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_일곱 번째 날
타인의 시선
미세먼지 없이 맑고 시원한 공기와 자동차 소음 대신 새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아침.
도시에서는 좀처럼 누리기 힘든 것들을 만끽하며 골목길을 산책하다가 카페를 새로 발견했다. 오래된 기와집의 고즈넉한 느낌과 유리온실을 연상시키는 따뜻한 이미지가 묘하게 어우러지는 카페를 보자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하고 싶어졌다.
바스락바스락 자갈이 깔린 정원을 걸어들어간다. 겹겹이 쌓인 오래된 기와지붕을 감상하며 유리 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니 천장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가 멋스럽다.
목재 기둥과 회칠한 벽, 녹이 멋스럽게 핀 철제 테이블이 오래되어 보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무도 없는 평일 오전, 멋진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하고 있으니 행복하다.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강릉에 있으면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소비에 관해서
사회 초년생 때, 평범한 직장인답게 도시에서 생활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라이프를 살고 있는지 타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은 어느 순간 거의 확신이 되어 나를 구속하고, 내게 지시한다.
"소비해라"
이 지시를 따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직장에 출근해서 일주일 내내 사람과 업무에 치이고 고통받으면서도, 소비가 구원이라도 되는 양 주말이 되면 백화점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과 돈의 소비의 노예가 되어가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고 공허함만 커진다.
물론 지금도 멀쩡히 잘 굴러가는 내 오래된 자동차가 가끔 부끄러운 것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타인의 시선과 사회가 미친 듯이 주입하려는 소비주의를 이겨낼 수 있는 의지를 어느 정도는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 강릉에서 드디어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소비는 물질이 아니라 경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다.
법정 스님은 저서 '무소유'에서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나를 소유할 때 집착이 생기고, 그 집착이 나를 괴롭힌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소 뻔할 수 있지만, 분명히 다시 해볼 질문을 해본다.
내가 죽는 날, 나는 무엇을 후회할까.
내가 소유하지 못한 벤츠?
가족들과 꼭 가보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한 장소?
한달살기를 해보면 알 수 있다.