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의 한솥밥>은 백석작가의 동화시입니다. 평안북도 정주 시가 고향인 백석작가는 향토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백석작가의 동화를 외국어를 접하는 것처럼 힘들어합니다. <집게네 네 형제들>을 읽어 봅니다. 역시 향토어가 많고 알지 못하는 자연어가 많아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처음에 백석작가에 대해서는 고향인 북한으로 가서 그의 모든 작품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해금 이후 다시 재조명받은 작가정도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백석작가의 동화시를 읽어보니 리듬감이 있고 예쁜 고유가가 많아 딱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동화였어요.
<개구리의 한솥밥>에서는 형에게 쌀은 얻으러 가는 동생 개구리가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고, 어려움에 처한 그들을 도와줍니다.
다친 소시랑게에게는 치료를 해주죠. 길을 잃은 방아깨비에게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는 구멍에서 나오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풀에 걸린 방아깨비를 도와줍니다.
쌀을 얻는 대신 벼를 얻어 온 동생 개구리. 친구들을 돕느라 그만 날은 어두워져 버렸네요.
그러나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는 법.
어두운 길은 개똥벌레가 밝혀 주고
무거운 볏짐은 하늘소가 들어주고
얻어온 벼 한 말은 방아깨비가 찧어 주고
소시랑게가 풀룩풀룩 거품 내어 밥 지어 주고
개구리는 좋아라 하고 뜰에 멍석 깔고 모두를 둘러앉게 하고 한 솥밥을 먹죠.
이 동화는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나옵니다. 아이들은 생소한 곤충들이나 향토어에 정신이 어질어질합니다. 영어단어는 머리에서 떠오르는데 그 단어의 한국어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사실 저 역시 향토어가 짙은 책은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백석작가의 작품이 대체로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평안도 사투리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고유어가 많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석작품의 동화시는 뭔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게 합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제 일처럼 나서는 주인공 개구리에게서 요즘은 느껴보지 못할 공동체 속의 따뜻한 정감을 느껴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도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삭막한 시대가 결코 건강한 시대가 아님을 어렴풋이 깨우칩니다.
아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친구들과 얘기할 때 지구는 언제 핵폭탄에 의해서 멸망한다, 아니다, 백두산의 화산이 2025년에 폭발해서 멸망한다. 북한이 다시 쳐들어와서 핵폭발이 일어나서 멸망한다,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져서 재해로 멸망한다는 등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얘기를 참 많이 합니다. 어쨌든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이 시대가 별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백석작가는 1912년 생이니 일제강점기 시대의 작가입니다. 불안감으로 치자면 그 시대가 더 암울하고 불안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시대가 암울할수록 어릴 때 느꼈던 향토적이고 공동체지향의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자는 작가의식이 들어 있는 것 아닐까요?
동화시가 너무 좋아 백석작가에 대해 더 알아봅니다.
백석작가의 첫 시집 <사슴>은 당시 조선일보사에 근무하던 작가가 자비로 딱 100부 한정판을 제작했는데, 이 시집이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해요.
동화작가인 줄 알았는데 시인이라니.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윤동주시인이 이 시집을 구할 길 없어 애를 태우다가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밤새워 필사해서 소장했다고 해요.
또 신경림시인은 헌 채 방에서 <사슴>을 구해 매일 안고 다니며 줄줄 외웠다고 해요. 게다가 유명한 노천명 시인의 <사슴>이란 시도 백석시인의 사슴에서 따온 거라니 당대 유명한 시인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이네요. 저는 간단하게 yes24를 열어 백석의 <사슴>을 구매할 수 있는데 말이죠.
내친김에 백석작가의 수필과 소설도 찾아봤어요.
백석수필과 소설에 등장한 우리나라 향토음식만을 연구한 식품영향과의 논문이 있을 정도니 백석작가의 음식명에 대한 조예가 대단한 것을 느꼈어요. 또 작가는 당나귀를 좋아하고 외국어는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등을 했고, 3.8선이 그어진 후 북한문단에서 내쳐진 이후 돼지나 양을 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해요.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준 백석작가는 김소월시인이 같은 학교의 선배인 것을 두고두고 기쁨과 자랑으로 여겼다고 하네요.
저는 동화시로 시작하여 백석작가의 시, 소설, 수필을 읽으며 이렇게 좋은 작가를 몰랐으면 어쩔 뻔했냐면서 기뻐하고요.
정작 동화시는 백석이 정치와 선을 그으며 조용히 여생을 보낼 때 쓴 것이니, 그의 작품 중에 말기에 창작한 것으로 보이네요. 그러니 백석의 동화시는 작가의 문학성과 인생사가 다 담겨 있는 최고경지의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