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풀숲을 헤치고 새벽이슬을 밟으며 동이 트기 전의 호수를 만나고 안갯속에 서서 뿌옇게 밝아오는 여명과 고요한 반영과 세상이 깨어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침을 맞는다. 이슬은 발을 적시고 안개는 마음을 휘감고 차가운 정신은 시린 기억과 열정을 부리던 때의 그리움이 피어나 벅차고 눈물겹다. 이어폰을 걸고 Eve Brenner의 강가의 아침을 듣는다.
수면 위의 안개가 산 위로 걷히고 햇살이 비칠 때쯤 이슬은 스러져 땅으로 내려앉는다. 비로소 보이지 않던 색들이 저마다의 옷을 입고 고요한 호수 거울을 들여다본다. 크던 작던 밉던 곱던 그대로의 자신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다. 마음에 들지 않던 내 모습도 풍경과 어우러져 조금은 예뻐 보일 수 있고 말랑해진 마음은 호수만큼 평화롭다. 호수는 제 크기 보다도 더 큰 산을 품었고 산은 호수 아래서도 기품이 있다. 갈대는 무리 지어 산그림자와 속삭이고 멀리 강 저편의 나무들도 옹기종기 모여 가을 색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