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새벽의 격전: 검은 그림자의 습격
고요한 새벽의 정적은 머지않아 깨질 운명이었다. 희미한 여명이 동쪽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왜(倭)**군 진영은 철수 준비로 분주했다. 장작불이 꺼진 자리에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는 밤새 진행된 기이한 의식의 잔향처럼 스산했다. 막사들이 걷히고 병사들이 대오를 정비하는 소리가 낮은 바람결에 실려 언덕을 넘어왔다.
직산현(稷山縣)으로 향하는 산등성이에는 이미 포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그들의 눈빛은 예리한 송곳니처럼 번뜩였다. 만복은 좌우로 포수들을 배치하며 매복 지점을 최종 확인했다. 거대한 자연은 그들의 든든한 방패이자, 동시에 엄격한 감시자였다. 수풀과 바위틈에 엎드린 열 명의 포수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왜군 본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왜군 본진이 숙영지를 철수하는 분주함 속에서, 몇몇 병사들이 산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여전히 허술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정찰병들인 듯했다.
만복은 두 무리로 포수들을 나누어 산의 길목 양쪽을 지키게 했다. 험준한 산세를 따라 지형을 숙지하고, 왜군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최적의 사격 지점을 선정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왜군 정찰병 한 명이 산 입구로 들어서고, 능선길을 따라 어느 정도 올라왔을 때였다. 만복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들어 올려 신호를 보냈다. '목표가 사정권 안에 들어섰다.'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나뭇가지가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엎드려 있던 포수들은 일제히 **화승총(火繩銃)**을 겨눴다. 열 개의 총구가 동시에 불을 뿜을 준비를 마쳤다.
콰과광! 타다탕!
새벽 공기를 찢고 날카로운 총포 소리가 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뿜어져 나온 화약 연기는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다. 그 자리에서 왜군 정찰병은 즉사했다. 머리에서 솟구친 핏방울이 흰 눈밭을 선연하게 물들였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정찰병의 몸은 인형처럼 허물어졌다. 왜군들의 진영에서는 총포 소리에 놀랐는지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혼비백산한 병사들의 외침과 함께 경계 태세에 들어서는 북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성공이었다. 만복은 차분하게 손을 들어 총포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도록 지시했다.
[장면 전환: 산 정상에서의 관찰]
초영은 아랑과 함께 직산현(稷山縣)을 감싸 안은 더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서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침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동쪽 하늘 아래, 아래에서는 포수들의 총성이 메아리치고 왜군 진영의 소란이 아득히 울려왔다. 시리도록 맑은 새벽 공기가 초영의 흰 도포 자락을 휘감았다. 아랑은 초영의 옆에서 잔뜩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초영의 시선이 아래를 향하는 것을 좇으려 애썼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답답함에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초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도! 보고 싶다고!"
아랑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눈은 반짝였지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희미한 연기와 움직이는 점들뿐이었다. 그러자 초영은 살짝 미소 지으며 다시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사용해 아랑의 눈을 지그시 비벼 주었다. 초영의 손이 닿는 순간, 아랑의 시야는 거짓말처럼 확대되고 선명해졌다. 마치 도력(道力)으로 그녀의 감각을 증폭시킨 듯, 매의 눈처럼 산 아래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뭇잎 하나하나, 병사들의 표정까지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어? 왜 다 같이 쏘는 거지?"
아랑은 확대된 시야로 만복 일행의 움직임을 보다가 의문이 든 듯 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전 포수들은 한 명의 정찰병을 잡기 위해 열 명이 동시에 사격하는 다소 비효율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초영은 멀리 아래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마도 저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조선군이 산에 매복하고 있다고 속이려는 것이겠지. 열 발의 총성이 한 명의 사격수가 낸 것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만들려는 심산이다."
그의 시선은 왜군 진영의 혼란스러운 움직임을 꿰뚫고 있었다.
"더불어, 저 총성을 들은 직산현(稷山縣) 인근 백성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미리 도망치게 하려는 뜻도 있을 게다. 포수들은 그들의 역할 그 이상을 해내고 있군."
아랑은 초영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산 아래 포수들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총성이 멎자마자 만복 일행은 재빨리 움직였다. 포수들은 총에 맞아 쓰러진 왜군 정찰병의 시체를 숲 속 깊숙한 곳으로 옮겨 감쪽같이 숨겼다. 능숙하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왜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흔적마저 지우는 데 능숙했다. 매복과 위장, 그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장면 전환: 검은 정찰병의 등장]
한 시진(時辰)쯤 흐른 뒤였다. (한 시진은 약 두 시간이다.) 산등성이의 침묵은 다시 깨졌다. 여명은 어느새 밝아와 희미하게 숲 속을 비추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어둑한 기운이 지배적이었다. 정찰병의 죽음으로 산 아래 왜군 본진은 더욱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수색조를 편성하는 듯 병사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웠다. 그리고 그때, 왜군 본진에서부터 짙은 숲 속으로 두 명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초영과 아랑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완벽한 검은색으로만 된 군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마저 검은 두건으로 가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밤의 정령(精靈)처럼 어둠 속에 스며드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좀 전의 일반 정찰병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맹수의 사냥처럼 빠르고 민첩했으며, 몸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 부드러웠다. 산에 자라난 고목(古木)과 바위를 방패 삼으며, 포수들을 찾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숲 속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그들의 기척은 초영의 영적인 감각마저 잠시 혼란스럽게 할 정도였다.
둘 중 한 명의 검은 병사가 만복 일행이 매복한 지점으로 무섭게 가까워졌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사냥감을 포착한 뱀 같았다. 동요한 포수들은 미처 숨도 쉬지 못하고 검은 병사를 주시했다. 매서운 시선으로 숲 속의 포수들을 찾아내고 공격할 기회를 노리는 듯했다. 만복은 그들의 비범한 움직임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보통 병사가 아니었다.
타앙!
한 포수가 서둘러 총포를 쏘았지만, 검은 병사는 눈치챈 듯 쏜살같이 옆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빨랐다. 총알이 스쳐 지나간 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나무 뒤에서 뛰쳐나와 만복 일행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손에는 섬뜩한 빛을 발하는 **단도(短刀)**가 쥐여 있었다. 그가 땅을 박차고 튀어나오는 순간, 마치 인간의 육체를 넘어선 듯한 비현실적 인적인 속도가 포수들의 눈을 현혹시켰다. 숲 속의 지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포수들 앞까지 도달했다. 순식간에 육박전(肉薄戰), 즉 육탄전(肉彈戰)으로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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