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시간과 글쓰기의 관계
여유 있는 삶이고 싶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어떻게 공부했던가? 생각해 봅니다. 나름 성실한 학생이었던지라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어김없이 다 하고 남은 시간엔 텔레비전을 보고 깔깔거리고, 간혹 집에 돌아다니며 놀 거리가 있는지 둘러보다 다락방에 올라간 기억이 있습니다.
이사를 몇 번 다녔는데 그때마다 다락방이 있어 좋은 아지터가 되었지요.
다락방에는 거의 창고 수준이라 잘 찾으면 오래된 책도 나오고 고장 난 라디오도 나오고 외국에 간 삼촌의 앨범도 나오고, 삼촌이 그린 그림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며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속에 오롯이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맘대로의 시간을 보내는 건 지금 돌아보건대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별 소득 없는 시간, 탕진하는 시간, 낮잠 자는 시간, 멍 때리는 시간,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시를 쓰는 시간, 오래된 책을 찾아 읽는 시간 이 모든 시간은 여유로운 시간 때우기의 다른 이름들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활동적인 시간 때우기는 거의 없네요.
제 MBTI가 INFP이거든요. 제가 편하다고 느끼는 시간들은 온통 혼자 놀 때인 것 같아요. 물론 나이가 들어 지금은 둥글둥글 성격도 마모가 되어 I인 것 같기도 하고 E인 것 같기도 한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요.
반면에 요즘 논술수업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독서나 논술이 시간 때우기의 다른 이름일리 없죠.
스케줄 소화하기의 다른 이름이랍니다. 그들의 스케줄은 수학, 영어, 국어, 논술, 과학 등의 과목이름과 학원이름으로 점철되어 있어요. 그것 또한 스스로 짠 시간표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표이고요.
낮잠 자기는 언강생심 꿈도 못 꿀 노릇이죠. 그래서 그런지 중. 고등학생이 되면 학교 교실에서 그렇게 잠을 자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네요.
시대를 따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옛날 제가 누린 호사를 요즘 아이들도 누린다면 경쟁에 뒤쳐져 혹독한 결과를 치를지도 모릅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내가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있을까?'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다행히 그 시대는 학원도 많이 없었고, 어머니들도 초등학생을 학원에 보내는 분들도 흔치 않았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학원에서 어린 시절을 저당 잡히고 대신 미래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생각해 봐도 저는 어린 시절의 자유를 빼앗기도 싶지 않네요. 무엇을 하든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으니, 그만하면 많은 것을 배운 것이죠.
"선생님, 우리나라가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거 아세요?"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수업 전에 볼멘소리로 훅 들어옵니다.
"들었어. 근데 OECD회원국중 1위는 아니라 10위 정도 하더라. 자살률이 왜?"
"제가 5학년때 영어학원문 앞에서 서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땀이 삐직삐직나고 숨이 막혀 왔어요. 곧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어요."
"어?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했어요. 죽을 것 같다고. 학원에 오늘만 안 가면 안 되냐고."
"그래? 어머니는 뭐라셨어?"
"선생님께 전화해 주겠다고 하고, 집으로 오라고 해줬어요. 그때 5학년때 저는 중학영어를 배우고 있었거든요.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공황장해 직전을 경험한 것 같아요."
다행히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숨 쉴 틈 없이 학원숙제가 빼곡하게 있다며 한숨을 쉬었어요. 그리고는 우리나라는 학원이 없어지면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없어질 거라고도 얘기하더군요.
내가 미안해하며 논술수업도 스트레스에 한몫한 거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고 해주더라고요. 논술수업은 스트레스 해소하는 곳이니 논술프로그램은 끝까지 갈 거라고 했어요.
초등학생 저학년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랍니다. 스케줄 속에 피아노나 태권도가 끼어 있어 그나마 재미있게 수업하는 것도 있지만, 학원숙제가 많아 밤 11시까지 못 잔다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여유로운 시간을 주면 아이들이 핸드폰 게임을 한다며 불안해하시는 학부모님들이 계십니다.
한정 없이 여유시간을 줄 수 없겠으나 어느 정도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의견에 코웃음을 칠 때가 있어요.
"쟤 시간이 넘쳐나요. 너무 넘쳐나서 걱정이에요. 맨날 게임만 하고 ᆢ 정말 걱정이에요."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무튼 아이들이 느끼는 학업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는 것 같아요. 모두 학원에 가서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쏫는데도 자신이 느끼는 효능감은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면 아이들은 어떤 것이 떠오를까요?
어려운 시기에도 사랑은 피어난다는 말이 있죠?
전쟁같이 치열하게 학원가를 누비면서도 간혹 자신들에게 오는 행복감을 부여잡고 그 느낌을 평생 들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글쓰기가 행복한 기억을 복기하는 수단이 되거나, 힘든 시기를 지혜롭게 넘기는 치유의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트레스 덜 받는 시대를 열어가는 아이들이 되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