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말하는 행복과 글 쓰는 고통
아이들과 토론을 끝내면 각자 글쓰기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들은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토론 친구들과 선생님이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주면 너무 즐거워합니다.
저는 논술의 최고 핵심기술을 '경청傾聽'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청은 한자로 '기울 경', '들을 청'을 씁니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상대방 쪽으로 자신의 몸이 기우는 것을 느낀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반면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몸이 뒤로 물러난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말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청이란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 얘기를 하면 그 상대방이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눈을 바라보고 마음을 다해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태도입니다. 결국 태도는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인생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보다 사유가 깊어질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한 가지를 얘기한다면 듣는 사람은 열 가지를 들으면서 자기의 의견을 형성할 테니 말이죠.
조선 최고의 왕인 세종대왕은 작은 것 하나라도 여러 신하의 의견을 물었던 왕으로 유명합니다. 진짜 지혜는 들음으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들음으로 자신의 생각도 정립되고 그것이 자꾸 모이게 되면 자신의 철학이 됩니다.
경청이 논술의 핵심이듯이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쓰기의 핵심입니다. 물론 말을 들을 때처럼 긴장감과 현장감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은 작가의 생각을 듣고자 하는 경청의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겠죠?
독서를 잘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공감이나 비판의 의견을 갖게 되는 행위입니다.
흔히 독서를 input으로, 쓰기를 output으로 얘기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input(입력) 한대로 output(출력)이 되진 않습니다. 만약 독서한대로 쓰기가 나온다면 컴퓨터겠죠? 사람은 독서를 하고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재조정하고, 조율하게 됩니다.
마음이란 공장은 퍽 신비한 공정을 거쳐 산출물을 내어 놓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신나게 얘기한 것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지면에 내어 놓습니다.
쓰기 능력은 오랜 연습과정을 거쳐 서서히 자신의 내부 작동과정을 거쳐 습득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죠.
자전거를 처음 타보면 핸들을 이리저리 틀어보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운전하는 감각을 익힙니다. 어지간히 연습한 것 같은데도 마음과 달리 넘어지곤 합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아요. 연습량이 부족한 글쓰기를 할 때면 마음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 고통스럽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읽는 것은 기본이고, 쓰는 것도 많이 연습해야 자기 마음이 원하는 표현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밝힌 바 있듯이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은 글쓰기의 목적이 돈을 벌거나 인기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고 했죠. 글쓰기는 글을 읽는 이들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글을 쓰는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스티븐 킹이 이 글을 쓸 때 교통사고후유증으로 염증약을 100알이나 먹어야 하는 고통 속에 몸부림칠 때였죠. 그는 그런 와중에 글쓰기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글쓰기가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쓰고 또 써야 할까요? 일만 시간의 법칙을 빌어보자면 10년은 족히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본다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어요. 다만 스티븐 킹처럼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 자체에 행복감을 느끼면 좋겠어요. 독서는 행복하지만 글쓰기는 고통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표현하는 그 자체를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글 쓰는 행위를 통해 표현하는 기쁨 그 자체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독서의 즐거움과 함께 쓰면서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