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J의 시선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2017년 작 [남한산성]은 "영상 예술"로서의 영화가 지닌 힘과 가능성에 대한 큰 경탄과 전율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다. 지금까지 이 공간에서 다룬 대다수 영화들에 비해 '최신작'에 속하기는 하지만, 몇십 년의 시간을 거쳐 검증된 명화들 못지않게 한국 영화사에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기며 "이미 고전"(instant classic)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개인적) 확신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서슴없이, 그러나 담담하게 풀어낸 이 영화 안에서 전쟁이라는 요소가 특별하게 부각되지는 않으며, 전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실제 전투 장면은 그다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 특히 외세의 침략과 압박이라는 -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 군상과 체제의 붕괴를 탐구하는 ‘철학적 고찰’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한 작품인 듯도 하다.
영화 속 서사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대립 구도를 통해 펼쳐진다. 최명길이 나라를 구하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수치를 감수하고라도 항복할 것을 청하는 주화파의 대표적 인물이라면,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느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척화파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이들 둘의 상반된 신념은 영화 시작부터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더 큰 혼란과 희생을 막기 위해 청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최명길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박해일)에게 청나라와 대화의 통로를 열어 둘 것을 읍소한다. 비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임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목을 잘라 세자가 청으로 들고 가게 하도록 청할 만큼 진심 어린 충정을 보이는 그가, 청의 요구(세자를 볼모 삼겠다는)에 기겁한 왕의 비위만 맞추려는 다른 대신들이나 한심한 이기주의자로 그려지는 영의정 "김류"처럼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항복을 논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뒤늦게 산성으로 들어와 최명길의 의견에 반대하며 끝까지 싸우자고 외치는 김상헌 역시 진정한 충신이라는 것으로, 군신 관계에 있는 명나라를 저버리고 ‘오랑캐’에게 고개를 숙여 대의와 명분을 잃는다면 나라와 종사가 어떻게 되겠냐는 그의 호소도 진실한 충성심 때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적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과 달리, 두 신하가 내놓은 상반된 - 그러나 충분히 납득 가능한 - 의견들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는 인조가 이도 저도 결정을 못하고 머뭇대는 사이, 산성 안의 상황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급격히 악화되어만 간다. 각자의 위치에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런 노력은 다른 대신들의 무능과 이기심, 그리고 이미 청나라에 유리해진 상황의 현실적 벽 앞에서 가로막히며 무산된다.
앞서 말했듯 ‘액션’은 많지 않고 인물간의 대화가 주된 갈등 요소인 작품인지라 지루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볼거리가 무척 풍부하다고 느끼게 된다. 2시간 2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임에도 불필요한 장면이 거의 없다고 기억될 만큼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시각적 연출로 간결하게 전하는 방식도 매우 뛰어나고 말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이 각각 관객에게 소개되는 방식을 그런 판단의 대표적 근거로 들 수 있는데, 인조의 명을 받고 청나라 장군과 대화하기 위해 그들의 기지로 찾아간 최명길은 "겁을 주기" 위해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 대는 청의 횡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탄 말조차 전혀 놀라지 않는 모습(발 바로 앞에 화살이 박히는데도)에서 그의 침착함과 담대함이 어떠한 강인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암시된다. 말하자면 그는 ‘옳음’을 추구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죽는’ 것도 불사하는 사람인 것이다. 한편 왕의 피난 길을 따라 뒤늦게 산성으로 향하면서 앞서 인조의 행렬을 인도했다는 늙은 뱃사공의 안내를 받던 김상헌은, 그와 손녀의 안전을 보장할 테니 함께 산성으로 가자는 자신의 설득을 노인이 끝내 거절하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를 칼로 벤다. 천민에게도 공손히 대하며 은혜 갚는 것을 중히 여기는 듯 보이다가도 뒤따르는 청나라 군사들에게 길을 인도하지 못하도록 손을 쓰는 모습에서 김상헌이 ‘옳음’, 혹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죽이는’ 일도 감행하는 사람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최명길의 희생이 '자신'을 향해 있다면(간신이나 역적 취급을 받더라도 나라의 안위를 우선시하면서) 김상헌이 추구하는 희생은 대부분 타인을 향해 있다는(산성을 지키는 군병들과 백성들에게 계속된 항전을 요구하는 식으로) 커다란 차이점이 이 장면들을 통해 예시된다.
작품의 큰 틀을 이루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을 카메라 앵글, 인물들의 위치적 구도를 이용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연출도 상당히 효과적이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반대되는 의견을 펼치는 장면의 연출 방식이 특히 흥미로운데, 이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때도 둘의 모습이 한꺼번에 정면에서 잡히는 투샷은 거의 없다. 둘이 팽팽하게 맞서는 동안 카메라는 측면의 앵글에서 한 사람을 부각시키며 상대는 흐릿하게 나오도록 연출하고, 각 사람을 앵글 안에 잡을 때에도 최명길은 화면의 왼쪽에, 김상헌은 화면의 오른쪽에 치우쳐 있게 배치하는 식으로 양극단에 위치한 둘의 신념을 표현해 낸다. 그 외에도 한 명은 방 안에, 다른 한 명은 방 밖에 위치해 있는 등의 구도를 통해 둘의 시선이 직각으로 엇갈리게 연출함으로써 의견을 같이하지(“see eye to eye”) 못하는 그들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둘의 ‘대립’ 구도를 ‘옳은’ 자와 ‘그른’ 자로, 또는 ‘선’과 ‘악’이 나뉘는 대결 구도로 보기는 어렵다. 병자호란의 역사적 결말을 알고 있는 – 또한 법률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세상을 살고 있는 – 우리로서는 김상헌이 켸켸묵은 전통이나 관습, 사대부의 명예 등을 고집하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념을 위해 목숨마저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며, 김상헌이 아무 대책 없이 항복하느니 죽자고 외치는 것 또한 아니다. "싸움으로 맞서자"는 자신의 주장에 책임을 지고자 그는 산성의 군병들이 제대로 전쟁에 임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형편을 살피고, 성 밖 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격서를 전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는다. 나라의 명운이 위태로워진 상황에도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다른 대신들과 달리, 그는 대장장이 "서날쇠"(고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천민인 그의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겉으로는 전혀 상반된 관점을 지닌 듯한 최명길과 김상헌에게 생각보다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는 셈인데,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결국 이 둘 모두가 나라와 백성을, 어떤 ‘대의’를 지키고자 애쓰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실제로 항복을 논하며 왕을 욕보이는 최명길을 죽여 마땅하다는 대신들의 아우성에 가장 먼저 나서 그를 두둔한 사람이 김상헌이고, 굶어 죽는 군마들의 먹이로 쓰기 위해 군병들의 추위를 막던 가마니를 도로 회수하자는 제안에 김상헌이 반대했을 때 그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는 사람이 최명길임도 눈에 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장면들에서 그 두 사람이 상대를 ‘돕는’ 역할로써 상대방의 뒷쪽에 위치하는(back up) 구도를 갖는다는 사실인데, 이때 둘은 서로가 서로를 뒤에서 ‘받쳐 주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할 뿐 아니라 계속 시선이 엇갈리던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각도를 구성하기도 한다.
영화의 이런 다양한 연출 방식이 보여 주듯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은 무척이나 오묘하고 깊은 관계성을 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실상 같은 철학과 지향점을 가졌다고 해야 할 그들 사이의 비극은, 최명길이 생각하는 ‘삶’과 김상헌이 생각하는 ‘삶’의 개념이 완전히 다른 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최명길은 초라하고 비루하게라도 "살아남아야만"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상헌은 "명예가 실종된 삶"이란 죽음과 다름없다는, 다시 말해 목숨을 포기하더라도 신념과 대의를 잃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은 '같은' 목적을 가진 실용주의자(pragmatist)와 이상주의자(idealist) 간의 반목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처음 관람했을 때는 '같은 대의’를 품고서도 '다른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두 충신의 비극, 그리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는 측면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약간 다른 쪽으로 생각이 진전되었다. 언뜻 보기엔 김상헌이 인간의 목숨보다 대의, 즉 ‘이상’을 더 중요시하고, 최명길은 그 반대로 대의와 명분 같은 ‘이상’보다 인간의(더 정확히는 백성의) 목숨과 안위를 더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 속에서 ‘실질적’으로 백성들의 안위에 보다 밀접히 관여하는 사람은 김상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였다. 그는 대장장이 서날쇠의 건의를 듣고는 군병들을 위해 가마니를 나눠 주거나 무기 고치는 일을 도와주고, 자신이 죽인 뱃사공의 손녀 "나루"가 산성으로 들어온 후엔 아이를 거두어 - 물론 왕의 명령을 따른 것이긴 하지만 - 돌보아 준다. 최명길과 달리 ‘천민’들과 직접 대화하고 교감하는 그의 모습을 영화 안에서 종종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설정들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청과 맞서 싸우자는 김상헌의 주장이 ‘실패’로 끝난다고 해서 - 인조가 항복을 선택함으로써 - 그가 대의와 명분 같은 이상을 고집하다가 결국 청나라 군의 압도적 무력에 제압된 현실을 그의 패배의 실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가 경험했던 ‘패배’의 본질은 자신이 진심으로 믿어 온 신념과 정의, 행해 온 모든 노력들이 도리어 백성을, 나아가 국가를 해치고 있었음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 말이다. 물론 그는 명나라에 대한 군신의 예를 저버리지 않고 ‘오랑캐’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이 조선의 근간을 이루는 대의이자 명분이라 믿었고, 다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대의를 오염시키거나 타협하지 않는 것이 나라와 백성 또한 지키는 일이라고 확신했겠지만,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는 굳건한 듯 보였던 사회적 구조와 체계가 전쟁의 혼란 가운데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결국은 직접 목도하게 된다.
"맞서 싸우기" 위해 군병들을 살릴 수 있는 가마니를 나눠 주었던 김상헌은, 군의 ‘위엄’에는 군마가 중요하다는 영의정의 주장에 따라 군병들에게서 가마니를 빼앗고 산성 안 주민들의 초가집에서 지붕과 땔감을 착취하는 만행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지원군을 불러오고자 서날쇠에게 격서를 맡기지만 이를 받은 무관들은 천민이 가져온 격서를 어찌 믿냐며 의심부터 보이고, 심지어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 대의와 명분을 ‘없애’ 버리려고 - 아군인 서날쇠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조명되는 역관 "정명수"(조선 사람이지만 청나라의 편에 서게 된) 역시 노비로 살던 조선에서의 삶이 지긋지긋해 나라를 등진 인물로, 김상헌이 지켜 내려고 노력했던 ‘조선’의 실체, 즉 낮은 지위의 백성들에 대한 억압에 기반을 둔 체제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직접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영화의 후반부, 인조의 항복을 재촉하기 위해 청의 군사들이 산성에 포탄을 날리자 김상헌이 어린 나루를 찾아 품에 안고 보호하는 장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김상헌의 실패는 잘못된 외교적, 정치적 판단으로 청나라에 대적했던 일이 아니라, 그간 백성들에게 포탄 더미만큼이나 해로운 사상과 체제를 강요하고 종용해 왔던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처럼 느껴져서였다. 결국 김상헌의 잘못은 ‘이상’을 쫓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해롭고 옳지 않은 ‘이상’을 따랐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실제로도 그는 항복이 결정되자 충성과 명예를 부르짖던 예전과 달리, 왕도, 그리고 자기 같은 사람도 없는 것이 백성을 살리는 길이라는 의미 깊은 말을 남긴다.
그런 김상헌은 어린 나루를 서날쇠에게 맡긴 뒤 그에게 예를 갖춰 절을 한다. 이 장면에서 그는 ‘천한’ 상대에게, 그러니까 ‘윗분’들의 위엄과 대의적 명분이라는 구실 아래에서 죽어 나가며 희생을 강요 당했던 이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자신이 뱃사공을 베었던 그 검으로 자결하는 김상헌의 마지막은, 그가 스스로의 대의(차별과 억압에 기반을 둔 사상과 체제)를 한 인간의 목숨이나 존엄보다 중요시했던 어리석음에 대한 속죄 행위로도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면에서 최명길의 마지막 또한 씁쓸한 인상으로 남는데, 진심으로 백성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목숨을 구하려 했던 그가 오히려 "왕이 살아야 나라도, 백성도 산다"는 사상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청나라의 칸에게 절하는 인조를 바라보던 최명길이 결국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 언제나 감정을 억누르며 모든 것이 송구하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고 사는 중에도 현실만은 똑바로 직시해 온 그가 자신의 ‘주군’인 왕이, 또 왕이 대표하는 조선의 모든 사상과 체계가 무너지는 현장을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오열하는 모습은 그렇기에 더욱 복잡한 의미로 다가온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영화 속에서는 ‘승리’한 셈이지만, 기어코 왕을 살려 다시 수도로 돌아온 최명길의 지친 표정에서는 자신이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허무감이 읽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영화는 김상헌의 죽음이나 최명길의 회의로 마무리되는 대신, 전체 내용 중 유일하게 따뜻하고 평안한 순간으로 그 끝을 맺는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나루가 김상헌에게 들려 주었듯, 민들레가 피고 얼었던 강이 녹아 싱싱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봄이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윗분들의 사정이야 어떻든, 어느 나라의 황제를 섬기는 상황이 되었든, 다시 봄을 맞아 민들레 피는 것을 보고 씨를 뿌려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일상을 백성들이 되찾는 마지막 장면은 진정한 ‘대의’가 무엇인지를 혼동한 자들에 대한 책망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창조주의 피조물이라면 누구나 봄이 되어 꽃이 피는 것을 보고 가을에는 노력의 결실을 즐기며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그 당연하고 단순하면서도 쉽게 손에 닿지 않는 목표야말로 진정한 정의이자 대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땅에 천국이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근본적인 지향점도, 세상을 뒤덮은 모든 불평등과 부당함, 억압과 차별에 맞서야 하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의 근원이 되는 소망은 언제나 변함없기를 바란다. 다시 올 봄을 모두가 함께 맞을 수 있기를 꿈꾸는 그 마음 말이다.
엄마 C의 시선
2017년 개봉되었던 “남한산성”은 인조 재위 14년인 1636년 겨울 발발한 쓰리고 아픈 실제 역사 “병자호란”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작가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도가니(2011년),” “수상한 그녀(2014년)”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 지금은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 감독 황동혁이 연출한 이 작품은, 병자년인 1636년 12월 14일부터 다음 해(1637년) 1월 30일까지의 47일 동안 청나라의 공격을 피해 올라간 남한산성에서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된 조선 조정(朝廷)의 절박한 상황을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의 논쟁을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진격해 온 청나라 대군에 쫓겨 미처 강화도까지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한 무력한 왕 인조를 향해, 나라와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순간의 치욕을 참고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화파(主和派) 최명길과, 그런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며 결사항쟁을 고집하는 척화파(斥和派) 김상헌 사이에 계속되던 대립을 중심으로, 그 같은 갈등과 이견들 속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번민하는 인조의 우유부단함 역시 소재로 삼고 있는 이 영화는, 그 긴박하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 훌륭한 역사물입니다.
전체 병사의 수가 13,000명에 불과하여 그보다 10배 가량의 병력을 지닌 청나라 군에 숫적으로 큰 열세인 데다가, 주변 민가에서 수탈한 곡식과 고기들로 배를 불리며 사기를 올리는 청군과 달리 춥고 눈 많던 겨울 동안 고립된 성 안에서 식량과 난방 자원의 수급이 불가능했던 조선은, 여러 당면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한 중신(重臣)들 간의 의견까지 매번 충돌하면서 – 더욱이 문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그들의 무책임으로 인해 – 내부로부터 붕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외부의 적인 청의 군대가 숫적으로나 여건상으로 위압적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남한산성에 모여 있던 조선의 군병과 백성들에게 더욱 큰 위협으로 작용한 요소는 오히려 명확한 판단을 보류하며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유약한 왕과 지략도 능력도 갖추지 못한 어리석고 무능한 관료들이었습니다.
식량의 비축분에 대해 논의하던 중 “아껴 먹으면 한 달 가량은 버틸 수 있다”는 보고를 듣자 “아껴서 오래 먹이되, 너무 아끼지는 말아라”고 답하던 인조의 ‘해결책’은, 예전 군부대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명’하곤 했다는, 돈 1000원으로 이것저것 잔뜩 사고도 500원을 남겨서 오라는 식의 씁쓸한 농담을 떠올리게 하는 명령입니다. 말들이 굶어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동상에 걸린 병사들을 위해 나눠 주었던 가마니를 다시 거둬들여 말의 먹이로 쓰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을 때, “군마 없이도 전쟁은 치룰 수 있지만 군병들 없는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 예판 김상헌의 직언과, “나눠 주기는 쉽지만 도로 빼앗기는 쉽지 않다”면서 “말은 짐승이라 마음을 다치지 않으나 군병은 사람인지라 마음을 다칠까 염려된다”라고 전한 이판 최명길의 혜언이 동일했음에도, 다른 신하들의 주장대로 결국 빼앗은 가마니를 썰어 말들의 먹이로 썼다가, 곧 군병들의 식량이 고갈되며 아사가 우려되니 이번에는 말을 잡아 그 고기를 병사들에게 먹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대표한다고 할 ‘근시안’의 극치를 목격한다는 느낌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문책이 예상되자 주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움직임도 없는 적에게 먼저 싸움을 걸자고 제의했던 영의정 “김류”는, 바람이 심하고 적진의 동향도 알 수 없어 척후병의 탐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건의했던, 또한 전세가 기울었을 때 속히 병력을 퇴각시킬 것을 간곡히 요청했던 수어사 “이시백”의 말을 무시한 채 그날이 무당에게 물어 택일한 ‘길일’이라며 공격을 강행하더니, 수세에 몰린 시점에도 모든 병력을 투입해 전멸시킬 뻔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는 모든 책임이 수어사에게 있으니 그를 참수해야 한다고 모함까지 합니다. 물론 전체 내용 중 원작이나 실제 역사와 다르게 각색된 부분이 있고 고증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여러 상황에 비추어 당시의 조선이 청의 공격이라는 외부적 요인보다 안으로부터의 분열과 갈등 때문에 먼저 무너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처럼 ‘불필요’했던 패전으로 다른 방도가 없어진 후, 성 아래 흩어져 있는 병사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격서의 전달 임무(위험하기 짝이 없는)를 대장장이인 자신에게 맡기던 김상헌이 “나라를 구하는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라는 억지스런 명분을 덧붙이자, 그 말을 들은 천민 “서날쇠”는 “먹고 살며 때리고 가두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다”는 가시 돋친 답을 건넵니다. 청나라의 역관이 되어 조선 아닌 청의 유익만을 위해 일하던 “정명수”를 만났을 때, 같은 조선 사람으로 어찌 그런 태도를 취하느냐고 영의정 김류가 나무라자, 자신은 부모가 노비라 태어날 때부터 노비였다며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도 아니니 다시는 나를 조선 사람이라 부르지 말라”라고 그가 일갈하는 부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인도의 카스트(Caste) 제도 못지않은 뚜렷한 계층 구분을 하며 ‘몸’을 써서 일하는 평민들을 한없이 천시하던 소위 양반, 사대부들이 – 사실상 자신들도 그들이 제공하는 노동력에 기대어 생활하면서 – 막상 다급한 상황이 생기거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이 발생하면 그토록 천시하던 이들에게 ‘애국’과 ‘충절’을 강요하는 모습은, 평상시의 이권은 자신들이 다 차지하고 누리다가 나라 경제와 사회 상황이 어려워지면 서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부르짖는 오늘날 기득권층의 모습과 판박이라 부를 만합니다.
결국 김상헌과 최명길로 대변되는 그들 사이의 갈등은, 차라리 죽음을 택할 망정 ‘오랑캐’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명분론”과, 그러한 대의와 명분도 살아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며 비록 비굴한 역사로 후대에 남을지라도 산성 안에 있는 백성과 군병들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론”의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고 하는, 즉 목숨을 버리더라도 명분을 고수하여 명예를 지킬 것인가, 육체의 목숨은 지키되 오랑캐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치욕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이 같은 논의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必生則死 必死則生)”라던 –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그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 목숨을 얻을 것이다; 우리말성경 (He who finds his life will lose it, and he who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NKJV)”라는 마태복음 10장 39절의 말씀도 연상케 하는 – 이순신 장군의 명언에 대입시킨다면 당연히 전자인 “명분론”이 옳다고 해야겠지만, 자기 한 사람 목숨 때문에 비굴하게 무릎 꿇는 일이 아니라 본인들의 뜻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왕과 대신들의 결정으로 운명이 좌우되는 수많은 민초들을 위해 비난을 무릅쓰고 화친을 도모하려는 노력이라면(최명길도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부터 내놓겠다고 말했던 바와 같이) 그처럼 쉽고 간단하게 평가절하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청과의 화친을 주장한다 하여 적과 내통한, 참수해야 할 역적이라고 주위에서 퍼붓는 비난과 오해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꿋꿋이 직언을 이어 가는 이조판서 최명길의 자세는, 유다의 패망을 예언하며 적들에게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흔들림 없이 전하던 선지자 예레미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롭다’는 칭송을 받을 만한 일은 어쩌면 결단하기에 훨씬 쉬운 면이 있겠지만, 모두의 비난을 살 수 있는 일의 결행에 있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데에서부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조언을 무시함으로써 더욱 굴욕적 형태로 바벨론에 굴복해야 했던 것(왕하 25, 대하 36:15-20; 렘 52)과 같이, 조선도 최명길이 애초 경고했던 것처럼 결국은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의식을 통과하며 청으로부터 왕과 백성의 목숨을 ‘허락’ 받게 되었지요. 진정한 용기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동시에, 스스로 믿는 지혜와 지략도, 남들 앞에서 내세우는 어떤 대의나 명분도, 본래 지닌 태생적 한계라는 제약 앞에서 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 해 주었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