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출하려는 아빠의 눈물겨운 여정, <익스토션>
피 묻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몸이 축 늘어진 남자아이를 안고 오열한다. 아이는 죽은 것일까. 남자는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을 당한 걸까.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필 볼켄 감독의 스릴러 영화 <익스토션>은 무인도에 갇힌 아들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나선 어느 아빠가 '다이하드'처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다소 생소하다. 감독도, 캐스팅도, 이야기도 그렇다.
후반부에 잠시 담당 형사로 등장하는 흑인 배우 대니 글로버를 제외하고는, 아니 조금 더 많이 쳐줘서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캡틴 필립스>에서 소말리아 해적 선장 무세를 연기한 배우 바크하드 압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생소하다.
감독 필 볼켄 필모그래피를 봐도 역시 갸우뚱하게 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영화 <익스토션>에는 굉장히 흡인력이 있다. 108분의 짧은 러닝타임의 약점도 오히려 꽉 찬 이야깃거리와 볼거리로 극복해 낸다.
극 중 심장전문의인 케빈(이안 베일리)은 바쁜 병원생활 때문에 그동안 가족과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에, 이번 여행에선 모처럼 아들이 원하는 것을 꼭 들어주리라 다짐한다.
여행지로 출발하려고 할 때, 옆집 노인이 갑자기 들이닥쳐 "잔디깎이 기계 모터 고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라며 붙잡지만, 케빈은 돌아와서 배우겠다면서 출발을 서두른다. 이 치명적인 장면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한이 맺힐 정도로 두고두고 떠오른다. 역시 유비무환이다. 역시 고장 난 걸 고치는 것은 무엇보다 1순위여야 하는 걸까.
헬기에서 바라본 카리브해의 섬들은 환상적인 장관을 자랑한다. 그러나 천 개에 가까운 크고 작은 무인도들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표류해 도착한 곳이 무인도라면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제트 스키를 타고 싶다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지만, 제트 스키 탑승권은 이미 매진된 상황이다. 케빈은 하는 수 없이 현지 주민들에게서 모터보트를 빌리고 가족을 태워 푸른 바다를 질주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살펴보니 섬도 건물도 안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다.
그대로 유턴해서 돌아갔다면 비극은 없었겠지만, 저 멀리 보이는 조그만 섬에 혹해 탐험가적 마인드로 계속 나아간다. 그러나 그건 다시 돌아오지 못할 항해에 가까웠다.
가족을 실은 보트는 바다 위를 떠다니다 또 다른 무인도에 멈춘다. 그곳에서 낯선 어부가 그들을 깨우고 물을 주며 도와주지만, 어부는 케빈만 어선에 태운다. 어부는 케빈에게 아내와 아픈 아들을 구하려면 돈을 달라며 몸값으로 백만 달러를 요구한다.
이는 영화의 제목인 '익스토션(extortion)'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익스토션이란 강탈, 갈취, 즉 지나친 가격 후려치기 등 상대방에게 막대한 재산적 손해를 강요하는 행위이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건 '몸값 갈취'인데, 줄거리가 진행되면서 대사관 등 사회 시스템이 주인공 케빈을 가해자로 단정 짓는 장면이 등장해 관객을 더욱 답답하게 한다.
케빈의 가족은 천 개가 넘는 무인도 중 하나에 인질로 잡혀 있다. 케빈은 거의 해적에 가까운 어부에 의해 돈도 빼앗기고 허름한 보트에 갇힌 채 수장될 뻔한다. 이후 케빈은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해 지나던 보트에 구조된다. 케빈은 가족의 구조를 요청하는데, 현지 형사도 대사관 직원도 케빈을 보험 사기꾼으로 의심해 섬 수색에 소극적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아무나 오나
사실 극의 초반부에 케빈이 아들에게 들었던 말은 "내 친구 아빠가 아빠더러 찌질이(?)래요"였다. 그러니까 피터는 공부만 잘했지, 남자로서나 아빠로서 든든하다는 인상을 받기 어려워서, 그가 과연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처자식을 구해낼 수 있을지 관람자의 입장에서 심란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머리회전이 좋은 덕인지, 영민하게 힌트들을 포착하고, 부지런하게 수완을 발휘해 꽤 유능하게 답을 찾아가는 그는 생애 어느 때보다 필사적이며 결단력 있고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그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추적에 성공하며 거의 해답에 다가간 시점에 갑자기 범인을 놓쳐버린다.
여기까지인가. 다 끝났다는 절망에 마치 피터는 피부가 녹아날 듯 애끓는 눈물을 쏟아내며 그제야 신을 찾는다. 제발 도와달라고 가족을 살려달라고 기도를 한다. 세상에 단 둘만 남겨진 것처럼 단독자로서 신을 대면하는 피터의 모습에서 비로소 '기도'라는 행위의 본질에 다가선다. 그리고 바로 응답받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갑작스러운 신의 도움'. 작법상 완성도가 떨어지는 기법처럼 희화화되는 드라마 용어이지만, 얼마나 은혜로운 단어인가. 능력의 한계를 느낀 인간이 신에게 간절하게 구하는 기도. 자신이 원하는 걸 간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며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가 아닐까. 108분의 짧은 러닝타임에서 1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이 영화 신이 훔친 영화다. '기도란 이런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