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억누르기보다 화가 나는 근원을 이해하라. 그 안에 해답이 있다.
지영은 어릴 때부터 주변의 시선과 기대에 민감한 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은 늘 차분하고 예의 바른 자녀를 원했고, 지영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행동을 조심스레 다듬어 나갔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도 틀린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썼고, 항상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는 모범생이 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지영의 마음 한편에는 남몰래 끓어오르는 예민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작은 부당함에도 마음이 상하고, 친구들이 가벼운 농담을 던질 때도 상처받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자기 자신조차 왜 이렇게 예민한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영은 점차 마음속의 감정을 숨기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예민함을 약점으로 여겼습니다. 만약 남들이 이 감정을 알아차린다면, 자신이 여린 사람으로 비칠 것 같았고, 그저 규칙을 지키며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고등학교 시절의 한 경험이었습니다. 반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조별 과제가 있었는데, 지영은 완벽주의자처럼 팀의 역할을 나누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녀의 계획대로 흘러갈 거라고 믿었지만, 팀원들은 그저 자유롭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한 친구는 기한을 지키지 않았고, 또 다른 친구는 준비된 자료를 잃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팀의 무질서함에 화가 난 지영은 마음속에서 넘실대는 분노를 억누르며 마침내 프로젝트를 혼자서 끝냈습니다. 그 경험은 그녀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내가 통제하지 않으면, 세상은 제멋대로 돌아간다.”
그 이후로 지영은 철저히 자신을 다스리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매일 시간을 계획하고 일정을 빈틈없이 관리하며,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세운 규칙을 지킬 때마다 안도감을 느끼고, 모든 것이 통제된 상태에서만 마음의 평온을 찾았습니다. 통제를 잃으면 예민한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 것 같아서, 지영은 마음속의 불편함을 스스로 억누르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강박적으로 예의를 지키고, 규칙을 중시하는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지영이는 대학교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차분하고 침착한 사람으로 여겼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늘 세상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규칙과 질서를 중시하고, 사람들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행동하기를 바랐습니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만 행동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이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나 많은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지영은 대중교통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무례함이나 어지러운 행동을 눈감아 주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마치 세상의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행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지영의 마음속엔 화가 쌓여만 갔습니다.
한 번은 길을 걷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호가 아직 빨간불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보행자가 차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지영은 그들을 보며 속으로 소리쳤습니다. “왜 저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는 거지? 다들 규칙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마치 그녀만이 유일하게 규칙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분노는 자신을 정당하게 만드는 동시에, 세상과 단절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쌓이고 쌓여만 갔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줄을 새치기하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승객들을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작은 불씨가 자라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영은 차분히 자신을 다독이며 이런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나는 예민하지 않아, 나는 그냥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야,” 그녀는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그녀가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규칙과 질서의 기준이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지영은 꽉 찬 지하철에 올라탔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한 사람이 너무 크게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지영도 그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한 남성이 지영의 발을 밟고 지나가더니, 사과 한마디 없이 그 자리에 멀뚱히 서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지영의 마음속에서 그동안 쌓아온 분노가 일순간 터져 나왔습니다.
“저기요! 발 밟으셨으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칸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고, 그 남자는 당황한 듯 지영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녀는 그제야 스스로에게 놀라며, 어떻게든 감정을 추스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발설된 말은 되돌릴 수 없었고, 지하철은 그 순간 이상한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지영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왜 이렇게까지 분노를 표출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왜 자신은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후회와 자괴감이 그녀를 집어삼켰습니다.
Rather than being your thoughts and emotions, be the awareness behind them.
- Eckhart Tolle -
화를 억누르기보다 화가 나는 근원을 이해하라. 그 안에 해답이 있다.
심리학에서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기질이 바로 신경증(Neuroticism)입니다. 쉽게 예민해지고 불안감을 자주 느끼는 성격적 특징인데요, 사실 이것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들짐승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숲 속이나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민한 감각과 불안감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은 생존에 큰 도움이 되었겠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신경증이 높은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를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주위 상황이 자신이 세운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강한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느끼곤 합니다. 이로 인해 완벽주의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고, 작은 변화나 실수도 쉽게 불안을 자극하게 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신경증이 높은 사람들은 완벽주의 성향과 관련이 깊으며, 특히 불확실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일상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일에도 강박적으로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지영이가 규칙을 세우고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해야 불안감을 통제하고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믿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규칙에 더 집착할수록 억눌린 감정은 점점 쌓이고, 오늘의 불안은 내일 더 큰 분노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억눌린 감정이 피곤하고 힘든 회사 생활, 그리고 그 안에서의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이 운 나쁘게 겹쳐버릴 때, 마치 눈이 돌아갔다고 표현할 만큼 질풍 같은 분노로 바뀌어버리는 것이죠. 우리가 살면서 언젠가 "저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있나...?" 싶은 상황에서 당사자는 아마 지영이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지영에게 단순히 “화내지 말라”라고 한다면, 그 말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성격적 특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화가 나는 것은 내가 화를 내기 때문에 나는 것이지, 괴물 같은 인간들이 자신을 자극한다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화가 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거슬리게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쌓인 불안과 통제 욕구 때문임을 이해하는 것이죠. 물론, 이 깨달음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만약 누구에게나 쉬웠다면 우리 모두가 반쯤 심리상담 전문가가 되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영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녀를 아껴주는 사람, 이를테면 연인이나 친구가 무한한 지지와 사랑으로 지영이를 감싸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지영이의 분노가 폭발하더라도 겁먹지 않고, 규칙과 통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답답해하지 않으며 차분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지지받는 시간이 지속되면서 지영은 서서히 불안감과 통제 욕구가 줄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고,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첫 발을 내딛을 준비가 되는 것이죠.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는 독일 출신의 영적 지도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현대 심리학과 영성 분야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The Power of Now)와 새로운 지구 (A New Earth)가 있으며, 그의 저서들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판매되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톨레는 주로 현재 순간에 집중하고 마음속 불안과 고통을 내려놓는 법을 설파합니다. 그는 ‘에고’를 우리 고통의 근원으로 보고,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할 때 참된 평화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사상은 동양의 불교와 선(禪)의 철학, 그리고 서양의 심리학과 영성을 결합하여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점이 특징입니다.
Reference
Sherry, S. B., Gralnick, T. M., Hewitt, P. L., Sherry, D. L., & Flett, G. L. (2013). Perfectionism and its relation to anxiety and depression: A meta-analytic review.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55(5), 520–525.
Dunkley, D. M., Zuroff, D. C., & Blankstein, K. R. (2003). Self-critical perfectionism and daily affect: Dispositional and situational influences on stress and cop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1), 234–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