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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심리학 1편: 매운맛

by 황준선

매운맛의 정체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닙니다. 혀가 아리고,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통증이에요. 뇌는 "이건 위험하다!"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 고통에 빠져듭니다. 참 이상하죠? 그런데 바로 그 고통이 주는 짜릿함이 매운맛의 매력입니다. 이 중독적인 매운맛을 찾게 되는 우리의 심리와 건강하게 매운맛을 즐기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매운맛

한국 – 도전의 매운맛
한국에서 매운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매운 떡볶이', '불닭볶음면' 같은 음식은 먹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에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결국 국물까지 다 마시고, "해냈다!"라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태국 – 매운맛의 향연
태국의 매운맛은 한 가지 맛이 아니에요. 똠얌꿍이나 솜땀처럼 매운맛과 새콤달콤함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축제가 벌어집니다.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매운 음식은 몸의 열을 식혀주는 비결이죠.


멕시코 – 훈제된 불맛
멕시코의 매운맛은 깊고 강렬합니다. 하바네로와 치폴레로 만든 살사는 단순히 맵기만 한 게 아니라, 훈제된 깊은 맛이 더해져 있어요. 매운 소스를 한 단계씩 올리며 레벨을 즐기는 것도 멕시코만의 매력입니다.


중국(사천) – 얼얼한 마라의 세계
사천요리는 맵고 얼얼함이 특징이에요. 마라탕이나 마파두부를 먹으면 혀가 저릿저릿해지면서 독특한 쾌감이 느껴집니다. 이 '얼얼함'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사천요리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요.


인도 – 향신료가 팡팡
인도의 매운맛은 단순히 맵기만 한 게 아니라, 향신료가 폭발하는 복합적인 맛입니다. 카레, 빈달루 같은 요리는 입안에서 불꽃놀이를 하듯 다양한 맛이 춤을 춥니다.


매운맛, 그 이상의 매운맛을 원하는 심리

매운맛을 즐기는 방식은 나라별로 다릅니다. 청양고추, 할라피뇨, 고스트 페퍼 같은 자연산 고추를 사용하는 나라들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매운맛을 넘어'인위적인 캅사이신을 쓰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흔히 먹는 떡볶이나 라면에도 매운맛을 극대화하는 소스가 들어갑니다.


그냥 매운맛을 즐기는 게 아니라, '극한의 매운맛'을 찾아 나서는 거죠. 이는 단순히 맛을 즐기기보다는 매운맛을 통해 스스로를 시험하고, 자극적인 쾌감을 얻으려는 심리와 연결됩니다.


매운맛과 쾌락의 심리학

매운맛을 찾는 심리에는 자학하며 쾌락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매운맛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이겨낸 뒤 찾아오는 개운함과 짜릿함은 정말 중독적이죠. 매운 라면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땀이 쭉 빠지면서 스트레스도 같이 날아가는 것 같잖아요. 이건 마치 '조금 힘들지만 참을 수 있는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는 거랑 비슷해요.


그런데 가끔은 이 매운 자극이 점점 더 세져서, 어느새 위염이나 속 쓰림을 달고 사는 경우도 있죠. 매운 치킨에 매운 소스를 팍팍 뿌려서 먹거나 매운 닭발과 소주를 마시고 다음 날 화장실에서 후회하는 그런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지 않나요? 이게 심해지면 몸에 이상 신호가 오는데, 그때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먹었지?' 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앞서 말했듯, 태국이나 멕시코처럼 매운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들도 있어요. 거긴 매운맛이 진짜 강렬하지만, 주로 풍미를 살리고 음식 자체를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쓰여요. 매운맛을 즐기지만, 그걸로 위장이 탈 나거나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는 드물죠.


그런데 한국은 조금 달라요. 우리는 '매운맛을 이겨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아요. 청양고추로도 부족해서 핵불닭소스 같이 더 자극적인 매운맛을 찾아 헤매기도 하죠. 이건 단순히 맛을 즐기는 걸 넘어서, 마치 "내가 이걸 참아냈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시험하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이게 반복되다 보면 결국 속이 상하고, 심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해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매운 걸 먹다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부르는 악순환이 생기는 거죠. 내 몸이 "이건 즐기는 정도를 넘었다고!"라고 마음에 신호를 주는 거예요.

'매운' 고통을 즐겁지만, 매운 '고통'은 조심.

한국인에게 매운맛은 스트레스를 푸는 비장의 무기입니다. 매운 음식을 한 입 베어 물면, 짜릿한 자극이 온몸을 휘감고 잠시나마 모든 잡념이 사라지죠.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속이 뻥 뚫리는 그 기분! 매운맛은 짧지만 강렬한 자극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느새 매운맛은 한국인의 고유한 문화가 되었고, 이제는 전 세계가 ‘K-매운맛’에 빠져들고 있어요.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핫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겠죠.


매운 음식은 누군가와 친해지는 경험을 주기도 해요. 친구들과 “오늘 스트레스 풀러 매운 거 먹자!”라고 외치며 마라탕집으로 향하는 모습, 낯설지 않잖아요. 그렇게 함께 매운맛에 눈물 콧물 쏟으면서도 웃고 떠드는 시간은 묘하게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고통도 나누면 반이 되고, 매운맛은 유대감을 쌓는 작은 이벤트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매운맛이 날 아프게 하면 그때는 조심해야 해요. “이 정도 매운 건 껌이지!”라며 계속해서 매운맛 레벨을 높이다 보면, 속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속 쓰림, 위장 장애… 매운맛이 나를 위로하는 대신, 오히려 내 몸에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찾아올 수 있죠.


이쯤에서 잠깐 멈춰서 생각해봐야 해요. 그냥 매콤한 맛을 즐기는 게 아니라, 뭔가를 잊기 위해 혹은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무리하게 매운 음식을 먹고 있다면, 그건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어요.


요즘 10대들이 마라탕에 열광하는 이유도 단순히 ‘색다르게 매운맛’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마라탕의 얼얼하고 강렬한 자극이 유일하게 나를 확 깨우는 순간일 수 있거든요. 마치 성인이 “오늘 너무 힘드니까 닭발에 한 잔 하고 잊어야겠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매운맛은 잠시 스트레스를 잊게 해 주지만, 진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죠. 매운맛을 통해 느끼는 쾌감이 감정의 해방구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게 고통을 덮는 방식으로 변한다면, 몸은 결국 마음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이제 그만 좀 해!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


매운맛이 주는 자극과 고통을 적당히 즐기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그 매움이 나를 아프게 한다면, 속 쓰림을 달래는 위염약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매운 걸 찾게 되었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고, 무슨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죠.


매운맛은 즐기되, 그 맛 뒤에 숨겨진 마음까지 살펴봅시다. 어쩌면 그 작은 뒤돌아봄이, 속보다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이미지 출처: chatGPT


BMC Neurology. (2007). Capsaicin activates the TRPV1 receptor: Understanding pain and developing analgesics. BMC Neurology. https://bmcneurol.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1471-2377-7-11


Herstel Health. (2024). Impact of spicy food on mental health and emotional well-being. Herstel Health. https://herstelhealth.com/2024/09/impact-of-spicy-food-on-mental-health


Neurolaunch. (n.d.). The role of spicy food in stimulating dopamine and enhancing mood. Neurolaunch. https://neurolaunch.com/eating-spicy-food


한경 사이언스. (2023). 매운맛은 미각 아닌 온도·통증이 혼합된 감각.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23120830471


시사저널. (2022). 스트레스 해소엔 매운 음식?…실제 효과는.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1301


헬스조선. (2023). 매운 음식 지나치게 먹으면, '암' 위험도.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5/26/20230526019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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