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

by 수환

“형님, 다알리아는 어느 정도나 들여놓아야 할까요?”

성철이 물었다. 추수감사절 무렵 손님들은 홀린 듯 지갑을 열고 국화류의 화려한 색깔에 만취 되어 집안의 분위기를 살리기에 바쁘다. 새벽 근무를 마친 그가 핏발 선 눈으로 도매상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울 때, 나는 차마 입 안의 말을 뱉지 못했다. 쉬지도 못하고 나서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결국 그 걸음에 동행해야 하는 내 처지가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따뜻한 해국장 한 그릇 사주세요.”

그렇게 웃어 보이는 성철의 얼굴을 마주하면 나는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아저씨, 꽃 덕분에 가게가 훨씬 환해졌어요. 향기도 참 좋고요.”

꽃이란 무릇 시드는 순간 상품의 명을 다하는 법이라, 일주일 내내 싱싱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일은 고된 수행과도 같다.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있는 내게 베네타가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침에 성철이가 고생이 많았어. 일이 늘긴 했지만, 잘 좀 돌봐줘.”


어느덧 나이의 앞자리가 3에서 4로 바뀌었다. 낯선 타국 땅에서 아들이 뿌리 내리는 소식을 듣고서야, 같이 살자며 눈물짓던 어머니도 겨우 마음의 빗장을 푸셨다. 얼마 전 다녀가신 아버지는 전철역 이름인 ‘세인트 조지(St. George)’를 두고 어머니가 박장대소하던 일을 꺼내 놓으셨다.

“그놈의 생조지 소리에 네 에미가 얼마나 웃던지,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구나.”

조지라는 한국식 이름의 어감이 어머니의 명치 끝 어디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 웃음 끝에 매달린 생의 안도감이 토론토의 시린 공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헤이 나의 친구, 승원.”

에이전트 마이크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경쾌했으나, 그것이 전하는 소식은 내게 오히려 생경한 파동으로 다가왔다. 면접을 보았던 회사로부터 합격 통보가 왔다는 것, 그리고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냐는 물음. 예기치 못한 행운은 때로 가벼운 현기증을 동반한다. 나는 가게의 일정을 확인한 뒤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로 짧은 통화를 마쳤다.

낯선 토론토의 도심 한복판, 퇴근 시간이면 거대한 빌딩의 아가리에서 쏟아져 나와 도로를 메우던 정장 차림의 행렬들이 떠올랐다. 그 무채색의 파도 속에서 나는 늘 이방인이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그들의 규격화된 삶은 내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막연했다. 그런데 이제 그 흐름 속에 내 자리가 생겼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나의 취업 소식을 전하자 편의점 식구들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베네타는 흔쾌히 내 공백을 메워주기로 했고, 우리는 두 명의 직원을 새로 채용하기로 했다. 새벽은 성철이 든든한 파수꾼이 되어 지켰고, 베네타는 오전과 오후를 새로운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책임졌다. 나는 퇴근 후 성철이 출근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또 다른 직원과 함께 감당하기로 했다. 몸은 고되었으나, 서로의 어깨를 기댄 채 편의점이라는 작은 배는 순항하고 있었다.


첫 출근 날, 나는 넥타이를 매지 않기로 했다. 너무 과하지 않은 시작을 원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베네타가 선물해 준 하얀 와이셔츠 위로 검은 가디건을 걸치고, 회색 바지에 단정한 검정 구두를 신었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비장해 보였다. 면접 때의 떨림은 잦아들었으나, 낯선 땅 캐나다에서의 첫 행보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안의 어떤 계절이 비로소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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