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없는 발언이지만 저는 학창시절 공부를 좀 잘했는데요,
학창시절 제가 공부를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그저 '잘 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타고난 능력으로 남들보다 훨씬 빨리 정확하게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우리나라의 시험은 잘 외우면 잘 볼 수 있는 시험입니다.
점수가 좋으면 남들은 저를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인줄 알지만 저는 그저 잘 외우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어떤 춤을 보면 바로 몸으로 따라할 수 있는 사람처럼 그저 저는 잘 외우는 능력을 타고났을 뿐입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면 제 머리는 다시 백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단기 기억력'이 아주 좋았거든요.
마치 제 뇌가 '이 지식은 더 이상 필요가 없으니 기억 삭제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 동의했냐구요? 제가 찍어둔 사진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진 정리를 하면서 중요하지 않은 사진은 용량을 위해 지우듯, 저도 제 뇌의 용량을 위해 무언가를 지워야했습니다.
한달용 단기 기억 공부가 저에게 어떤 유익이 있었을까요?
제가 새롭게 깨닫고 이해하고 배워가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사진 찍듯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을 그 순간 반짝 외워서 시험 본 후 '기억 삭제' 버튼을 눌렀을 뿐입니다. 저는 시험 점수만 좋았을 뿐 상식도 잘 모르고 아는거라곤 없는 헛똑똑이였습니다. 점수 뒤에 가려진 저의 진짜 모습을 사람들만 모를 뿐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공부 잘한다는 칭찬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난 아는게 없는데.. 그저 사진 찍고, 이제 그 사진 지웠는데.. 라고 생각했죠.
참 신기하게도, 공부를 열심히 할 때보다, 점수를 포기하고 마구 놀던 때 점수가 항상 더 좋았는데요,
제가 공부를 덜 했을 때 시험을 더 잘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평소에 실수로 시험에서 틀린적은 없습니다. 집착적으로 꼼꼼한 성격덕분이죠.
하지만 저는 '생각을 깊게 해야하는 문제'를 어려워했습니다.
공부를 안했을 때에는 성적에 대한 기대와 부담이 없어 달달 외우는 것에 집착하지 않자 제 뇌가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유연하게 흘러가지 못했던 저의 생각이, 시험을 잘봐야겠다는 부담이 없자 생각이 원활하게 돌아갔고 평소에는 틀리던 생각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맞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딱 수능까지는 '외우는 것이 중요한' 시험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여러 시험들은 결코 외워서만은 잘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저는 논술을 정말 못했습니다. 생각할줄을 몰랐거든요. 논술 학원을 정말 오래다녔지만 제 생각하는 실력은 늘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제가 생각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가 싫었어요. 머리아프고 피곤하잖아요. 논술학원에서 읽어오라는 책도 하나도 이해가 안됐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대체 내가 왜 읽어야하는지 이해가 안됐을 뿐입니다. 저는 그저 책을 보며 논술 문제집 답을 받아적고, 제가 배운 논술 잘하는 법에 따라 기계적인 문장을 써내려갔을 뿐입니다. 제 생각이라고 전혀 들어있지 않은 어디서 보고 주워들은 멋진 문장들만 나열했을 뿐이죠. 그래서 전 논술 시험에서 죄다 떨어졌습니다. 내신 성적을 기반으로한 학생부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대학교를 가도, 대학원을 가도, 취업 시험을 봐도, 대부분의 시험은 '내 생각을 서술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 사회는 '시키는 것만 하는 기계인간'을 원하지 않습니다.
책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에 따르면 핀란드 최고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수학이나 물리학을 모르는 젊은이를 채용한다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습니다. 쉽게 가르쳐 줄 동료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실수하는 게 무서워 다르게 생각하거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줄 모르는 사람을 채용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핀란드의 교육시스템은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아이들이 아닌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여 스스로 연구하는' 아이들을 길러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초중고, 수능 제도는 대체 왜 그런거냐구요?
학생 시절의 '성실함' '끈기' '열정'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현 시험 제도는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줄 순 없어도 가장 빠르고 쉽게 아이들의 성실함과 끈기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 발 맞추어 공부해야합니다.
나의 성실함과 끈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학교 공부에도 최선을 다하되, 진짜 중요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한 공부를 절대 뒤로해선 안된다는겁니다. 사회에 배출돼 무능한 사람이 되어 길을 잃고 싶지 않다면 말이예요.
제가 수학을 가르치면서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학생은 '생각할 마음이 전혀 없는 학생을 볼 때'입니다.
제가 누군가를 대신 생각하도록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면 자유로워야합니다. 내가 생각이란걸 했는데 바로 거부당하고 무시당하면 생각하기 싫겠죠? 자유로운 환경은 가장 먼저 '가정'이 되어야겠고, 그리고 '학교'가 되어야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가정과 학교 모두 우리의 생각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방법이 없을까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없는건 아닙니다. 저희 집도 자유와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습니다. 어른의 말에 무조건 '네'라고만 대답해야하는 집이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지금 아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은 '매일 쓰는 일기'입니다. 내 일기장에 만큼은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안보는 내 일기장인데 생각에 제약을 받을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 말도 안되는 공상도 마구 합니다.
매일 일기를 쓴다고 지금 당장 내 성적이 오르진 않지만 저를 믿고 꾸준히 뭐라도 써보세요. 내가 어떤 새로운 문장을 내 힘으로, 내 생각만으로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중요한겁니다. 멋지고 대단한 문장을 써야만 의미있는 일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아주 큰 자산이 될겁니다. 그렇게 매일 꾸준히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두면 아주 아주 중요한 순간에 여러분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거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저는 10년 째 일기를 써오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뭐했는지 일상을 나열하는 일기보다는 오늘 나의 기분과 왜 이런 기분이 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걸 느꼈는지, 어떤걸 배웠는지를 씁니다. 한 마디로 '팩트' 보다는 내 '생각'과 '감정'에 집중해서 일기를 씁니다.
위에서 말한, 현 시대에 갖추어야 할 능력은, '점수를 잘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업을 가지면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고, '닥친 문제 상황'을 해결하지, 시험을 보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 관계에 능숙해야합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생각할 줄 모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생각이 명확하지 않으면 '감정'이 망나니처럼 내 안을 휘젓고 다니거든요. 어른답게 성숙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게 아니라 '아 짜증나' '열받네' '쟤 왜저래?' 가 됩니다. 그럼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확실히 파악해야 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요.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이 책은 인간관계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기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다보면 아실겁니다. 내 인간관계가 아주 단순 명료하고 편안해졌다는 것을요. 저는 글을 쓴 후 저와 잘 맞지 않았으나 혼자가 되는게 두려워 유지하고 있던 인간관계를 모두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 곁에는 저랑 정말 잘맞고 서로에게 힘이되어주는 사람들만 남아있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거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기 위해서는, 평소에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생각은 언제 생길까요?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생깁니다. 매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일을 하는데 어떻게 새로운 생각이 생겨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평소에 듣지 못한 것, 보지 못한 것과 마주할 때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됩니다. 그 때 내 마음속에서 딱 피어난 그 '생각'은 정말 보석같은 존재입니다. '나'에 대해서 알려주는 단서이기 때문이죠.
글쓰기는 거창한 것이 아님을 꼭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 짧은 일기 쓰기부터 시작해보세요.
기분이 좋아서 매일 쓰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