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라, 아직 떠나지 않은 건가요?"
한인들의 고단한 생의 활기가 넘실거리는 블루어와 크리스티 전철역 (Bloor St & Christie) 거리, 그 낯익은 소음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쫓아오고 있었다. 뒤돌아본 그곳엔 이미 한국의 어느 시간 속으로 영영 침몰했을 거라 믿었던 그녀, 샌드라가 서 있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건강하지 못한 기별이 강을 건너듯 도착했고, 그녀는 지인의 손을 빌려 구한 편도 비행기 표 한 장을 쥔 채 서둘러 객지를 떠났다. 나는 그녀가 이 낯선 북미의 땅에서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유배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사건이 종료된 뒤에야 해안의 쓰레기처럼 뒤늦게 밀려오는 법이었다. 내가 캐나다에 처음 발을 붙였을 때 머물렀던 집주인 노인이 권해서 마지못해 참석했던 예배, 그곳의 담임 목사가 사실은 그녀의
외삼촌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녀가 떠나고 난 뒤에야 성삼 집사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다.
세상은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치밀하고 촘촘한 그물망으로 짜여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황망히 떠난 자리에는 주인을 잃은 공기만이 부유했다. 나는 문득 그녀의 귀국이 단순히 부모님의 병환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그 그물망의 저편에서, 그녀의 부모가 서둘러 준비해 둔 ‘결혼’이라는 이름의 다른 생이 그녀를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의 비밀은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하고, 나는 그 텅 빈 여백 위에서 뒤늦게 그녀의 뒷모습을 복기하고 있었다.
변덕스러운 토론토의 사월 날씨를 증명하듯 그녀는 하얀 가디건으로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입술에선 투명한 봄의 냉기가 흩어졌다. 그녀는 취업을 하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엄마의 위독함보다, 비행기 표 한 장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던 우리들의 비루한 경제적 실체보다, 나는 그녀가 아직 한국 약혼자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릿한 기쁨을 느꼈다. 영어를 배우겠다는 핑계로 시작된 만남은 지남철의 극과 극처럼 서로를 지독하게 끌어당겼고, 그 인력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생의 중력이 되어
있었다. 일 년 전, 그녀의 등 뒤로 아스라이 떠오르던 한국의 약혼자라는 존재는 내게 지우기 힘든 얼룩 같은 것이었다. 언어의 문턱을 넘는다는 구실로 이어온 우리의 만남이 사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가교(架橋)였는지. 그 끝내 어긋난 인연을 끊어내려 이별을 고했을 때, 그녀의 눈동자에 고인 눈물은 내 생의 지도를 단숨에 적셔버렸다. 이제 더는 그 감정의 배후에 나를 숨기고 싶지 않다. 이미 엎질러진 운명이라 해도, 나는 그녀라는 생의 지류(支流)에 기꺼이 합류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마주 앉았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 동안, 나는 그녀의 긴 생머리와 화장기 없는 얼굴을 응시했다. 내가 천천히 손을 내밀자 그녀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대답처럼 자신의 손을 내게 뻗어 왔다. 서로의 손바닥이 맞닿는 순간, 첫사랑 이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온기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이 손을 결코 놓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눈물처럼 차올랐다.
문득, 주희의 얼굴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늘 막무가내의 고집으로 내 삶을 규정하려 했다. '불편해서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다'던 그녀의 서늘한 선언들. 나는 다투지 않는 대신 명절이면 홀로 고향을 향했고, 내뱉지 못한 숨들은 턱끝에 걸려 화석처럼 굳어갔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남자 신데렐라'라며 부러움 섞인 야유를 보냈다. 친구 상혁이 내뱉던 처가 밑에서 사업체나 하나 얻어라던 술주정은 매일 밤 내 영혼의 밑바닥을 긁어댔다.
물질의 풍요가 안겨준 안온함 뒤에서 나의 분노와 외로움은 괴물처럼 자라났다. 부모조차 외면했던 나의 비좁은 자존감이 마침내 단 하나의 단어를 찾아내었을 때,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혼하자."
그것은 붙들고 있던 모든 허상을 내려놓는 일이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해 던지는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이제 내 앞엔 화려한 신디케이트의 풍요 대신, 사월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하얀 가디건을 걸친 한 여자가 앉아 있다. 우리가 마주 잡은 이 가느다란 손이야말로, 내가 도망쳐 온 모든 지옥의 끝에서 만난 유일한 실존이었다.
샌드라는 새우처럼 굽은 내 등에 자신의 팔을 가만히 얹었다. 잠든 모양이 꼭 아이 같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몸을 더 둥글게 말았다. 아이들이 어떤 형상으로 잠을 청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너무 깊이 사랑하면 신이 그 사이를 질투해 끝내 갈라놓고 만다는 해묵은 전설 같은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을 뿐이다. 그녀는 낮게 웃었지만, 그 웃음소리는 어둠 속에서 파동도 없이 금세 흩어졌다.
여름의 편의점은 늘 비릿한 긴장으로 가득했다. 새벽의 도심을 부유하며 화장실을 구걸하는 노숙자들의 눈빛이나, 차이나타운 인근에서 들려오는 강도 사건의 흉흉한 소문들. 새벽 근무자인 토니는 그 황량한 시간을 베테랑답게 지켜내고 있었다. 60을 바라보는 그는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워낸 사내였다. 최근 새 연인을 만난 그는 은퇴 후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꿈꾸고 있었다. 70년대의 가난을 피해 건너온 노병(老兵)에게 이곳은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낙원이었을지 모르나, 이제 그는 다시 그 가난했던 시원의 땅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요."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식탁으로 이끈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푸른 줄무늬와 꽃잎이 수놓아진 그녀의 짧은 옷차림은 아침과 다를 바 없었으나, 그녀를 둘러싼 공기는 이미 다른 계절로 넘어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꺼낼 말이 혹여 한국에서 날아온 불길한 전언일까 싶어 귀를 막고 싶었다. 며칠 전 함께 샀던 유리컵 속의 물이 미지근하게 출렁였다. 갈증 때문이 아니라, 닥쳐올 침묵을 견디기 위해 나는 물을 들이켰다.
“엄마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 순간, 내 귀는 먹먹한 수중으로 잠겨버렸다. 그녀의 입술은 움직였으나 소리는 닿지 않았다. 오지 말아야 할 날이 기어이 당도했음을 직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은 채 맑은 슬픔으로 차올랐다. 그 눈물이 너무 투명해 오히려 잔인해 보였다. 엄마가 쓰러졌다는 이모의 연락. 그녀의 떨리는 손등 위로 전해지는 감정의 파고가 내 가슴팍에 깊숙이 박혔다. 캐나다로 돌아가겠다며 한국의 약혼자와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건너온 그녀였지만, 그녀의 심장 한쪽은 늘 한국이라는 뻘밭에 묶여 있었을 것이다. '같이 살자'며 울먹이던 제 어미의 심정을 그녀인들 왜 몰랐을까.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내뱉는 문장마다 심장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그녀는 끝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진 바람의 결을 간신히 버텨내며 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퇴색하고 왜소한 낙엽 하나가 거기 있었다. 한국에 약혼자를 두고 떠나온 그녀는 가족들의 비난을 홀로 감내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로 저녁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내 곁에서 떠나버리라고 모진 말을 내뱉고 싶었으나,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은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입을 닫음으로써 나에게 가장 아픈 문장을 남겼다.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베네타가 곁에서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으나, 이미 내 안색에는 숨길 수 없는 근심의 무늬가 번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혹시 자기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며 짐짓 농담을 던지고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웃음은 수면 위로 잠시 솟구쳤다 사라지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가볍고도 서글펐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 안에는 낯설고 서늘한 기류가 고여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마땅히 들려와야 할 인기척 대신, 굳어버린 침묵이 나를 맞이했다. 샌드라는 보이지 않았다. 불을 켜자 그녀가 머물던 자리에는 온기 대신 토론토 이튼센터에서 구입한 자동응답기의 붉은 등이 등대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부재를 알리는 고독한 신호였다.
“오빠…… 저 공항이에요… 한국 나가요. 미안해요,.. 이렇게 떠나서.”
테이프 속에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전해진 그녀의 떨리는 음성들이 고여 있었다. 차마 추스르지 못한 감정들이 울음 섞인 비말이 되어 수화기 너머로 흩어졌다. 가슴 한구석에 늘 예감처럼 품고 살았던 이별의 통보가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손끝이 떨려왔고, 혈관 속의 피가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탈진감이 몰려왔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
샌드라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아니, 그것은 차분함이라기보다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짓누르고 있을 때 발생하는 기이한 정적에 가까웠다.
“내가 갈게. 지금 갈게.”
그녀를 지금 붙잡지 못한다면 이 생(生)의 인연은 영영 어긋난 버릴 것이라는 예감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수화기를 쥔 손목 위로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살을 파고들었다.
“아니요, 오빠. 잘 지내세요.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예요.”
“아냐, 내가 지금 공항으로 갈게.”
“저…… 혼자가 아니에요.”
그녀는 무언가 말을 보태려는 듯 숨을 골랐다. 그 짧은 침묵 사이로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의 잔해들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꼭 다문 입술이 열리고 그녀는 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생의 마지막 비밀을 털어놓듯 나직이
읊조렸다.
“정성혜예요. 내 한국이름은.”
이국적인 가명 뒤에 숨겨두었던 그녀의 실명이 비로소 내 거처에 도착했다. 그것은 작별의 선언이자, 비로소 우리가 타인이 아니게 되었다는 서글픈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