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불갑사를 다녀오며
추석 연휴가 끝난 주말, 지독히도 뜨겁던 폭염이 드디어 물러가고 정말로 가을이 온 건가 싶은 아침이었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질 때면 왠지 싱숭생숭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뭔가 변화를 찾고 싶어진다. 문득 오늘 어디 바람쐬러 갈까? 남편에게 물었다. 바로 그러자는 답이 왔고,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소파에 늘어져 있던 우리는 갑자기 급한 볼일이라도 생긴 듯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우리가 간 곳은 꽃무릇이 유명하다는 영광 불갑사였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여러 번 찾은 곳이었다. 주로 추석 전후로 새빨간 꽃무릇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언제나 관광객들이 붐볐다. 입구부터 펼쳐지는 꽃무릇은 그새 지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아직 완전히 피지 않아서인지 군데군데 성글게 피어 있었다. 눈으로는 새빨갛게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으로는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 아래 빨간 꽃무릇이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했다. 여러 번 와 본 중 가장 멋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칙칙한 아파트 주위 아스팔트만 눈에 담다가 파란 숲을 배경으로 키 작은 꽃무릇이 펼치는 경치를 보며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곳곳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양옆으로 꽃무릇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로 걸으며 꽃무릇에 둘러싸여 가을의 초입에서 계절을 만끽했다. 한바퀴 경치를 둘러보며 숲 내음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다가 어느덧 올해도 저물기 시작하는구나! 벌써 몇 달 안 남았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서 걷는 남편의 뒤통수 머리숱이 새삼 더 적어 보였다.
입구로 다시 나오니 도로 양옆으로 노점 가판대가 이어져 있었다. 호기심에 기웃기웃 구경하다가 우리의 발길이 멈춘 건 떡집 앞이었다. 역시, 영광하면 모싯잎 송편이지! 아주머니가 맛보라고 건네준 건 벌써 남편 입속으로 들어갔다. 떡을 좋아하는 남편은 맛있다며 두 박스나 사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차 안에서 우물우물 먹는 송편 맛이 최고였다. 집에 와서도 저녁 대신 떡으로 때우자던 남편은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는 아주머니 말을 기억하고는 주문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주문한 떡이 그저께 도착했고, 절반은 냉동실에 넣고 나머지만 내놓고 먹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베란다에 내놓았던 떡을 먹으려는 순간, 비닐봉지 안에서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정말 곰팡이인가 이리저리 살펴보니 곰팡이가 맞았다. 순간 맛있는 떡을 버리게 생겨 아깝고 속상했다. 그런데 남편이 하는 말, 곰팡이 핀 걸 보니 천연재료가 맞네! 그러게, 3일 동안 상온에 둬도 상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빵 같은 경우는 일주일을 둬도 곰팡이가 피지 않았다. 그래, 몇 개 버린 들 대수이겠어?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은 걸 확인했으니 됐지, 뭐!
곰팡이 핀 송편을 보고도 즉각 반대로 생각하는 남편의 재치가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