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센타> <숨바꼭질> 물건은 남고, 주인만 바뀐다
가장인 듯한 남자와 그 식속들과 가축들이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 돌을 던지는 남자들은 웃는 듯 보이기도 하고, 화면 왼쪽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의 이름은 '아간'. 모세와 함께 애굽을 탈출하고 40년 동안 황량한 광야를 떠돌다가 이제 막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당도한 엑소더스 세대의 후예로서, 유다 지파에 속한 자이다. 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된 것일까? 아간의 최후를 알기 전에, 먼지 날리는 국도변에서 도시로 편입을 꿈꾸는 어느 카센터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카센타>의 세상에 먼저 가 보자.
어쩌다가 젊은 부부가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을까. 흙먼지 날리는 국도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대흥 카센터'를 운영하는 부부의 생계형 범죄를 다룬 블랙 코미디 <카센타>는 2019년 11월 27일에 개봉, 14839명의 관객 동원에 그치며 개봉 열흘 만에 간판을 내렸다.
비록 흥행 실적은 저조하나, '자정능력을 상실한 공동체'와 '꼼짝달싹 못 하던 약자의 도덕적 일탈'을 적당한 긴장과 유머로 표현한 이 영화의 작품성은 무척 인정할 만하다. <카센타>는 하윤재 감독의 실제 경험담에서 출발했다. 10년 전 남해로 가는 여행길에서 타이어 펑크를 경험했고, 현란한 '빵꾸 환영' 간판과 험상궂은 인상의 사장님을 접하면서, 평상에서 바로 초안을 구상했다고 한다.
마을 유지의 딸이자 동네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선영(조은지)은 자신만만하게 서울로 유학을 떠났으나, 인물만 좋은 재구(박용우)를 데리고 허탈하게 낙향한다. 선영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선영의 친정 식구들은 가족도 없고 부양 능력도 없는 재구가 마뜩지 않다. 읍내에서 카센타를 크게 운영하는 문사장(현봉식)은 한때 선영을 짝사랑했다가 차인 전력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인물 좋은 재구에게 시샘하는 것인지 물량을 독점하고 사사건건 재구를 억압한다.
귀촌한 지 5년, 여전히 마을 공동체에서 소외된 채 마을 외곽 국도변에서 근근이 먹고살던 재구에게 경고등이 켜진다. 근처 리조트 공사 때문에 차 통행량이 줄자, 장인이 카센타 땅을 매물로 내놓고, 문간방으로 들어오라고 한 것이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은 재구에게 마침 타이어가 펑크 난 차 한 대가 온다.
얼마 만에 받은 손님인지, 또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는 재구는 눈 딱 감고 50만 원의 바가지를 씌우고, 두 시간 만에 한 달 수입의 두 배를 벌게 된 재구는 그동안 공사 트럭이 뿌리고 간 '금속 조각'을 들여다보다가 그만 해선 안 될 짓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밤마다 어두컴컴한 도로로 나가 펑크 나기 좋은 위치에 금속 조각을 뿌리면 다음날 펑크 난 타이어의 차들이 저절로 찾아온다.
우연히 매출 급상승의 비밀을 알게 된 순영은 처음에는 만류했지만, 막상 돈을 만지게 되자 마음이 흔들린다. 어느 날 이 부부의 카센타를 망하게 하고 또 흥하게 한 원흉인 리조트 여사장이 타이어가 펑크 나서 찾아온다. 잘 관리받은 듯한 피부와 몸매, 헤어스타일, 명품 백과 외제차, 사근사근한 말투의 그녀에게서 자신이 입성에 실패하고 돌아온 서울의 냄새를 맡고, 뚫고 오르지 못한 계급의 천정을 본다.
'저 여자처럼 살고 싶어'진 순영과 '서울 근교에 건물을 사고 싶어 진' 재구 부부의 높아진 욕망에 따라 범행은 갈수록 대범해진다. 때마침 리조트 사장 딸이 유괴되자 갑자기 씀씀이가 커진 부부에게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재구는 유괴범으로 의심받게 된다.
재구와 순영이 겪었던 5년 동안의 지독한 가난은 시골의 폐쇄된 공동체에 입성하지 못한 패널티였다. 순영 아버지 입장에서는 예쁘고 영특한 딸이라 능력 펼치고 살라고 서울 유학까지 보내놨는데, 졸업도 못 하고 정비사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돌아왔으니,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을 것이다. 결혼을 허락해 놨더니 아이는 유산되었다고 하니, 사기당한 기분에 한 번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부양 능력도 없어서 카센타를 운영하게 했더니, 마을 청년회장과 사사건건 대립해서 왕따를 당해 동네 차를 하나도 못 받는 지경에 처하자 또 화가 났을 것이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다 친인척이며 동기 동창이라 불법과 도덕적 해이 속에서 마을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일일이 민원을 넣고 진정서를 넣어 사업을 방해하는 재구를, 보는 사람마다 밉상이라며 얼굴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 보복으로 부부는 마을공동체에 속하지도 못하고, 마을 밖에서 5년이 흐른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이 허름한 카센타나마 지키기 위해 시작된 작은 범죄가 나중에는 서울 근교에 3층짜리 카센터를 짓고 사는 꿈을 꾸게 되면서, 일대 타이어의 재고가 바닥날 정도로 대형 범죄가 된다. 그리고 결국 언제냐가 문제지, 피할 수 없는 그 일이 벌어지고야 만다.
"우리가 들어갈 집이야."
허정 감독의 2013년작 <숨바꼭질>에서는 소위 고급 아파트라는 현대판 '캐슬'에 입성하고자 하는 현대판 '유목민'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화목한 가정의 가장인 성수(손현주)는 어느 날 갑자기 '밀린 월세 때문에 형이 도망간 것 같으니 짐을 찾아가라'라는 건물관리인의 전화를 받는다.
어렸을 때 아버지 눈밖에 나 가출한 형과는 연락이 끊겼으며, 그동안 성수가 아버지의 성실한 후계자로 살아왔던 것이다. 성수는 형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괴한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받게 되고 이후 어떤 환영에 시달리면서 형과 얽힌 비밀이 차츰 드러난다.
형이 살던 허름한 아파트도 한때는 미항의 툭 트인 전망을 자랑하던 고급 아파트였을 것이다. 그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그곳에 살던 기존 주민들도 어디론가 내몰렸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쇠락한 항구의 입지를 반영하듯 모두가 떠나고 이젠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흉가 아파트로 전락했다.
성수는 형의 짐을 정리하던 중, 형이 아버지의 유산상속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려 했음을 알게 된다. 형은 특히 성수가 입주한 그 아파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에 큰 관심을 두었다. 사실 형은 친자였고, 성수는 양자였기에 형의 이런 행동은 성수를 긴장시킨다. 일단 형을 찾아야 하는데, 자꾸만 그 괴한이 나타나더니 급기야는 성수의 아파트까지 쳐들어오면서 온 가족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영화 <숨바꼭질>에는 더 나은 집을 발견하면 숨어 있다가 주인을 죽이고 거주하는 살인마가 등장한다. 살인마는 이 동네는 환경이 안 좋다며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성수의 아파트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우리가 들어갈 집이야'라고 말하며, 거주자들을 제거하러 출동한다.
"내가 훔친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가 여기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외투의 주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리고성은 함락되었고 여리고성에 있던 주민들은 모두 죽었다. 신은 여리고성의 약탈을 금지했다. 약탈을 위한 정복이 아니라 약속한 땅의 회복을 위한 정복이기에 신은 약탈과 노략을 전적으로 금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소각을 통해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오염된 성의 정화를 지시했다.
만약 지시를 어기고 노략한 자는 노략물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했지만, 아간은 금과 은, 그리고 외투에 현혹되어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야 만다. 아간이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크게 패한다.
대패의 원인이었던 아간은 그러나, 자기가 훔친 금과 은, 외투가 있는 곳을 순순히 말하고, 그것들이 눈앞에 드러나자, 여전히 미혹된 마음 그대로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라고 장물에 대한 경외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간은 광야에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이러는지 잘 모른 채 광야를 떠돌았을 것이다.
그가 아는 음식이라고는 아침에 내려주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전부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요단강을 건너서 거대하고 화려한 여리고성에 도착해서 받았을 이 '유목민'의 문화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주인이 죽어서 방치된 아름다운 외투와 금덩이와 은덩이를 땅에 묻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미혹된 감정이 가시기도 전에 아간과 가족들은 골짜기로 끌려가 돌팔매를 당하고 결국 앞서 소각된 여느 노략물처럼 소각되고야 만다.
가나안 정복 이야기는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 그 잔인함 때문에 강한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영역을 차지하는 것에는 항상 잔인함이 선행한다. 영화 <카센타>에서 순영 아버지 입장에서 재구는 자신의 딸 순영과 카센타 땅을 훔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3천만 원도 안 되는 땅을 7천만 원이나 부르는 것에 나름의 근거가 된다.
리조트 여사장도 그린벨트를 편법으로 풀어 그 땅을 헐값으로 노략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구는 자신의 카센타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들의 멀쩡한 타이어를 노략한 것이고, 그 결과 무고한 목숨까지 앗아갈 뻔했다.
영화 <숨바꼭질>은 '집주인을 죽이고 점유하는 살인마' 메타포를 통해 '영역'의 본질에 다가선다. 살인마의 제물이 될 뻔했던 주인공 성수는 어떠한가. 거짓 증언으로 형을 성추행범으로 몰아 아버지의 눈밖에 나게 하고 적자의 자리를 차지한 행위는 '적자 지위'의 노략이 아니었던가.
아간이 훔친 그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의 주인은 그 외투를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을까. 맨몸으로 태어난 인간에게 지나치게 값나가고 좋은 것은 항상 경계의 대상이다. 그것은 인간을 유혹하고, 죄를 부르며, 잠시 차지하지만, 다음 순간, 주인이 바뀔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