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이라 아이들이 하나도 없어요. 그이와 헤어져 오빠네가 이민 가기 전에 살던 동네에 학원을 차렸어요. 큰길에서 시장으로 들어서는 골목에 약국집 건물이 있었죠? 그걸 헐고 새로 5층짜리 건물을 올렸는데 거기 3층이에요. 그 안에 원룸형으로 방도 들였고요. 가게를 얻는 것도 수리를 해서 밝고 예쁘게 꾸며 개원을 할 때까지 정서방이 도맡아 해 주었어요. 지금은 연습실마다 가지런히 문이 닫혀 남아 있는 공간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흐르고 있어요. 앞니가 뻐드렁 한 가수가 마마를 부르고 있어요. 가슴이 오그라 들것처럼 애절한 소리로요. 노래 속의 어린 주인공은 어쩌다 사람을 죽여 놓고 두려워 떨며 엄마에게 살고 싶다고 하죠. 아 돈 워너 다이. 자기는 이제 막 삶을 시작했을 뿐이라고... 저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실제로 너무 이른 나이에 형장에서 삶을 거둔 한 소년의 영혼이 저 가수의 영혼에 덧 씌워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해요. 죽음 앞에서 절규하는 소년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게 하죠. 내 가슴속에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와 어쩌면 저리도 흡사할까요.
엄마,
나 아이를 가졌던 적이 있어요, 예전에.
결혼 전에 만났던 그 사람 엄마도 기억하시죠? 꼭 막내 사위 삼고 싶다며 졸업 선물로 남성용 화장품세트를 사 주셨잖아요. 사실 그 선물 그 사람에게 내밀지도 못했어요. 졸업식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거든요.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며 누구넨지도 모르는 집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그날 그 사람 부모님께 첫인사를 드리기로 했었는데.
혹시 아이가 생기기라도 할까 봐 조심조심하자더니 아무래도 재미가 없다며 그냥 했던 날은 두어 번 정도였는데 그만 내 몸속에 아이가 들어서 버렸던 거였어요. 그는 나에게 핀잔을 퍼부었죠. 미련스럽다고. 그날이 그날이면 끝내 거절했어야 했다면서요. 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죠. 떼라고요. 나도 그렇게 대들었어요. 떼면 될 거 아니냐고요.
그즈음, 아이를 지우기로 결정하고 예약일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아마도 잠깐 생각을 하긴 했던 거 같아요. 나 역시 그렇게 성가시기만 했던 생명이었거늘.
솔직히 말하면 양심의 가책은 아니었어요. 질기게도 살아남았던 것이 내 운명이었다면 그렇게 떨어져 나가 버릴 것은 아이의 그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어요. 아니 내 배속에 들어 있던 것이 생명이라고 그런 생각조차 안 했는걸요. 잘 품어 고이 간직했다가 세상에 내놓으면 나처럼, 그리고 어디서나 시리도록 눈에 밟히는 저 아이들처럼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저 어리석기만 한 내 사랑을 지켜내려는 일념뿐이었어요.
세상과 화해하고 싶다는 말은 아무래도 틀린 말인 거 같죠? 그보다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아요. 그 아기에게 요. 내가 엄마가 되어 났어야 했던 내 아기에게 요. 그 작고 작은 몸은 이미 오래전에 차고 가혹하게 찢겼다 해도 지금 남아 내 죽음 뒤에 있을 아이의 영혼이라도 안아보고 싶어요. 그 어린 영혼을 안고 용서해 달라고 할래요. 엄마가, 잘 못했다고요.
아, 어떤 아이가 문을 빼꼼히 열고 고개를 내밀고 있네요. 언제부터 저 아이는 저만큼 만을 들이대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 자기가 왔는데도 아는 척을 안 해주는 선생님한테 화가 났는지 뾰로통한 얼굴을 해 자지고선. 올해 일곱 살이 된 은혜라는 여자아이인데 앞니 두 개가 나란히 빠져 웃기라도 할 때면 비어 버린 아이의 이 사이로 슬픔이 튀어나와 내 가슴을 밀려들곤 해요.
나도 이런 아이의 엄마가 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이제 학원도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이번 주까지만 수업하겠다고 안내문을 보냈어요.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나오고 각혈을 하곤 하니까. 숨 쉴 틈도 없이 기침이 밀려 나올 때면 내 살갗이 갈비뼈 사이사이로 뜯겨 들어가는 것 같아요. 죽음이라는 것, 어차피 다가올 거니까 애써 견뎌내려 마음을 다잡아먹었다가도 온몸이 비틀리는 통증이 밀려올 때면 저절로 저주가 쏟아져요. 모든 것 에게요. 세상의 모든 것 한 테요. 그러면서도 이러다가 어느 날 내 살갗은 어디로 다 없어져 버리고 앙상한 뼈만이 내 머리를 받치고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차라리 그러면 좋겠어요. 탈것은 다 타버리고 남은 것만으로도 이 삶을 지탱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곤 해요. 그렇게라도 살 수만 있다면. 삶에 욕심이 나요. 그러니 매일 혼란스러워요. 어느 때는 내 마흔 해의 세월이 너무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짧게 생각될 때면 너무도 때 이른 죽음이 서럽기도 하고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그래요. 종잡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나 혼자 얘기할 수 있는 건 참 좋아요.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사람도 없고 괜스레 누워라 약 먹어라 수술은 꼭 해야 한다고 다짐을 들이대며 성가신 것 없이 그저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들을 볼 수 있어서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내 곁에 있다면 꼼짝없이 이토록 으스스한 죽음에 시달려야 했을 테죠. 안 죽으려고, 그럴 수도 없으면서 안 죽게 하고픈 사람들 때문에. 하지만 이쯤 되니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어떻게 죽어야 할지.
그건 도망칠 것도 아니고 달려들 것도 아니고 묵묵히 나를 내려놓는 것 그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