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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쟁이 Oct 17. 2023

갑작스러운 아내와의 이별..(1)

웃으며 손까지 흔들면서 했던 인사가 마지막일 줄은..

 2021년 추적연휴에 아내는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 하늘에 별이 되었다. 2021년도의 추석은 주말과 함께 붙어있던 연휴였다. 그래서 다들 긴 연휴 동안 여행 계획도 잡고 어떻게 보낼지 많이들 고민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집도 처가에서 여행 갈 테니 찾아오지 말라는 장모님의 말씀에, 아내는 또다시 대게를 아주 맛나고 이쁘게 해 주는 곳이 있다면서 속초로 떠나자고 했다. 그 맛집 근처에 좋은 숙소도 예약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났다. 


 시간만 나면 우리는 대게 맛집 찾아다니는 여행을 다녔다. 워낙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아이들도 좋아했기에 갑각류를 안 좋아하는 나지만,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불태우며 장거리 운전을 업으로 삼고 달렸다. 그렇게 도착해서 숙소 체크인을 하고 약간 어두워질 때쯤 숙소 앞 오징어 잡이 배가 들어오는 곳에서 구경도 하며, 천천히 속초 바다의 짠내음과 습한 공기를 피부와 코, 그리고 눈으로 느끼면서 맛집으로 걸어갔다.      


 맛집에 도착해서 1층에서 아내는 능숙하게 대게를 고르고 회와 함께 코스요리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2층에 올라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는 대게가 빠르게 나오길 아주 얼굴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여보~ 고마워~ 히히..” 

이럴 때 보면 아주 어린이가 따로 없다. 옆에 있는 4학년 짜리 딸과 표정이 똑같았으니 말이다. 대게가 나오고 회도 나오고 맛있는 음식에 소주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음식 평가를 하면서 즐기고 있을 때쯤, 아내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요즘 왜 이렇게 잘해줘~? 내가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 고맙게 시리..” 

이런 말을 하는 아내에게 나는 좋은 음식 앞에 두고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아내가 항상 몸이 아파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자기 집처럼 다니기 때문에 이런 소리 하나보다 했지만, 진짜 현실이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  

    

 사람은 자신이 갈 때를 안다고 했던 게 맞는 말이었던가? 여행을 다녀온 그날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그래도 명절 음식이라고 전을 조금 만들어 먹고 잠들었었다. 가족 모두가 피곤해서 늦잠을 자고 있는데, 아내가 나를 급하게 불렀다. 

“여보, 나 병원.. 가야 돼..” 

나는 얼굴 상태를 보고 급하게 119에 전화해 구급차를 불렀다. 경험상 내 차로 움직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구급차에는 응급처치 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있고, 구급 대원들이 있기에 빠르게 119에 전화를 했다.      


 구급차가 오고 나서 아내는 쇼크 상태로 한번 기절했지만, 다행히 정신을 차렸고, 구급차에 옮겨졌다. 그런데 구급대원들이 출발을 못하고 있기에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니, 코로나 환자로 인해 병원이 모두 꽉 차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위급 환자들도 격리실에서 코로나 음성이 나올 때까지 있어야 하는데 격리실조차도 없다는 것. 그런 이유로 우리는 충남 아산에서 천안, 경기, 병원도 꽉 차 당진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곳에 격리실에 들어갈 수 있었고, 코로나 검사와 함께 11시간을 둘이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격리실에 들어가기 전 간호사에게 필요한 물품에 대해 안내받았다. 기저귀, 물티슈 등. 중환자실을 자주 다니신 분들은 알 것이다. 기본물품에 대해서, 구급차를 따라 끌고 온 나의 차 트렁크에는 항상 준비가 돼있던 물품이라 빠르게 준비하고 11시간을 혼자 있어야 하는 아내의 격리실에 들어섰다.      


 아내는 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힘겹게 말을 꺼냈다.

“여보, 미안해..”

“나는 괜찮으니까, 얼른 여기서 나가자.”

라는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11시간 동안 아내는 항생제를 계속해서 투여받으면서 염증 수치를 낮춰야 했다. 나는 아내의 기저귀를 열심히 갈아주기만 반복할 뿐, 해줄 수 있는 건 그냥 손을 잡고 있어 주면서 표정을 살피며 물을 먹여줄 뿐이었다. 나가면 나 따라다니면서 운동 좀 해서, 몸도 튼튼하게 하고, 술도 줄이고, 이제는 병원 오지 말자는 그런 대화를 하면서 11시간을 견뎠다. 이때까지도 나와 아내는 이별을 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11시간이 지나 코로나 음성결과와 함께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정밀검사와 함께 의사 선생님은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아 일단 염증수치를 낮춰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폐렴도 심한 상태라 중환자실에서 항생제 치료를 하면서 지켜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쓰여야 하는 물품들을 추가로 가져다주고, 중환자실에서 나와야 했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나, 애들 밥 좀 챙겨주고, 집정리 조금만 하고 빨리 다시 올게. 밖에서 있을 테니 푹 쉬어..”

아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내는 걱정 말라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응~ 애들 밥 챙겨주고~ 다녀와~ 미안해~”

밝게 웃어주면서 같이 손을 흔들어 주는 아내의 마지막 인사로 우리는 그렇게 이별을 했다.           




  이 세상의 단 하나뿐인 짝꿍과의 이별은, 가슴에서 심장을 도려낸듯한 고통과 함께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아무리 웃으면서 인사를 했어도, 그게 마지막 이별 인사일 줄 몰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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