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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scist Mar 12. 2023

헬조선 설명서

우리는 왜 '헬조선'에 살게 됐을까?

chapter 1. 교육이라는 지옥도의 기원


Part 2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것은 칸트가 제기했던 ‘상부학부’와 ‘하부학부’의 구분을 통해 교육의 근본적인 기능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헬조선에서 ‘상부학부’에 모든 역량과 관심이 쏠려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명함을 통해 우리는 헬조선의 현실이 결국 ‘불행한 사회에 깃든 건전한 육체’로 요약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근본적으로 ‘불행한 사회에 깃든 건전한 육체’가 만들어진 역사적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불행한 사회에 건전한 육체가 깃든’ 헬조선이 만들어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교육’이다. 조금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교육’이야말로 헬조선을 만들어낸 이유 그 자체다. 지방 소멸, 부동산 가격 폭등, 각종 차별과 폭력 등 헬조선을 만들어낸 모든 요소가 ‘교육’으로부터 발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 소멸만 봐도 교육이 헬조선을 만들어낸 원인 그 자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방이 소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대’ - 수도 이외의 지역 대학을 싸잡아 차별적으로 가리키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개념 – 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그러한 차별적 대학 서열은 더욱 강화되어 ‘오직 SKY’를 넘어 ‘오직 의대’로 그 초점의 범주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제 헬조선에서는 – 헬조선의 논리, 즉 ‘교육=돈’이라는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 ‘의대’를 제외한 모든 대학이 그 의미를 상실했다.

  그렇다면 헬조선에는 어떻게 ‘대학=돈’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왜 헬조선에서는 교육이 결국 세속적 욕망의 충족이라는 역할에 종속, 정향(定向)된 것일까? 이 이유를 탐색하기 위해서 우리는 헬조선의 근대가 탄생된 일본강점기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제국대학     


  안타깝게도 조선은 20세기 초 세계사적 흐름의 대세였던 근대 민족-국가 건설에 실패한 나라다. 조선의 근대는 주체적으로 이루어진 과정이 아니라 이식된 과정이었다. (혹자는 조선의 근대가 그 맹아를 갖추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맹아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은 근대적인 교육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근대적인 교육을 조선에 이식한 주체는 일제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다. 일본은 서구의 문물을 가장 일찍 수입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정치 체제, 즉 천황제를 보존하면서도 서구 문물을 일본적 상황에 맞게 수용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일본은 서구 문물, 특히 유럽의 문물을 수입하는 과정에 있어 교육이라는 영역에도 세밀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일본이 유럽의 교육 정신을 있는 그대로 도입한 것은 아니었는데, 일본은 유럽의 교육을 철저하게 ‘국가와 천황의 영광’을 위해 수용했던 것이다.

  근대화 초기 유럽을 시찰한 일본의 고위 관료들은 유럽에서 ‘대학’이라는 기구에 주목했다. 당시 유럽에서 대학은 이미 확고한 형태를 갖춘 상태였고 그 역할은 교양을 갖춘 시민의 양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원천 기술의 개발이었다. 유럽을 시찰한 일본 고위 관료들은 국가 발전의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던 근대적 대학을 일본에 이식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특히 이들은 대학이 국가의 발전을 위한 원천 기술을 만들어내는 연구 기지(research base)가 될 수 있다는 데에 주목했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원천 기술의 확보, 이것이 바로 일본의 제국대학이 만들어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물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일본이 오로지 물질적인 측면에만 주목해 대학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법학, 사회학, 철학과 같은 비물질적 차원에서도 유럽의 대학을 열심히 모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대학의 기본적인 역할은 천황과 국가의 영예를 드높이는 것이었다. 하기에 제국대학은 근본적으로 기능주의적인 관점에 근간해 만들어졌다.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대학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조선에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일제가 조선에 이식한 대학은 한 단계 ‘강등(degrade)’된 형태였는데, 일제는 조선인이 단순 기술 이외의 지식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선을 통치했던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이 철학과 문학 등과 같은 ‘고급 지식’을 배울 필요가 없으며 배워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철학, 문학 등과 같은 고급 지식이 일본 식민 지배에 대한 문제의식 –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해 저항의식 - 을 배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 아래에서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의 범주와 성질을 극단적으로 제한했다. 조선인 중 극히 일부 – 특히 일본에게 협조적인 사람들 – 만이 경성제국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나마 1919년 3·1 운동에 의해 문화 통치가 시작되기 전까지 조선인은 단순 기술 과목 이외의 과목을 수강할 수 없었다. 또한 3·1 운동 이후에도 조선인은 불온사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칸트가 언급했던 ‘하부학부’를 제대로 학습·연구할 수 없었다.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조선인에게 허락된 선택지는 일제에 쓸모 있는 사람 – 공무원 또는 법관 - 이 되거나, 아웃 사이더가 되어 독립투사가 되거나 룸펜이 되는 것뿐이었다.

  일제에 의한 이와 같은 대학 제도의 이식이 충격적인 이유는 오늘날에도 일제가 이식한 대학의 기능과 구조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 전달의 장(field)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차라리 욕망의 구조 그 자체인바, 교육 제도는 중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욕망을 지향하는 모종의 구조로서 특정한 시선을 내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오늘날 헬조선의 교육 구조는 특정한 욕망을 향한 모종의 시선을 내포한다. 그리고 그 시선이 쳐다보는 것은 결국 돈과 출세다. 상부학부가 하부학부를   완전히 압도하는 –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하는 – 구도의 원천은 이미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일견 한국에서 ‘반일(反日)’은 일종의 ‘국시(國是)’인 것처럼 보인다. 한때 ‘반공(反共)’이 국시였으나, 그것이 여전히 그 지위를 누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거의 집단으로 정신병에 걸린 나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굳이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는 것 자체가 우습다. 한데 나는 ‘반일’이 국시라는 것이 더욱 의심스럽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증오를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다. 한데 한국인들은 정작 일본이 이식해 놓은 제도 자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헬조선의 교육 시스템과 그 기본적 성격을 정초해 놓은 주체는 일제다. 일제는 조선인이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만을 배울 수 있도록 강제했다. 철학이니 문학이니 하는 것들은 불온하고 ‘먹고 사는 데’, 다시 말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한데 조선인은 헬조선에 다다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제가 이식한 그러한 시각에 저항하기는커녕 그것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가치도 없고 도덕도 없는 헬조선에 살고 있다. 교육이 오직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하는 지옥에 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궁금해진다. 일제가 패망한 지 이미 8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도 왜 헬조선에는 일제가 심어 놓은 교육이라는 욕망의 구조가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른바 '압축적인 근대화의 시대'인 1960년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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