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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판 밑 인어 Mar 05. 2024

시어머니 같은 외할머니(1)

올해로 외할머니는 82살이시다. 솔직히 말하면 정확히 모르겠다. 대략 2년 전쯤에 팔순잔치를 했으니 그런 거 아닐까 추측만 할 뿐. 할머니 생년을 정확히 모르기도 하다만, 안다고 해서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호적 상 출생 연도와 실제 출생 연도가 다르다는 아주 옛날 사람이 우리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75살을 넘어선 순간부터 기력이 이전 같지 않아 졌다가 80을 넘기자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다. 그때부터는 집안일도 힘에 부치시는지 방치하기 시작하셨다. 깨끗하던 싱크대에는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고, 화장실에도 드문드문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외할머니댁을 방문한 엄마는 충격을 금치 못하며 당장에 박박 닦아 다 정리하고 오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기력이 없는 것도 없는 것이었지만, 녹내장으로 시력이 매우 저하되어 곰팡이들이 말 그대로 눈에 뵈지 않았은 거였다. 아무튼 그 이후로 할머니 기력의 심상치 않게 저하됨을 느낀 엄마가 2주마다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왕복 25킬로를 달려 다니기 시작하셨다.


 그 뒤로 주기적으로 할머니는 녹내장 치료를 위해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다. 우리 집은 지방이지만, 광역시긴 해서 할머니 동네보다는 좀 더 나은 의료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할머니는 5년 전까지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니시면서 서울이모댁에 종종 머무르곤 하셨다. 서울까지 가는 것도 이제는 힘에 부쳐서 못하겠다고 하셔서 한 동안 할머니 동네 근처의 지방 거점 도시에 있는 병원에 다니시다가, 녹내장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서울보다는 가까운 지방 광역시인 우리 집 근처 3차 병원으로 옮겼다.

  한 번 올라오시면 보통 5일에서 일주일을 머무르시나, 할머니는 그 시간을 썩 좋아하진 않으셨다. 심심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기력이 이렇게 떨어지기 이전, 종종 필요에 의해서 우리 집을 찾으실 때도 낯선 동네라 잘 돌아다니지 않으셨는데, 자기 의지에 의해서 안 나가는 건 맞았지만, 그게 나가고 싶지 않아서 나가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기사 나도 스마트폰에 탑재된 지도 어플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다면 낯선 곳에서 쉽게 나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투지 폰을 쓰신다.) 요새는 기력까지 없으셔서 낯선 동네 밖으로 조금도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당신의 동네에서는 막 돌아다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는 동네에서 아파트에서 20걸음이면 당도하는 경로당에 가는 게 유일한 낙이셨는데, 20걸음 남짓한 나들이라도 없으니 영 갑갑하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안방에 주무시고 아빠가 거실에 주무시는 것도 마음이 불편한 듯했다. 아무리 아빠는 할머니가 없을 때도 자주 거기서 잔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여튼 표면적인 이유로는 심심함을 언급하며 빨리 버스 주차장(이것도 버스 터미널을 일컫는 할머니의 옛말이다.)에 데려달라고 엄마를 들들 볶았는데, 엄마는 못내 아쉬운 마음에, 할머니를 좀 편하게 댁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를 다시 댁에 모셔드릴 수 있는 주말까지만 집에 있어보자고 해도, 할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할머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삼촌이 할머니 지역의 버스터미널까지 할머니를 마중 올 수 있는 날짜를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아무리 모두가 할머니의 빠른 귀택을 원한 다할지라도, 할머니는 강제로 며칠을 우리 집에서 원치 않는 숙박을 했어야 했는데, 정말 유감스러운 것은 그 시간들이 나도 불편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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