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야, 승원 씨!”
입국 수속의 번잡함을 뚫고 공항 밖으로 나서자, 익숙했던 한글 간판들은 자취를 감추고 발음조차 껄끄러운 영어의 행렬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뇌는 쉴 새 없이 그 낯선 기호들을 모국어로 번역해 내느라 과열되고 있었다. 약속된 장소에 다다랐을 때,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성진 선배가 손을 흔들며 나를 불러 세웠다. 턱을 가득 덮은 수염 때문인지, 그는 한국에서의 시간보다 한결 자유로워 보였다.
“배고프지? 한인촌에 가서 한식부터 먹자고. 이제 지겹도록 서양식을 먹게 될 테니까.”
낡고 해진 건물들이 어깨를 맞댄 채 한글 간판을 내걸고 있는 풍경은 흡사 유배지에서 형성된 작은 섬 같았다. 선배는 한인들이 직접 만든 브랜드라며 커피와 도넛을 파는 가게로 나를 이끌었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여주인이 평일 오후의 한산한 정적을 깨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 거리 한구석에는 행인들에게 손을 내미는 걸인의 모습이 보였다. 한국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낯선 생의 풍경이었다.
“주문하신 커피하고 도넛 나왔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에 놓였다. 도넛을 베어 무는 성진 선배를 보며 나는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한때 권위주의의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투쟁했던 그 뜨거웠던 청년은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그는 어느새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평범한 경제적 동물로 변모해 있었다.
“선배, 어떻게 지내세요?”
“세상이 참 넓어, 승원아. 우리는 너무 우물 안 올챙이로만 살았지. 이제 그 올챙이가 넓은 바다에 나와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셈이야.”
“앞으로의 계획은 있으신가요?”
“오십을 바라보니 결국 혼자 먹고사는 일이 가장 절박해지더군. 인생 별거 없어. 가족들에게 욕먹지 않을 만큼 경제적 안정을 주고,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궁색하지 않게 살면 그게 장땡이지.” 선배는 쓰디쓴 커피를 삼키며 덧붙였다. “이곳 취업? 쉽지 않아. 한국에서 뭘 배웠든 이쪽 백인 놈들은 관심도 없거든. 다시 시작해야 해. 함께 머리를 맞대보자고.”
가게를 나선 우리는 한인 지역 신문의 광고란을 뒤지며 내가 임시로 기거할 방을 찾았다. 서른여섯 해의 한국 생활을 단 두 개의 가방에 구겨 넣고 온 나를 위해 선배는 기꺼이 짐을 옮겨주었다. 헤어지며 서로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쳤지만,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그날 밤, 멀어지는 선배의 굽은 등은 훗날 내 기억의 서랍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생의 문장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