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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꿈의 숲 01화

1화 두 갈래의 길

선택하지 않은 자여!

by 우산을 쓴 소녀
글, 그림: 우산을 쓴 소녀


-이 글은 작가의 4년간, 꿈속 여정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우산을 쓴 소녀의 첫 소설입니다. 두근두근!]


1. 두 갈래의 길

-선택하지 않은 자여!-

등장인물: 주인공[루미나], 부부[에드, 카일라], 모자[소피아, 테오], 친구 2명[이연, 은정]


꿈과 현실이 공존하는 그곳, ‘꿈의 숲’은 매년 전 세계 사람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숲으로 향하는 길은 자동차나 그 밖의 탈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고, 1대의 열차만이 그곳을 통과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열차의 수용 인원은 하루 단 7명뿐!

정원이 꽉 차면, 열차의 옆문 위로 길쭉한 나무 전광판이 휘리릭 돌아가며, 정원의 완성을 뜻하는 오, 엑스가 표시되었다.


열차는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운전사 없이도 운행이 되었으며, 꿈의 숲 방문객들은 열차 안으로 어떤 소지품도 가지고 탈 수 없었다.


만약, 주머니 속 숨겨둔 작은 초콜릿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버스는 창문이고 앞 유리창이 고를 가리지 않고, 탑승객 전원을 사방으로 날리듯 내뱉어 버렸다.


붉은색의 고풍스러운 열차는 오랜 시간 숲과 함께 자라난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애초에 나무와 풀 사이에서 태어난 듯한, ‘살아있는 열차‘라 불릴만했다.


열차 내부에는 등나무 줄기에서 핀 보라색 꽃들이 만발해 있었고, 뒤쪽으로 난 작은 공간에는 파랑새 가족의 작은 둥지가 있었다.


그곳은 자연과 한 몸인 듯 생명을 품고 있는 자그마한 생태계였다.


그렇게 7명의 탑승객이 정해지자, 열차는 끼리릭 소음을 내며 열차 특유의 ‘칙칙폭폭’ 정겨운 소리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꿈의 숲 주변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웅장한 자연경관이 날 것의 위엄마저 느끼게 하였고, 길고 긴 숲의 터널을 통과하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함께 푸른 하늘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루미나는 그 광경을 지긋이 바라보다 마음이 사로잡힌 듯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에드와 카일라 부부도 웅장하게 펼쳐진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이 테오는 열차의 소음이 괴로웠는지, 소피아의 품에 꼭 안겨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힘껏 눌렀다.


친구 사이인 이연과 은정은 늘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였지만, 자주 티격태격하는 사이로, 꿈의 숲 열차를 타러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대화 한 마디가 없었다.


이연과 은정은 건강한 체형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이연은 평소 짧은 쇼트커트 머리를 즐겨하며, 털털한 성격인 것과는 반대로, 은정은 잘 정돈된 긴 생머리의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아침 해가 막 떠오를 무렵 출발한 열차는 오후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숲 속을 달렸다.


한참을 달리던 열차 주위로 웅장한 거목들과 빽빽한 수풀이 만든 장벽들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달리던 열차는 끼리릭 소리를 내며, 꿈의 숲 정문 앞에 그대로 멈춰 섰다.


나무 전광판이 ‘타닥’ 소리와 함께 휘리릭 돌며, 녹색의 ‘STOP’이란 글씨로 바뀌었고, 열차는 돌로 된 계단 6개를 하나씩 내뱉듯 쌓아 내렸다.


“이곳이… 잃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다는 숲이야?”

에드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카일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꿈의 숲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정문 위엔 ‘꿈의 숲’이라는 글자가 덤불 장식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고, 군데군데 빨간 장미와 노란 장미가 소담하게 피어 있었다.


꿈의 숲은 거대한 수풀에 둘러싸여 있어, 문이 열리기 전까지 안을 전혀 들여다볼 수 없었다.


“열려라 참깨!”

에드가 장난스럽게 외치자, 숲 깊은 곳 잠자고 있던 새들이 놀란 듯 일제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푸드드득—


“흠… 너무 일찍 온 건가? 시간에 대해선 전혀 들은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안 그래, 자기야?”

에드는 기다림이 지루한 듯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에드는 아담한 체형에 깔끔한 헤어스타일, 평소 관리를 잘 받은 듯한 건강하고 매끈한 피부를 가진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연륜이 느껴지듯 그윽하고 깊은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그의 피앙세 카일라 역시, 그와 비슷한 체형으로 단정한 포니테일과 부드러운 인상이 그녀의 연륜을 느끼게 했으며, 평소 자기 관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돈 많은 귀족처럼 느껴졌다.


카일라가 손으로 정문 앞의 사자 문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검색했을 때, 일곱 명이 함께 손을 얹고 밀면 문이 열린다는데?"


밝고 쾌활한 그녀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문을 여는 법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두 모여 주세요! 그리고 문 앞에 서 주세요! 함께 밀어야 해요!”


“카일라 당신, 꼭 가이드 같은데?”

에드는 사랑스러운 그녀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졌다.


“에드, 지금은 그런 장난칠 때가 아니야. 우린 오늘 꼭 꿈의 숲 속으로 들어가야 해. 내가 본 후기가 진짜일지는 몰라도, 일단 해보자. 다 같이 해야 문이 열린다잖아. 그러니까, 숲의 의식에 진지하게 좀 임해줄래?”


카일라는 남편 에드의 가벼운 장난이 판타지 같은 모두의 여정을 망치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투로 다그쳤다.


“그나저나 스마트폰도 없고, 가방도 없으니 문이 열리지 않으면, 으… 벌레도 많고 한 밤중에 곰이라도 나오면 오?! 무섭겠지?”

에드는 장난스러운 미소로 카일라를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 어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리고 당신도 있고 말이야! 어머! 그러고 보니, 에드 당신만 남자네?”

카일라는 혼자만 남성인 에드를 흘긋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무서운 거지.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남자니까 제일 먼저 나서야 할 것 아니야? 나도 연약한 남자인데 말이야.”

에드는 농담 반, 진담 반인 표정으로 카일라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도 에드 당신 은근히, 행복하지 않아? 여자들만 있으니까?”

카일라는 에드를 떠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에 에드는 양 미간을 찌푸리며, 양쪽 귀를 차례로 후빈 뒤 카일라를 향해 털 듯 후후 불어댔다.


“후! 후! 카일라, 자기는 가끔 보면 정말 이상한 말을 해.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난 언제나 당신만 본다고... 참, 입 아프게 말해도 소용이 없네!”


에드 부부의 사랑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두 번째로 열차에서 내린 사람은 금발 머리의 남자아이 테오였다.


그 뒤를 아이 엄마인 듯 보이는 젊은 여성, 소피아가 계단을 밟고 꿈의 숲 땅으로 발을 디뎠다.


금발 머리에 이국적인 생김새, 맑고 큰 눈을 가진 테오가 엄마 소피아의 손을 꼭 잡아끌며 낮게 속삭였다.


“엄마, 무서워... 집에 가요. 여기 싫어. 아빠는?”


소피아는 아직 어린 테오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꼭 잡아주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아가야, 여긴 세상의 모든 꿈이 모여 있는 곳이란다. 꿈이란 마음의 작은 빛이지. 엄마는 그것을 찾기 위해 어렵게 이곳에 왔어. 조금 힘들더라도 엄마랑 함께 가보자.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할 거야! 설레지 않니?”


“아름다운 것들?... 싫어! 난 집에... 가고 싶어... 엄마...”


“테오! 엄마 눈 봐야지!”

소피아의 친절한 미소는 금세 사라졌고, 그녀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테오의 눈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움찔한 테오는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소피아의 손에 의해 강하게 제지당했다. 그런 모자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은 루미나 한 사람뿐이었다.


아이 테오가 조금 진정된 듯 보이자, 소피아는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정문 앞으로 다가섰다.


홀로 이곳, 꿈의 숲을 찾은 루미나는 나무 계단이 얼마나 튼튼한지 여러 번 밟아본 뒤에야 천천히 열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루미나는 건강한 체격에 짧은 오렌지빛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간혹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했는데, 마치 자신 안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모습이었고, 주변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숲의 향기는 언제 맡아도 좋다. 그렇지? 그런데... 7명 명이 모인 이유는... 아, 어쩌면...”


루미나는 영성과 깨달음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었고, 오랜 시간 명상 수행을 해온 명상가이자 타고난 영매였다.


그녀는 늘 작은 주머니에 자신만의 영적 카드를 지니고 다녔지만, 꿈의 숲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어쩌지... 이제는 카드 없이 세상을 봐야 하나 봐... 그렇지?"

루미나는 여느 때처럼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수상쩍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그녀는 여는 때처럼 바람과 숲의 향기를 느끼며 걸었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날씨를 예측하고 있었다.


“어디서 비 오는 냄새나지 않아? 비가 올 것 같은데? 저기 봐, 하늘은 꽤 화창한 편이잖아? 킁킁, 어쨌든 이곳은 비가 오지 않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루미나는 자신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숲의 정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친구 사이인 이연과 은정이 차례로 내렸고, 은정은 깊은 숲 속이 처음인 듯 낙엽을 밟으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너 산에 처음 와 보냐? 왜 이렇게 신이 난 강아지처럼 구는 거야?”


“이연... 넌 자연인처럼 산속을 헤매고 다녀서 지금 내 심정 이해 못 해~ 난 이런 깊은 숲 속은 처음 와본단 말이야. 나무들도 정말 많고... 다만 벌레들이 많아서... 꺄악!!!"

은정은 자신의 눈앞에 대롱대롱 매달린, 녹색 자벌레를 보고는 자지러지게 놀라며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아... 넌 진짜... 저기 저 꼬마도 벌레 보고는 안 놀라... 그리고 난 주말마다 등산을 하는 거지,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 건 아니야.”

이연은 넘어진 은정에게 손을 내밀며, 자벌레가 없는 쪽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루미나는 자벌레를 풀잎 위로 살포시 놓아주었다.


“이연, 들어가면 씻을 수 있는 거야? 어제 씻고 나와서 오늘은 좀 찝찝해... 그리고 아까, 그 벌레들... 머리카락 속으로 죄다 들어갔는지 너무 간지러워.”


이연은 장난스럽게 자신의 코를 틀어막았다.


“어쩐지, 아까부터 벌레들이 너만 쫓아다니는 것 같더라니.”


“야! 너도 만만치 않게 날벌레들이 꼬여 있거든? 어! 지금도 네 머리 위에... 한 만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이연과 은정은 장난스럽게 말다툼을 이어가며, 꿈의 숲 정문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들은 덩굴이 가득한 벽을 어루만지며, 그곳을 함께 방문한 여행자들에게 수줍은 눈인사를 건넸다.


7명의 여행자들이 정문 앞으로 모두 모이자, 어디선가 맑고 청량한 종소리가 숲 속 가득 울려 퍼졌고, 열차의 문은 거세게 닫히며 커다란 굉음과 함께 그대로 떠나버렸다.


열차가 떠나자, 꿈의 숲 정문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몸을 떨기 시작했고, 7명의 여행자들은 곧바로 문 중앙에 그려진 사자 문양 위로 손을 얹었다.


곧 종소리가 한 번 더 커다랗게 울려 퍼졌고, 꿈의 숲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꿈의 숲의 길은 평탄하고 잘 정돈된 정원 같았다.


그들은 깊은 산골의 맑은 공기와 길게 뻗은 세쿼이아 숲길의 고요함을 바라보며, 함께 걷기 시작했다.


“에드, 그런데 다들 젊은 사람들이지? 우리만 나이 들어 보이는데...”

카일라는 에드를 팔꿈치로 툭 치며, 누가 들을까 작고 낮게 속삭였다.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저 꼬마는 도대체 어린 나이에 무슨 잃어버린 꿈이 있어서

꿈의 숲으로 온 거야? 큭큭큭. ”

에드는 웃음이 터져 나온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카일라 역시 에드를 바라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은 채, 아이 엄마 쪽을 슬쩍 가리켰다.


“그게 좀 수상해. 아까 봤잖아, 아이는 들어오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억지로 데려온 거 아닐까?

남편도 있을 텐데, 왜 굳이 아이를 데리고 왔을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워~워~ 카일라, 거기까지는 너무 간 것 같아. 우린 저 사람들이 누군지도, 이름조차 모르잖아.

그냥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 그게 서로에게 편할 테니까.”

에드는 그녀의 말이 선을 넘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카일라에게 속삭였다.


그 모습을 본 카일라는 볼이 살짝 붉어지며, 에드를 향해 애교 섞인 눈빛을 보냈다.


숲 길을 걷던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고, 양쪽길 모두 널찍한 흙 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왼쪽으로 뻗은 길은 포장되지 않은 채, 오래 방치되어 있었던 듯 보였고 비 오는 날의 낮처럼, 보슬비가 내리는 적막한 분위기였다.


반면 오른쪽 길은 푸릇한 나무와 싱그러운 꽃길이 펼쳐진, 마치 화창한 봄날씨와 같은 아늑한 길이었다.


루미나는 선택의 길 바로 뒤쪽으로 놓여있던, 커다란 바위 위로 폴짝 뛰어올라 지구상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숲 속으로 난 길과 사람들을 한눈에 조망하듯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꿈을 찾아 그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운명에 이끌리듯 꿈의 숲을 찾았고, 앞에 놓인 자신의 길조차 무심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루미나는 양쪽의 길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정문 앞에서 풍기던 비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는 듯, 비가 내리는 계단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두 갈래 길 앞에서 갈팡질팡하더니,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 꽃이 만발한 화창한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여섯 명이 선택의 길로 들어서자, 하늘에서는 청둥번개와 같은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너는 누구인데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냐!!!”


하지만 이미 길을 선택한 여섯 명의 사람들에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은 듯했다.


루미나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묵직한 목소리에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맞서듯 마음속에 떠오른 말을 참지 못하고 조용히 내뱉었다.


“어느 길로 가도 그 끝은 같은 거 아닌가...”


그녀의 말에 하늘은 침묵했고, 루미나는 멀어지는 여섯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도 루미나는 자신의 길을 선택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렇게 멀어지는 사람들을 넋 놓고 바라만 보던 그녀는, 마침내 결심이 선 듯 두 갈래의 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하늘에서 또 한 번,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 꽃길 정원이 마감되었습니다. 이 길로는 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루미나는 더 이상 꽃길로 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듣고는 옆 길로 몸을 돌려, 비 오는 산속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뭐. 혼자 왔으니, 혼자 걷는 거지 뭐.”


꿈의 숲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지만, 루미나는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또 맞으며 걸었다.


잠시 동안의 비 오는 길은 그녀에게 오히려 낭만적이었고, 새로운 추억의 한 페이지처럼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비를 피할 곳은 이제 없는 건가? 비는 언제까지 내리지? 얼마나 더 가야 해?’라는 사념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념과는 달리, 몸은 지친 기색 없이 묵묵히 진흙투성이의 길을 나아갔다. 그러한 노력에도 비는 그칠 줄 몰랐고, 꿈의 숲은 어느새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루미나는 곧 어둠이 내릴 숲길을 걸으면서도 숲의 이끌림을 온전히 받아들였고, 비에 젖은 솔나무 향기가 더 깊고 묵직하게 퍼지자, 자신의 영적 감각이 서서히 되살아남을 느꼈다.


그녀는 삶의 향수를 가득 담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떠올리며, 자신에게 놓인 길을 묵묵히 걸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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