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류장의 흔적> 6화
버스 안은 온갖 명절 음식들의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마을의 노인들은 여전한 자신의 주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다들 집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로 인해 버스는 가득 차 있다. 여전히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는 오늘의 그녀가 걱정스럽다. 최근 들어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지고 있었고, 특히 오늘의 세 번째 버스 운행 당시 본 그녀는 그 특유의 밝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었다. 그런 상황에서 버스 안에 여전히 돌고 있는 그녀에 대한 비난은 위태로운 상황의 그녀를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오늘의 정류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위해 버스 안에 가득 찬 마을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그가 방법을 고민하는 사이 그녀의 정류장이 두 개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실수를 하기로 한다. 의도된 실수를. 그녀의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버스에 타지 않는다면 마을 사람들의 멍청한 비난도 듣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마음을 정한 그는 그녀의 정류장을 하나 앞두고 버스의 속력을 점점 올린다. 속도만큼은 이 마을 사람들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완벽하게 어긋나 버린다. 그녀의 정류장 앞, 도로 중앙까지 한 아이가 나와있는 것이다. 그는 급정거를 한다.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의 몸이 앞으로 쏠리고, 몸을 추스른 그들은 버스 밖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자 한다. 자연스레 정류장으로 그들의 시선이 쏠린다. 집중이 쏠린다.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고 만 것이다. 정류장에는 그녀가 있다.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정류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가 있다. 어느 때보다 빛나는 밝음을 뿜어내고 있는 그녀가 있다.
버스 안의 노인들은 정류장에서 자신들의 손주를 발견한다. 자신의 손주는 저 여자와 함께 있으면 안 된다. 생산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나보다도 무능력한 저 여자한테서 나의 손주가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을 때에는 그녀의 무능력함이 나를 돋보이게 해 주었기에 그녀의 행동을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그녀의 무능력함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다. 마을의 노인들은 일제히 버스에서 내리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몇몇 노인들은 말없이 그저 자신의 손주를 이끌고 올뿐이지만, 다른 몇몇 노인들은 그녀에게 직접 비난을 퍼붓는다. 우리 애한테까지 무능력의 영향을 끼칠 것이냐고. 우리 애도 당신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냐고.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그들의 비난을 묵묵히 듣는다. 그녀의 밝음은 순간순간 줄어들고 있다.
그때 아이들이 나선다. 자신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직접적으로 맞선다.
나는 저 누나 같은, 저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니까 뭐라 하지 마.
노인들은 이성의 끈을 놓는다. 아이들의 말이 원래의 의도와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저 여자가 이미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쳐버린 것이다. 비난을 쏟아부어도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는 저 여자의 태도를 바꿔놔야 한다. 노인들은 맹렬하게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의 신체를 직접 건드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런 반항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 노인들의 힘에 그녀의 몸이 흔들리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노인들은 자신의 행동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을 버틸 수가 없다. 자신들이 말을 하면, 어떠한 행동을 하면 상대는 그것을 듣고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 여자한테까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고,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정류장을 건들기로 한다.
정류장 안에 선 노인들은 그 안의 온갖 선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특히나 그 중간에 그려져 있는 정류장의 그림이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놀란 티를 그녀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이 그림들에 훼방을 놓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당장 낙서들을 지울 수 있는 도구가 없다. 도구가 없다면 몸으로 때우면 된다. 그림들에 자신들의 옷소매를 갖다 대고 마구잡이로 비빈다. 그 행동은 효과가 있다. 그들이 비빌수록 그림들이 형체를 잃어가는 것이다. 정류장의 그림들은 엉망이 되어가고 그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장식의 옷들은 그 색들로 물든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다. 저들이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다르다. 그녀가 드디어 반응을 한다. 움직인다. 그녀는 노인들을 막으려 한다. 노인들을 정류장에서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녀의 반응은 노인들을 만족시킨다. 그리고 만족한 노인들은 더더욱 힘을 얻어 정류장을 망가뜨린다. 그들의 옷은 점점 더 이상한 색들로 물들고, 정류장의 그림은 점점 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녀 혼자서는 그들의 광기를 막아낼 수 없다. 이미 이전의 밝음은 모두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만 꼭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다. 여주인공이 절규하고 있는 영화에서 소리만 제거한 것 같은 모습이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막아서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끝내 노인들의 손길이 아이가 그린 정류장 그림에까지 미친다.
“지금 승차하지 않으시면 버스 출발하겠습니다.”
그가 말한다. 그가 노인들을 막아선다. 시동이 꺼지지 않은 버스는 행동에 나서지 않은 단 두 명의 노인만 태운 채 그대로 길 위에 서 있다. 노인들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에 멈칫한다. 그러나 이내 하고 있던 행동으로 돌아간다. 지금 집에 가는 것이 중요한가. 이 젊은 놈에게도 무시를 보여주고 싶다. 이미 한참 전에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게 해 주었던 이 청년에게. 노인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더 속도를 낸다.
“지금 승차하지 않으시면 버스 출발하겠습니다.”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류장에 있는 모두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오직 한 명, 그녀에게만 하는 말이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서만 말을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 둘을 바라본다. 노인들은 자신의 행동을 멈춘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그 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한참 동안 당황함과 놀라움을 얼굴 가득히 떠올린 채 그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는 그녀를 향한 애정이나 동정심, 동질감과 같은 감정을 얼굴에 전혀 띄고 있지 않다. 그저 버스 기사가 한 명의 승객을 바라보는, 무표정이다. 그녀는 고민 끝에 자신의 몸을 추스른다. 그녀는 자신의 당장의 행동에 확신을 갖는다. 그녀는 자신의 화구통에 그림 도구들을 하나씩 담는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붓과 펜을 줍고 있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은 방해하지 못한다. 마침내 가득 찬 화구통을 단단히 잠근 뒤, 정류장 안의 다른 모든 사람들을 뒤로하고 버스로 향한다. 그녀의 뒤를 그가 따라가고, 정류장에 남은 것은 노인들과 아이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