가려서 해!"라는 의미를 보냈다. 그리고는 자신이 대신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빠가 그 그림자들에게 큰일 날 뻔했는데… 제가 잠시 그 악귀와 싸우는 동안, 아빠가 이상해졌어요. 진짜… 마치 피에 굶주린, 야수 같았어요. 싸움이 끝난 뒤에도, 아빠는 자기 자신과 그 야수의 본능 사이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듯했는데… 다행히 저와 호연이 목소리 듣고 돌아왔어요."
미나는 말을 하면서도 민성의 잔인했던 모습이 떠올랐는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충격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 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번 악귀와의 싸움에서 저도 알게 되었어요. 산신 님의 '비움'이 왜 필요한지. 그 배움 때문에 악귀의 정신 지배 공격이 저에게는 소용없었어요. 그리고… 장군신님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알지 못하지만, 영적인 무기를 사용해 봤어요. 그… 검은 아지랑이 구체… 그 안에 붉은 눈… 으… 할머니, 그거 혹시 뭔지 알아요?"
미나는 마지막 질문에 목소리를 낮추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할머니의 반응을 살폈다.
만신 할머니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녀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고, 곰곰이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 그녀의 주름진 손가락이 턱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뜨며 미나에게 물었다.
"그… 악귀, 능력이 뭐였다고?"
할머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진지하고 낮게 깔려 있었다.
"그… 우리들 머릿속에 들어와서 약점을 파고들었어요. 호연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저는… 제가 비행했던 생활의 자책들이요…."
미나는 악귀의 공격 방식을 정확히 설명했다.
할머니는 한숨을 쉬듯 나직이 읊조렸다.
"고 녀석… 사람의 과거의 흉(欠)을 잡고 조정하는 놈.이구나. 이런 고얀 녀석 같으니. 그런 악귀들이 없진 않지. 헌데 그 외형이… 흑무결점의 검은 구체… 그리고 붉은 눈이라… 흠…."
할머니는 말을 흐리더니, 마치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뒤돌아서 누워서 신음하며 잠들어 있는 민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고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네 아비는 그래. 장군님이 뭐라 하셨다고…?" 할머니의 질문에 미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군신의 말을 인용했다.
"구미호의 힘을 쓴다고 그랬는데요. 왜(倭) 나라 주술사들을 상대할 때 함께 싸웠던 분과 냄새가 같다고… 근데 장군님도 아빠가 왜 그 구미호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 모르시던 눈치던데요?"
미나는 답답함에 할머니에게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해답을 갈구하는 듯한 초조함이 역력했다.
그때 만신 할머니가 무언가 확실히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하고 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깨달음과 함께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옳거니! 그런데… 그러게… 말이다… 흠… 초영(招靈)님과 아랑(阿郞)님은 이루어질 수 없는 분들인데…."
할머니의 혼잣말은 미나와 호연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했다. 초영 님? 아랑님? 이사장이 말했던 스사노오노미코토?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로 얽히는 듯했다.
"으아~ 할머니! 일부러 그러는 거죠? 궁금하라고!"
호연이 벌떡 일어나 방 안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그는 작은 몸집으로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미나도 할머니의 이어질 말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할머니~ 뭐예요~ 응?"
미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할머니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만신 할머니는 그런 손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잠든 민성을 확인하고는, 미나와 호연을 데리고 초가집 뒤편에 있는 장독대가 가득 쌓여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은 낡고 투박한 장독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마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그 장독들 사이, 땅바닥에는 흙먼지가 쌓인 작은 나무문이 숨겨져 있었다. 할머니가 조용히 그 문을 열자, 시원한 공기가 후욱하고 뿜어져 나왔다. 그곳은 놀랍게도 땅속으로 이어진 거대한 서고(書庫)였다. 자연적으로 습도와 온도가 완벽하게 조절되어, 마치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서적들을 보관하기에 최적의 장소처럼 보였다. 수많은 고서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책들은 흙냄새와 오랜 시간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만신 할머니가 호연에게 한쪽 선반에 꽂힌 서책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책에 담긴 오랜 이야기와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꿰뚫는 듯했다.
만신 할머니가 호연에게 그 서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연아, 저기 저… 책 좀 이리 가져다 다오."
그러자 호연은 신기한 듯 손을 뻗어 염동력으로 가볍게 그 서책을 빼냈다. 책은 공중에서 그의 손으로 빨려들 듯 부드럽게 당겨져 잡혔다.
"할머니, 이 서책이요?"
호연은 자신이 염동력을 이토록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것에 뿌듯한 표정이었다.
"욘석이 이제, 자유자재로구나. 이번 싸움판에서 너도 대단했다지?"
할머니는 호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했다. 호연은 머쓱해하며 웃었고, 미나와 호연을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서책을 천천히 펼쳤다.
그 서책의 첫 장에는 그들이 무학산에서 만났던 악귀의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흑무결점의 검은 구체, 그리고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눈. 그리고 그 악귀의 그림 옆에는 수많은 한자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그 옆 장에는 한 도사와 구미호의 그림이 보였다. 마치 둘은 그 악귀와 싸우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 구미호의 눈빛은 민성의 푸른 안광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할머니는 책을 가리키며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다.
"예전부터 일본, 즉 왜(倭) 나라는 끊임없이 조선을 침략해 왔단다. 단순한 무력뿐만 아니라, 교활하게도 주술사, 영매사, 저주사 등을 이용했지. 그들의 삿된 주술로부터 우리 백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도사님들, 무녀들, 무당들, 스님들, 법사들, 퇴마사 등 모든 영적 능력자들이 그 싸움에 나서 싸웠고, 그 모든 기록을 여기에 남겨 놓았단다."
할머니는 책의 그림을 다시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이어갔다.
"그중 지금 너희들이 무학산에서 만났던 그 악귀는… 그 모든 악신들 중에서도 최악 중의 최악. 그 능력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당시에도 다른 악신들을 지배했던 우두머리로 추정되었지. 어제 너희가 싸웠던 것은 본체가 아닌, 그 힘의 일부. 즉 분신이었을 것이야."
할머니의 말은 미나의 촉과 일치했다.
할머니는 다시 책의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그림 속에는 **초영(招靈)**이라는 이름의 도사와, 푸른 안광을 빛내는 **아랑(阿郞)**이라는 이름의 구미호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악귀를 향해 결연한 표정으로 맞서고 있었다.
"이 그림 속의 초영 님과 아랑님이… 바로 너희가 싸운 그 악귀를, 오랜 사투 끝에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었지.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 이 책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단다. 너희가 이 거대한 싸움을 다시 시작한 것 같구나…."
할머니의 나직한 음성이 초가집 안에 울려 퍼졌다. 민성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지만, 그의 몸속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미약하게 요동치는 듯했다. 미나와 호연의 눈은 책 속의 초영과 아랑의 그림,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갈구하듯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