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
비극의 출발점
덩치 크고 험상궂은 남자들은 도대체 왜 이 작고 허름한 카페를 박살 냈을까? 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카페는 손님이 끊긴 지 오래다. 월세 내느라 여기저기 빌린 채무가 쌓이고, 업장을 접고 싶어도 철거 복구비용이 없어 못한다.
그저 버티는 카페 사장(윤유선 분)에게 어느 날 캐피탈 업체에서 찾아와 정부 지원 자금이라며 돈을 빌려준다. 한시름 던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오밤중에 찾아와 대출 연장수수료가 밀렸다며 가게를 때려 부순다. 당장 돈 갚으라며 아들의 얼굴에 큰 흉터를 남기고, 신고하면 죽음이란다.
일명 '스마일 캐피털'의 김명길(박성웅 분) 사장이 이러는 이유가 비단 '돈' 때문일까? 아니, 한 가지가 더 있다. 그 낡은 상가의 건물주가 빠른 철거를 원하고 있고, 그의 신분이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야욕이 큰 김명길은 만약을 위해 국회의원의 '환심'을 사두어야 했다.
건물주와 사채업자의 자본주의적 욕망이 열차의 시동을 켜고,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연료를 무한대로 공급하면서 이 작은 가족의 비극 열차가 출발한다.
브로맨스 액션 <청년 경찰>(2017)과 퇴마 스릴러 <사자>(2019)로 유명한 김주환 감독이 6월 9일 넷플릭스 8부작 웹드라마로 돌아왔다. 사람 목숨보다 돈이 먼저인 비정한 사채업의 세계에 휘말린 두 청년이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우는 이야기 <사냥개들>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공개 둘째 주간에(6월 12∼18일) <사냥개들>은 총 810만의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비영어권 TV 부문 1위에 오르면서, <사냥개들>은 물론 최근 한국 드라마의 달라진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늦은 나이에 권투를 시작한 건우는 어머니 가게 월세를 내 드리기 위해 신인왕전에 출전한다. 우승 상금 천만 원을 받았어도 빚이 해결되진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가 속아서 받은 불법대출 때문에 상환 불가능한 채무의 늪에 빠지고 만다. 신인왕 결승전에서 만나 절친이 된 해병대 출신 홍우진(이상이 분)의 도움으로 경호 일자리를 구해 대출 청산에 성공하지만, 김명길과의 악연의 고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흡인력 넘치는 스토리와 타격감 터지는 파이터 액션, 그리고 젊은 두 배우의 티키타카적 캐미스트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이 <사냥개들>이라는 드라마의 심연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히 특별한 무언가가 기저에 깔려 있다.
그것은 때로는 대사의 오글거림으로, 또는 나이브함,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혹은 견디기 불편한 '철 지남'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모든 것이 값이 매겨지고 판매되는 세상에서, 나 홀로 강호의 도를 지키는 '옛날 사람'을 만난 기분이랄까.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주인공 건우가 직면한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마다 그에게는 물러서지 않는 마지노선이 있다. 사람 때리고 괴롭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으며,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말라는 명령은 따르지 않는다. 불리해도 주먹 외에 다른 흉기는 사용하지 않으며, 나를 죽이러 온 킬러라도 죽어가도록 외면하지 않는다. 사람 목숨에 네 편 내 편을 가르지 않는다.
또한 건우는 자기에게 속한 돈의 경계를 정확히 안다. 눈먼 돈을 탐내지 않으며, 내가 일한 만큼만 받고 나머지는 거절하며, 받은 만큼은 반드시 목숨 걸고 일을 해낸다. 그가 에누리 없이 지키는 삶의 다양한 경계선들 때문에 당장은 문제가 발생하지만, 곧 주변 사람들은 도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의 원칙에 동의하고 그를 중심으로 해서 더 강한 결속력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간다. 이런 것을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까.
전설적인 사채업자 최 사장의 극찬,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좋은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건우는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비록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와는 연을 끊고 살지만, 건우와 어머니의 관계는 무척 돈독해 보인다.
극 중에서 따듯한 모성의 상징처럼 묘사되는 건우 어머니(윤유선)가 주변 사람들에게 온기를 베푸는 모습을 보면, 그늘도 없고 자존감도 높은 건우의 인격형성에 어머니가 크게 영향을 주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 처해도 '좋은 어른'을 경험한 아이들은 어지간하면 비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기나긴 8부작의 러닝타임 속에 '10초' 분량으로 아주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이 한 가지 있다. 제3화에서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다가 겨우 일자리를 구하고 귀가한 건우가 불 꺼진 방에서 잠에든 엄마를 본다. 엄마는 성경책을 보다가 잠이 든 모양인지, 성경책이 펼쳐져 있고 협탁에는 작은 나무십자가가 놓여있다.
사실 얼굴에는 칼을 맞고, 죽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두들겨 맞고 다니는 건우의 고된 하루를 함께 하던 관객 입장에서 건우 어머니는 참으로 무력해 보인다. '자식 앞길에 보탬은 못 될망정 1억 사기를 당해놓고 한가하게 성경책이나 보다가 잠에 들다니 쯧쯧' 하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3화 4화 회를 거듭할수록 건우가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 도리를 지키는 법을 보면, 어머니는 비록 재물은 주지 못했지만, 깊은 심지를 주었구나 싶다. 그것은 아무나 줄 수 없는 믿음의 유산이 아닐까. 10초 남짓 스치듯 지나는 순간이었지만, 이 드라마, 신이 훔쳤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