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여러 감정이 있습니다. 사람은 크게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고, 육체 안에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하는데 그것을 영혼이라고 합니다.
영은 마음이며 생각입니다.
뇌에서 생각과 마음을 만들어 내는데, 사람들은 심장을 마음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심장은 생명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을 심장에 갖다 붙이는 거 아닐까요?
그만큼 마음과 생각이 중요한 인간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은 사람의 감정을 만들어 냅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감정에 휘둘리며 사는지 궁금해집니다.
예전에 윤리 시간에 배운 바로는 감정은 7가지였어요. 희로애락애오욕.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겁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망하는 감정.
이런 감정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 않았던 내가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조금씩 감정도 가짓수가 늘게 되네요.
쓸쓸함. 질투. 애증. 무력감. 불안. 부끄러움. 열정. 신남. 우울함. 사랑. 설렘. 두려움
감정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고 들었어요. 나에게 찾아오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오롯이 느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또 현재 나에게 찾아온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보는 것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팁인 것 같아요.
독서수업을 하는 2학년 아이가 어느 날 슬픈 목소리로 얘기를 합니다.
"방과 후 수업 후에 나랑 다니던 친구가 빨리 가야 한다고 나갔는데, 알고 보니 옆반 다른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랬구나. 너는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어?"
"마음에서 쿵 소리가 났어요. 슬펐고 속상했어요. 나랑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었어요. 내가 그 아이라면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 같아요. 아이는 슬펐다고 했고, 친구에게 따져 묻지도 않았고, 괜찮아졌다고 웃었습니다.
슬픔을 글로 쓰는 건 어느 정도 위로가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글로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워집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딱 부러지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나도 나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 내 눈앞에 내어 놓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이보다 덜 정직한 것인지, 양가적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건지 나는 나의 상태가 가늠이 안됩니다. 이름 붙이지 못할 몇 가지 감정이 있습니다.
후회. 두려움. 불안. 슬픔.
이런 감정들이 요새 나의 감정본부의 키를 쥐고 흔들어 대는 요망한 놈들입니다. 나는 논술선생님답게 아이들에게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강조하지만, 실상 나는 이렇게 느끼는 것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찾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불안과 슬픔이 아마 가장 큰 것인지도 모릅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요즘 나를 따라다니고 있고, 그동안 잘못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막연히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확고하고 분명한 게 좋았는데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조차 가늠이 안되네요.
세월이 흘러 나에게 찾아온 생소한 이런 감정들과도 이제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정이 나를 찾아오는 순간에는 놓치지 말고 감정글쓰기를 해보세요. 의외로 감정이 정리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아이의 감정 글쓰기를 보며 나도 감정글쓰기를 시도해 봤어요.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우면 아르 에르노의 소설 <부끄러움>이나 <단순한 열정>을 읽어보세요. 작가 가 얼마나 적나라하게 스스로를 글쓰기로 발가벗기는지.
저 역시 다시 아르 에르노의 소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아이처럼, 아르 에르노처럼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보고 적나라하게 글쓰기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글쓰기에 부끄러움 많은 나 자신을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