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그리워하여 보고 싶어 하는 마음
무언가를 진득하게 좋아하는 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물도 사람도 그 무엇에도 오랜 시간 마음을 쏟고, 정성을 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며 혼자의 시간에 더욱더 빠져 들었다. 그랬던 나는 몇 개월 간 꽤 꾸준히 어떠한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책을 읽다가도 문득 떠올리고, 밥을 먹다가도 문득 궁금해지고, 잠을 자려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고, 심지어 꿈에서도 문득 그리워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이 감정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생경한 감정의 이름을 찾지 못한 채 헤매던 중 김화진 작가의 소설, 동경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 세 명의 주인공들은 각자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면을 가진 친구를 속으로 부러워하고,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서로의 상처를 품으며 우정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키워 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청춘들의 우정 이야기 정도로 간추릴 수 있겠지만, 세부적인 줄거리나 전개 방식에 대해 논하는 것을 떠나 내게는 한 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일 년 중 울림과 깨달음을 준 여럿의 책 중 하필 ‘동경’이 깊이 자리했던 이유는 단순히 최근 가장 많이, 그리고 깊게 느낀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존경인지 사랑인지 혹은 질투인지 명명할 수 없어 혼란스럽던 감정은 어쩌면 동경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한다’는 의미의 동경과 ‘사랑하여 몹시 보고 싶어 하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움의 유의어에는 ‘사랑’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면면을 멋지게 생각하고, 닮고 싶어 하고, 진득하게 마음에 품었던 이 감정은 바로 동경과 사랑 사이에 위치한 감각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동경이란 누군가를 좋아하고 우러르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유형의 감정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애달픔도 같이 자라난다는 것을, 밤잠을 설치던 침대와 선잠의 꿈으로 찡그린 미간을 문지르며 좋아하는 일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배웠고, 책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힘겨워하는지, 행복하면서도 괴로워하는지, 기쁘면서도 슬퍼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특히나 괴로웠던 것은 시시때때로 핸드폰에 접속하기만 하면 나의 손에 닿을 것처럼 보이는 선망의 대상이 실은 닿지 않고 저 멀리, 화면 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SNS의 폐해가 이런 것일까. 어쩌면 가까워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실은 착각이었음을 반복하여 인식하게 되는 과정에서 선망은 어떨 때 연모가 되었다가 시기로 변했고, 좋아하면서도 샘을 내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실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말았다. 평소 SNS를 즐겨하던 나로서도 소셜미디어를 멈춰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빠르게 무게를 더해가던 감정은 정말로 소셜 미디어를 멀리하자 그 속도가 줄었다. 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들여보던 시간을 줄였다. 부작용으로 TV 틀어 두는 시간이 늘기는 했지만, 골똘한 생각의 굴레에 빠지는 대신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택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밤잠에 들기까지의 시간이 빨라졌으니 손해만의 일은 아닐 거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가끔은 용기를 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물론 동의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니까.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지금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당분간은 어려웠던 마음을 그저 잔잔히 흘려보내고 싶다. 그러다 다시 소진된 용기가 채워지는 날, 사랑을 결심하는 날이 오면 주저 않고 전부 써 버릴 것이다. 단지 지금은 동경과 사랑 사이에 있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