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를 이용한 브랜드텔링
생존을 위해 감각으로 변화를 감지해 온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통해 환경적 위험 요인을 찾아내고 사람들의 얼굴의 변화로 사회적 위험 요인을 인지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먹구름이 끼고 아침부터 쑤시는 무릎은 경험상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비가 내릴 것이고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야 한다는 결론까지 얻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경험으로 모아 온 정보들은 날씨를 예측하는 요소가 됐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구름의 움직임, 기압의 형성, 위성사진 등의 데이터를 슈퍼 컴퓨터에 입력하면 날씨 분석 알고리즘을 통해 이제는 주간, 월간 단위로 날씨를 예측하기까지 한다. 물론 예측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의 날씨 앱을 켜고 우산이 그려져 있으면 우산을 준비한다.
사람들은 얼굴을 살펴 눈썹을 치켜뜨고 입을 앙다문 화난 얼굴, 입 꼬리가 올라가고 눈꼬리는 쳐지는 기분 좋은 상태의 얼굴 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행동을 해왔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문자 앱이나 채팅앱에 표시된 이모티콘으로 글 안에서도 감정적 상태를 전달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현재의 변화를 감각으로 인지하고 그동안의 경험으로 분석해 해석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하며 세대를 거쳐 위험하지 않은 삶을 유지했고 이런 행동은 삶에서 꼭 필요한 요소로 DNA에 기록되고 후대에도 전해지고 있다.
날씨의 예시는 자연현상을 감각으로 인지하고 경험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면 얼굴의 예시는 경험에 의한 것을 그림으로 기분이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년 11월 26일 ~ 1913년 2월 22일)나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년~1914년) 같은 학자들은 이를 기호학이란 학문을 정립하기도 했다. 특히 소쉬르는 기호(記號, 프랑스어: signe 사인)는 기표(記表, 프랑스어: signifiant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프랑스어: signifié 시니피에)로 나눌 수 있으며 기표는 표현되고 보이는 것, 기의는 그 안에 내재된 의미이자 개념이라고 나누고 사람들은 기표를 보고 기의를 기억하거나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기호는 언어의 일종이라고 설명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산(기표)을 보고 오늘은 비가 내린다(기의)는 것을 알 수 있고 웃는 얼굴(기표)을 보고 상대방이 기분이 좋다(기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다.
브랜드의 시각적 아이덴티티 중에 로고나 심벌이 있다. 기표를 보고 기의를 해석해 경험으로 쌓아 온 사람들은 브랜드를 경험한 후 로고를 보고 좋은 생각을 가진 브랜드인지 사회적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브랜드인지 거짓말을 하고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브랜드인지 곧바로 구별한다. 실세계에서 사람들은 로고를 보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으로 아주 짧게 판단하고 의사 결정한다.
브랜드 로고는 브랜드의 기표이고
기의는 브랜드와 사람들 간의 사회적 행동과 의사소통에 의해 만들어진다.
로고라는 기표에 담긴 긍정적이고 바른 기의를 위해 브랜드가 항상 노력해야 한다. 훌륭한 기의가 깃든 기표는 변하지 않기에 더욱 효율적이고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의 대표적 기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고 이외에도 브랜드가 하고자 하는 말을 심을 수도 있다.
프랑스 끌레르몽 페랑에서 자동차 타이어 회사를 경영하던 앙드레 미쉐린과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이와 미식을 즐기는 이의 계층이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자동차로 이곳저곳을 누빌 그 들을 위해 책 하나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형제의 말대로 1900년에 최초로 발행된 미쉐린 가이드(Guide Michelin)는 120여 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 44개 도시의 훌륭한 레스토랑의 이름 옆에는 미쉐린의 별(*;asterisk)이 빛나고 있다.
별의 모양을 가진 기표가 가진 기의는 미쉐린 가이드가 임의로 정의한 것이다.
별 하나는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 별 둘은 ‘요리가 훌륭하여 들렀다가(detour) 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 별 셋은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여행(journey)을 떠날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이다.
무료로 배포되기에 어쩔 수 없이 지면을 차지해야만 했던 광고가 별을 부여하는 평가의 객관성을 해친다고 생각했던 형제는 1920년부터 가이드에 싣는 광고를 없애고 유료화를 단행했다. 사람들은 가이드를 더 가치 있는 책으로 느꼈으며 안에 담긴 정보가 믿을 만하다 인식한다. 6년 후에는 레스토랑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손님인 듯 위장한 익명의 평가원을 보내 요리를 평가하고 별을 주는 지금의 평가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위해 평가원들은 모든 요리의 값을 치르고 자신의 신변을 철저히 위장해야만 했다. 방문 후 보고서를 작성하고 모여서 스타 세션이라는 토론을 함으로써 평가에 철저한 객관성을 부여했다. 평가의 실체적 공정성을 확보한 미쉐린 가이드는 해를 거듭하며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고 별을 믿고 방문한 이에게 만족감을 주면서 그 힘이 더욱 강력해졌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미쉐린 가이드가 매년 살아난다는 것이다. 과거에 받았던 별도 매년 다시 평가하고 별수만큼의 내용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별을 빼앗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별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런 노력 끝에 미쉐린 가이드의 별은 요리하는 사람들에겐 갖고 싶은 희망의 별이 됐고, 요리를 먹는 사람들에겐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방향 잡이가 됐다. 미쉐린 가이드의 별이 인정받는 기의가 된 것은 백여 년간 일관성 있게 기호로 브랜드텔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미쉐린 가이드의 120명 평가원은 전 세계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별을 매기거나 별을 빼앗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세계 곳곳의 내로라할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별을 부여받기 위해 혹은 별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훌륭한 레스토랑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다. 소쉬르는 기표를 청각 영상(聽覺映像)이라 말하는데 ‘청각 영상은 물리적 사물인 실체적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의 정신적 흔적, 즉 감각이 우리에게 증언해 주는 소리의 재현’이라 설명한다. 그러므로 기표가 될 수 있는 것은 로고, 사이니지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가진 소리의 형태를 포함한 모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애플’이란 단어를 들으면 ‘사과’를 떠 올리기보다는 ‘다른 생각으로 만들어진 혁신적인 무엇’이라 떠 올리는 것은 애플이란 브랜드가 명확한 콘셉트를 가지고 일관성 있는 제품 혹은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애플의 사례를 통해 ‘기호'라는 추상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하나의 ‘단어’를 장악한 브랜드가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세상은 디지털화하면서 몹시도 편리해지고 쉬운 의사소통이 가능해 적은 비용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가 원하는 기의를 가진 기표를 만들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브랜드를 쉽게 만들 수도 있지만 쉽게 망(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