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순간은 누구나 처음 맞는다
어렸을 때는 몇 살 위 언니 오빠들이 무지하게 커 보였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갓 스물 삼촌은 완전 어른 같았고, 삼십 대 담임 선생님은 모든 걸 다 아는 척척박사로 보였으며, 마흔 언저리인 엄마 아빠는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기대한 것처럼 아이들 역시 부모에게 기대하는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는 이럴 거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갈수록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의 모습으로 기억될까 생각하게 된다.
어느 영화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주인공 남자는 마흔 정도, 아내와 십 대 후반 아들이 하나 있다. 아내와는 관계가 멀어져 아무 감정 없이 형식적인 가족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자는 가슴 뛰는 여인을 만난다. 아들의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젊은 여자는 너무 매력적이었고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둘은 앞뒤 없이 사랑에 빠져버렸고 남자는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이중 생활을 이어간다. 어느 날 급기야 아들은 아버지의 불륜을 알게 되고 배신감과 실망감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아내와는 정이 없지만 아들 만은 끔찍이 사랑하던 남자는 마음을 꼭꼭 닫고 혼자 괴로워하는 아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아들에게 이런저런 변명도 못하고 그저 한 마디를 건넨다.
"아빠도 나이를 좀 더 먹은 남자일 뿐이야.
여전히 방황하고 실수하고 고민하는 ...... "
인생의 모든 순간은 누구나 처음 맞는다. 부모 밑에서 자라던 시절도 부모가 된 이후에 맞이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처음의 시간을 산다.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희망을 꿈꾸며 실수하고 방황하고 넘어지다가 다시 일어선다. 부모 역시 완벽한 인간이 아닌 한 사람의 나이든 남자와 여자일 뿐이다. 몇 십 년 앞선 길을 걸어가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