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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Mar 05. 2024

쓸데없는 걱정

하루종일 까먹은 아까운 어제

둘째는 답답하도록 묻기 전에는 학교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 중에서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톳시하나 틀리지 않고 전달하는 이웃집 아들들이 있는데, 우리 아이는 그런 류의 아들은 절대 아니다. 덕분에 나는 작년에도 둘째 반의 소식을 같은 반 이웃집 아들에게 건너 들었다. 나는 새 학기가 되면 등교 때부터 하교 때까지 쪼끄만 사건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데, 아이는 먼저 조잘조잘하는 법이 없다. 아무리 자기가 칭찬을 받은 일이라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는 일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입학 하고 나서는 아이가 잘 듣지 못해 반 분위기 파악을 못하나 하고 며칠을 또 잠을 못 잤는데, 지나고 보니 이건 아이의 성향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겠다. 새 학년이 되면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아이가 첫날 반에서 잘 듣고 왔는지, 아이의 인공와우를 궁금해 한 친구들이 없었는지, 아이가 자꾸 되물었는지.. 그게 가장 궁금한데, 청력 관련된 질문들이 혹시나 아이에게 부담이 되지나 않을까 하여 나는 친구들 이야기나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먼저 묻는다. 그러다가 "엄마, 어떤 친구가 인공와우 뭔지 물어봐서 내가 대답했어."라고 아이가 먼저 궁금한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주면 나는 그때서야 아이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잘 알려줬어?" "눈이 안 보이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인공와우를 끼고 있어.라고 대답했어." 유치원 때부터 하도 주입식 교육에 시달려서인지 아이는 허리를 쿡 찌르면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어떤 친구가 마이크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는데, 김지윤이 도윤이 잘 듣게 해주는 마이크야. 선생님과 연결되어 있어."라고 잘도 설명해 줬다고 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주 똑뿌러지는 여자친구 김지윤! 그 반가운 이름을 듣고 아이의 3학년 생활이 갑자기 든든해졌다. ’첫날을 꽤나 괜찮게 보냈군.'하고 철저히 내 입장에서 아이의 첫날을 평가하고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는데, 아이 친구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도윤이가 남자 대표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도윤이가 이겨서 남자애들이 급식을 먼저 먹게 되어 00가 너무 기뻐했어.” 나는 첫날이라 온통 아이의 청력에 대해 민감해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은 되려 아이의 장애에 경계 하나 없이 도윤이를 그저 자기들 급식 빨리 먹게 해 준 남자애로 봐줬다고 생각하니 하루종일 조마조마했던 나의 마음이 하찮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되려 도윤이의 귀에 달린 것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데, 엄마인 나는 또 내 불안이 커져 참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가슴 졸이며 까먹은 하루가 밤 11시에 갑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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