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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쟁이 Oct 17. 2023

아내의 빈자리는 아이들과 나누어 채우기.

엄빠는 이제 세수만 해도 손목이 아파온다. 

 이제는 엄빠로서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한다, 슬퍼만 하고 있을 시간은 이제 없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다시 출근을 시작해야 하고 아이들도 등교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집안일을 우리 셋이 해나가야 했다.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침 식사 준비도 그다지, 그러나 제일 문제는 아이들 깨우는 일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헬스장을 다녀오면 아이들은 일어나 있고, 아내가 준비한 아침식탁에서 밥을 먹고 출근만 했었기에 아이들 깨우는 일이 어려운 줄 몰랐다. 그러나 직접 깨우려 해 보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깨우고 뒤돌아서면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잠들어 버리고, 둘째는 아직 저학년에 남자 아이라 그런가 옷을 제대로 입지를 못하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한 엄빠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빠의 아침식사는 입맛에 안 맞는지 젓가락을 깨작거리고, 엄빠는 바빠 죽겠는데, 아이들은 엄빠의 시간표에 맞추려 하니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아침을 다 먹고 설거지하고 출근해야 하니 아이들 기상시간이 앞으로 당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아침은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없이 맞이하는 아침 시간, 모든 것이 바뀌어서 적응해야 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닌 시간들이었다.  

   

 하루 시작하는 아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퇴근하고 오면 쌓여있는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각종 집안일. 제조업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엄빠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후 8시에 퇴근해서 집에 와 또다시 각종 집안일을 하려 하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진짜 새벽마다 운동을 해서 그나마 체력이 있으니 버티는 것이지,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텼을지 상상이 안 간다. 나는 새 차는 안 해도 집안은 깨끗하고 정리 정돈은 기본으로 되어있어야, 편안한 휴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더욱더 그랬던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나만의 집안일 루틴이 생기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도착하면 빨래 바구니를 확인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돌린다. 이후 바로 옆의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바로 청소기를 한 바퀴 돌려주도록 한다. 물론 전부 다 청소기를 하지 않는다. 제일 활동량이 많은 거실과 주방을 위주로. 이후 고양이 화장실을 한번 치워주고 건조대에 있는 빨래를 걸어서 옷장으로 정리를 해준다. 이후 퇴근 때 샤워를 했지만, 집안일로 인해 흘린 땀이 있기에 한 번 더 샤워를 한다. 그러고 잠시 거실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면 세탁 완료했다는 세탁기의 소리를 듣고 건조대에 널어 주도록 한다. 이게 나의 퇴근 후 집안일 하는 루틴이다.      


 그런데 어느 날 설거지를 하는데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라? 왜 안 아프던 손목이 아프지?’

그릇을 수세미로 힘 있게 닦는데 찌릿하는 것이다. 

‘아! 이게 바로 주부들의 손목결림이구나!’

그리고 걸레질을 하는데 손목의 통증을 느끼면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아우! 잘라 버리고 싶다!!”     


 손목 통증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금 현재 까지도 손목의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제는 통증이 없는 날이 더 신기할 따름이다. 아침에 세수를 하는데도 손목이 아픈데,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대로 살다가는 진짜, 손목 못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였다.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딸아이에게는 주방 설거지를 아들에게는 고양이 화장실과 사료, 물 담당. 이것을 일단 나누어 주었다. 처음 설거지를 하는 딸의 설거지 상태는 기름때가 그대로, 빨간 국물과 고춧가루가 그대로였다. 아들은 고양이 화장실은 냄새 때문인지 뺀질이처럼 꼭 한소리 듣고 나서야 울상을 지으면서 하곤 했다. 그래도 엄빠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하도록 했다. 안 하면 용돈을 안 주겠다는 협박으로.     


 지금은 우리 큰 딸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설거지할 게 없도록 항상 해준다. 그리고 학원을 다녀오면 동생과 함께 저녁밥상을 차려서 먹는 것도, 누나로서 엄마의 역할을 부탁했다. 아들 녀석은 가끔 빼먹지만, 그래도 사료와 물, 화장실도 곧잘 치워 놓는다. 그리고 하나 더, 남자라고 분리수거까지 시키고 있다. 그래도 내손이 항상 가지만.. 이렇게 나는 한 가지씩 아이들과 집안일을 나누어서 하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집안일은 같이 사는 사람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들이 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듯, 고마움을 모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직접 몸으로 느껴봐야지 내가 어떤 편안함을 부모님 때문에 누리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아내의 빈자리를 셋이서 나누어 채워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비록 서툴고 아직 어리숙하지만 말이다.      


 사실 전업 주부였던 아내의 집안일이 할 것도 많고, 신경 써야 할 점이 이렇게나 많은지 몰랐다. 엄빠가 되고 나서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알게 되었다. 아내의 존재가 우리 집에서 이렇게나 큰 존재였다니. 아내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많이 못해준 게 너무나 미안해서, 죄책감 같은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아내에 대한 생각과 함께 글을 쓰는 김에 이번주 주말은 아내에게 다녀와야겠다. 집안에서 항상 우리들을 챙겨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와야 마음이 편할 듯하다.       

   


 사람은 직접 몸으로 느껴봐야 안다는 말. 세수할 때조차 손목에 통증이 느껴질 만큼 만성통증이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가족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안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여보, 걱정은마. 우리 셋이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집안일 셋이서 나누어하면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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