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경북 상주에서 상경하여 구로동에 터 잡은 내게 이곳은 제2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구로동 남자와 결혼하여 지금도 살고 있고 심지어 둘 다 직장이 구로동이다. 고용센터에서 일하는 난 이 구로동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 구로동에서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 고용센터를 통해 취업한 사람이라면 나를 모를 리 없다. 고용센터 근무만 13년째 하고 있는 나다.
애 셋을 연이어 낳고 키우던 새댁시절. 막둥이는 포대기에 업고, 둘째는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는 유모차 손잡이를 붙잡고 걸리고... 이렇게 구로시장에 장 보러 자주 갔었다. 구로시장을 거닐다 보면 처음 보는 수많은 할머니들이 너무나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아유~ 늬 집 새댁인지 복댕이여, 딸딸 아들 금메달이야, 200점짜리여~ 잘했네, 잘했어!”
거리는 순간 '나훈아 디너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나와 손 한 번 잡고자 하는 할머니들에게 둘러싸이기 일쑤다. 처음엔 부끄럽고 적잖이 당황했었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다 내려놓고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날도 아이 셋을 이끌고 구로시장에 장을 보러 시장 골목 깊숙한 곳까지 갔었다. 갑자기 봉고차가 멈추더니 톱·망치 등 무서운 연장이 가득한 배낭을 멘 건설일용직 아저씨들이 쏟아지듯 내려 일렬종대로 서서
“야야~ 선상님 오셨다야, 어서 인사들 하라야~”
실업급여 설명회 강의를 한창 했던 예전의 내 모습을 예의 바르신 건설역군들이 기어이 기억해 주셔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속으론 살짝 겁이 났지만 그분들의 고단한 귀갓길이 훈훈해지길 바라며 나 역시 안녕히 가시라고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구로시장에서는 불문율이 있다. 물건을 사지 않고 뒤적뒤적하다가는 평생 먹을 욕을 다 들을 수 있다. 일단 집으면 사야 한다. 또 뜰뜰뜰... 할머니들이 끌고 다니는 캐리어 같은 장바구니가 있다. 옆에 누가 가든 말든 보지도 않고 일단 쿨하게 막 다니다 보니 주변 사람들 발 위로 바퀴가 지나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사과 따윈 기대해선 안 된다. 그랬다가는 욕샤워를 당할 수도 있다. 그저 눈치 없는 내 발이 바구니 아래에 있었던 걸로 마무리해야 한다.
이렇게 성격이 급하고 감정 기복도 심한 구로동 정서가 처음엔 무서웠지만, 작은 실수는 서로가 용서하고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잊어주는 미덕이 있다. 또 순간 확 퍼붓고 돌아서선 쿨하게 가던 길 가는... 복수나 맺힘이 없는 산뜻함도 있다. 찢어진 차 겉면 철판정도는 청테이프로 칭칭 감고 다니는 알뜰한 이웃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골 같은 따뜻한 속정이 일상에 묻어 있다. 오밀조밀 편의시설이 곳곳에 많아 굳이 차를 사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는 좁은 행동반경도 저질 체력인 나에겐 딱이다. 이래서 구로동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