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류장의 흔적> 7화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녀는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그와 그녀는 손쉽게 묶일 수 있다. 노인만이 가득한 마을에서 눈에 띄는 두 명의 청년들이기에, 더군다나 계속해서 버스에서 마주치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노인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그녀는 그의 표정에서 찾았다. 그는 어떠한 소통도 허락하지 않는 특유의 표정을 항상 짓고 있다. 그 표정 때문에 그녀는 처음에 그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그 표정이 모두에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무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표정에도 불구하고 때로 마을의 할머니가 그에게 말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그 말들을 통해 그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그는 항상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가. 왜 모두와의 소통을 차단하고자 하는가. 그녀는 그에게서 이상한 익숙함을 느꼈다.
그녀는 이 마을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6개월 전까지 이 마을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28살이다. 누군가 그녀에게 물을 때, 그렇게 답한다. 그녀는 직업이 없다. 누군가 물을 때, 그녀는 그렇게 답한다. 이 두 가지 답 뒤에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 그녀는 이 상황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인생 대부분을 타인들이 평범하다 말하는 방식으로 보냈었다. 그것을 넘어 뛰어나다, 잘한다 라는 말 또한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녀는 그 말들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았었다. 타인의 인정에 익숙했고, 집착했고, 중독됐다. 그것은 다시 타인의 시선에 대한 연약함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꿈을 좇은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좋은 딸이었고, 좋은 학생이었고, 좋은 직원이었다. 그것에 그녀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모두가 그녀를 인정하고 칭찬했기에. 이 환경에서 벗어날 생각이 그녀는 추호도 없었다. 꿈을 좇는 사람들은 갈등을 불러왔다. 부끄러움을 불러왔다. 겉에서 보는 타인들은 그 꿈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리석은 믿음과 현명하지만 차가운 판단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갈등이 너무나도 싫었다. 정해진 실패를 마침내 경험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부끄러움을 그녀는 마치 자신이 그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는 것처럼 몰입했다.
진정한 꿈이라는 것은 자신 스스로에게의 가까워짐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한참이나 들여다본 후에야 꿈을 꿀 수 있는 것이고, 그 꿈을 좇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보았다. 외부의 어떠한 것, 영화, 소설, 타인의 삶.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것들에서 인물들이 갈등을, 부끄러움을 겪는 부분에 그녀는 그 무엇보다 집중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녀에게 오답노트와 같은 것이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그녀는 거기서 배웠다. 그런 갈등, 부끄러움이 끝내 가져오는 반전, 카타르시스는 그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주인공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 곁에 있는 주변인물들을 사랑했다. 극 중에서 절대 변화하지 않으며, 어떠한 갈등,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 그저 배경으로 존재하는 이들. 그녀는 그들에게서 삶을 배웠고, 따라 할 행동들을 배웠다. 그렇기에 그녀의 삶은 그들과 닮아갔다. 그녀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딱 주변인물로 존재했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주변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그 삶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어떠한 갈등도 겪지 않았고,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일들도 애초에 만들 수 없는 삶이었다. 동시에 주인공들을 질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고마운 존재였다. 그들이 나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었기에.
그러나 단 하나, 그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자꾸만 주변인물들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소수이고 주변인물들이 다수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의미를 갈구하는 인물들은 점점 많아져만 가는데 그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이들은 더 이상 늘지 않았다. 어떠한 갈등도 겪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그 의미 때문에 자신들끼리 갈등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그 속에서 몇몇의 주변인물들은 스스로에게서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주인공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예외 없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은 갈등을 넘어 부끄러움까지 갖게 되었다. 의미를 갖지도, 받지도 못하는, 남들에게 이상한 위안을 주는 존재들로 떠밀려갔다.
그녀는 그들의 삶, 타인의 삶을 보며 다시 한번 교훈을 얻었다. 해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다시 한번,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그녀에게 다가왔다.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고, 그렇다고 의미를 얻기 위해 다른 주변인물들과 갈등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녀는 거기서 삶을 놓았다. 의미를 놓았다. 어떠한 외부의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갈등과 부끄러움은 절대 없을 것이었다. 의미를 찾는 것보다 갈등, 부끄러움을 겪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는 훨씬 더 중요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서 다시 한 걸음 멀어졌다.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상이 변화하지 않는 삶 속에서 그녀는 자꾸만 자신을 끌어들이려 하는 의미의 유혹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을 따라가면 그녀는 부끄러워진 타인들과 같아질 것이 뻔했다. 무엇보다 그것은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어떠한 것도 생각나지 않도록, 자신의 흔적이 묻어있는 일상을 벗어나기로 했다. 그 흔적들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 멀어짐의 극단을 찾은 끝에 이 마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